우듬지로 향하는 제주 여자목수, 조정인·조채련

Craft / 육상수 기자 / 2018-11-05 01:5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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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방 ‘나무아래’ 조정인, 조채련 자매에게, 제주의 푸른 바다는 지난 5년의 시간이 남긴 족적 위에 어떤 미래를 중첩할 지를 되묻는 불완전한 공간이다. 요즘 이들의 시선은 조각도로 나무를 깎는 시간만큼 바다에 머문다. 그 까닭을 살펴보았다.

 

나무아래 공방 조정인(왼쪽), 조채련(오른쪽)

 

5년 전, 조각을 전공한 언니 정인은 생활고를 해결할 목적으로 나무를 깎기 시작했다. 그릇, 트레이, 숟가락 등 소품 중심으로 생활 도구를 만들어 제주시 오픈마켓을 향했다. 실력인지 운인지를 가름할 틈도 없이 잘 팔려 나갔다. 매달 재료값 제하고 손에 쥔 돈이 무려 700만원이 넘는 대박의 호시절을 만난 것이다. 


나무 작업을 한다는 것

 

 

 

1년 뒤쯤에는 동생 채련도 칼 하나 들고 합류했다. 채련은 의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잠시 세상을 관망하다 언니의 작업실에 칠 작업 담당으로 입문했으나, 말 안 듣는 조수생활을 스스로 단기 마감하고 언니의 동업자로 신분 세탁 후 함께하고 있다.


자매가 1톤 트럭에 몸을 싣고 성산포 근처 공방에 이르면 11시. 주인을 기다리는 나무들이 먼저 그들을 반긴다. 몸을 내민 조각난 목재들 중 어느 것은 그릇이 되고, 어느 것은 접시가 되고 또 도마가 된다. 선택된 목재들은 작업실 남쪽의 햇살 방향으로 몸을 누이면, 목리를 따라 작업자의 칼이, 손이, 마음이 자르고 긁어낸 후 칠로 화장을 마치면 새 주인을 기다린다. 매장 전시용으로, 부엌의 도구나 장식품으로 다시 태어나는 목재는, 곧 먼 길을 떠난다. 무지막지한 기계칼에 의해 생산되는 대량의 복사품이 아니라, 저마다의 맵시를 유지한 채 새 주인을 만난다는 것은 나무에게는 크나큰 행운이다. 

 


두 자매의 일과는 단순하다. 동쪽 바다를 향한 공방 입구를 들어서면 묵묵히 작업하거나 어제의 대화가 반복적으로 이어진다. 자매는 일이 지루하거나 몸이 힘들면 긴 목재 상판에 나란히 누워 바다를 보며 뒹군다. 누구나 일차적 의식주가 해결되면 생각의 공간이 찾아든다. 지금이 계속될지, 다름이 찾아들지, 알 수 없는 선문답을 스스로 반복한다. 정인, 채련 자매도 일의 시간보다 스스로 묻는 시간이 잦아드는 것에 대한 일말의 불안이 있다. 서서히 공방은 깨우침을 위한 선방으로 바뀐다.


제주 바람, 세상 바람


 

왜 이들 자매에게 지난 5년의 시간은 미래를 향한 힘찬 전진보다 일상의 바다에 몸과 마음을 묶어 두는 시간이 된 걸까? 조각을 전공한 정인은 대학을 졸업 후 예술가로 살고자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그렇게 만만한 나라이던가. 생활고 해결은 그 어떤 가치와 정의 위에 군림하는 막강한 지존이다. 나무의 목리를 따라 조각도의 예리한 선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는 작법은, 조각을 전공한 그녀가 가장 쉽게 택할 수밖에 없는 노하우이면서 생활고를 해결하는 최고의 방안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 남들도 가만히 놀고만 있었겠는가. 도마, 그릇 등 소품에 몰리는 공방과 작업자들이 넘치면서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동시에 손목의 인대도 그만치 늘어났다. 동생 채련이 합류했지만 기계를 쓰지 않고 손목의 힘으로만 주문량을 감당한다는 것은, 나무를 대하는 감성은 무뎌지고 그 자리에 노동의 양이 대체하는 일이 되었다.


키가 큰 동업자 채련에게도 삶의 숙제가 언니와 동일하게 다가왔다. 언니와 마찬가지로현 상황을 어찌 풀어야 할지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미혼인 그녀에게는 인생의 숙제보다 신명나게 놀아할 거리가 넘쳐날 텐데 너무 서둘러 진중한 거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다. 유행처럼 번지는 ‘잘 살아야 한다’는 명제가 오히려 일상의 무게만 늘리는 게 아닌가 싶다.

 

 

3~4년 전부터 나무 주방제품 식기류들이 쏟아지고 있다. 대한민국 목공방의 형편이 녹녹치 않다보니 용량이 큰 가구보다는 작업이 용이하고 소비자들의 기호를 자극해 판매가 쉬운 소품 비중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단기간 교육으로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제품이어서 초보 목공인들도 접근이 쉽다. 우드카빙, 우드터닝 등의 작업 과정을 거치는 이 분야가 기형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결국 가격은 물론 디자인 차별화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결코 호락하지 않다. 공방 ‘나무아래’도 이런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다시 도약


그녀들의 고민은 좀 다른 곳에 있다. 매출 감소라는 현실보다 어쩔 수 없이 택한 지금의 길이 어떤 경로를 거쳐 최종 목적지에 다다를 것인가, 아니면 원래 가려했던 길로 다시 방향을 옮겨 갈 것인가이다. 현재는 어느 쪽으로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녀들의 시선이 공방의 안이 아닌 밖의 바다로 옮아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님, 현재 운영하고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더 확장할까, 바닷가 멋진 카페를 만들어 여행자를 위한 시간을 담을까 라는, 팍팍한 현실과 고매한 예술 장르가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어찌 보면 쉽게 목공을 선택했고 그것이 삶과 뒤섞여 나무아래에서 지난 5년을 살아온 자매에게, 현재 다가온 문제들은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떻게 더 잘만 들 것인가도, 멈춘 길을 다시 여는 것도 어느 하나 간단하지 않다. 무엇을 선택하든 진검승부를 할 때다. 지금부터는 감성도 행운도 아닌 진짜 진검승부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포정해우(包丁解牛). 단칼로 소 한 마리는 해체하는 정점의 아트 테크닉. 아직도 세상은 현대판 기술의 끝판왕(王)을 기다리고 있다. 19년 동안 칼날을 갈지 않은 포정의 기술은 단 한 번도 소의 뼈를 건들지 않았음을 뜻한다. 그 신기(神技)에 도달하려면 모든 것이 공방 안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다보면 예술도 삶도 다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먹고사는 문제는 평생의 업보로 늘 몸에 붙어 괴롭힐 것이고.  

 


제주는, 바다는, 성산포는 두 자매가 나무아래에서 나무 위 우듬지로 향하는 천혜의 조건이다. 도시의 지하 공방에서는 쉬이 꿈꿀 수 없다. 오늘도 머물렀을 제주 바다 위의 두 여자의 시선이, 머지않아 자신의 가슴으로 돌아올 것이 분명하다. 그들이 만든 작은 그릇 하나에서부터 사물의 본질을 그려내려는 고집과 세상을 마주하는 당참을 읽었다는 사실이 그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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