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OD MIND] 소나무에 대한 예배

칼럼 / 김수정 기자 / 2020-03-31 10:5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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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에 대한 경외
있는 그대로의 수용
겨우내 쌀인 눈을 털어낸 소나무

남자친구가 생기면 꼭 물어보는 게 있다. “내가 왜 좋아?”라는 질문이다. “예뻐서 좋다”거나 “착해서 좋다” 따위의 입에 발린 대답도 듣기 좋지만 가장 좋아하는 말은 따로 있다. 바로 “그냥 좋아”라는 대답이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어린 장금이는 어떻게 고기에 홍시가 들어간 걸 알아차렸냐는 상궁의 질문에 “홍시 맛이 났는데 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면 그냥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인데”라고 대답한다. 내가 바라는 사랑도 그렇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인 거지 거기 다른 이유가 없는 것처럼, 내 곁에 있는 사람은 내 잘난 모습이건 못난 모습이건 “좋으니까 좋고, 너니까 좋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게 말이 쉽지 어디 쉬운 일인가. 잘나면 잘난 대로 못나면 못난 대로 누군가의 전존재를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걸 해내는 사람은 성자(聖者)이거나 부모다. 이번 삶에서 성자가 되기는 글렀고 부모가 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기에 이 시를 읽는다.

학교 뒷산 산책하다, 반성하는 자세로,/눈발 뒤집어쓴 소나무, 그 아래에서/오늘 나는 한 사람을 용서하고/내려왔다. 내가 내 품격을 위해서/너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것이/나를 이렇게 휘어지게 할지라도./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이 地表 위에서 가장 기품 있는/建木; 소나무, 머리의 눈을 털며/잠시 진저리친다. (황지우, ‘소나무에 대한 예배’)

사랑하는 일은 용서하는 일이다. 사랑할수록 용서해야 할 일도 많아진다. 한번 보고 말 사람이 미운 짓을 하면 앞에서 화를 내거나 뒤에서 욕을 하거나 가만히 참거나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미운 짓을 하면, 역시 앞에서 화를 내거나 뒤에서 욕을 하거나 가만히 참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용서해야 한다.

그때 하는 용서는 내 품위가 도덕적 우위를 위해서가 아닌, 그 사람이 “나를 이렇게 휘어지게 할지라도”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 나는 가만히 눈을 견디는 소나무처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봄의 초입에 눈을 다 털어낸 소나무를 보며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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