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바람을 안고, 건축가가 가진 마음의 눈을 읽다

건축 / 유재형 기자 / 2021-06-27 11:2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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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앞에 경배드리는 건축의 순례자 이타미 준
현대 건축에 현대 미술을 끌어안았다
제주 핀크스 수(水), 풍(風), 석(石 건축의 잔잔한 울림

건축이 예술이 되어 사람을 불러모으는 건축가가 있다. 그 땅의 물성으로 자연의 이치를 기록하고자 했던 우리 시대의 건축가 이타미 준(유동룡). 그가 지은 제주의 건축은 세월이 거듭될 수록 건축 역사에 견고한 퇴적층을 만들고 있다.

 

▲ 제주 포도호텔 전경

 

 

▲ 호텔 복곧 천장 나무 디자인

 

▲ 포도호텔 복도 풍경. 절제된 차양이 돋보인다.

 

▲ 포도호텔 객실 천장 한옥 감성 인테리어

 

 

'건축'과 '예술'이라는 이란성 쌍둥이


광활한 자연과 대적할 만한 무기를 묻는다면 고(故) 이타미 준 선생은 무엇이라 말할까. 제주에서 우리가 본 것은 대자연에 비견할 만한 예술이었으며, 예술과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조화로운 건축이었다.

후쿠오카에서 단지 40분을 날아왔을 뿐인 제주는 이타미 준 선생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비춰졌을지 모를 일이다. 확장성을 가진 바다와 다소곳한 모습으로 주변과 잘 어우러진 오름, 자유로운 상상을 허락하는 제주를 보며 이것이 모두 조국의 것이라는 희열을 느끼지 않았을까.

이타미 준 선생은 '나의 미학'(My Aesthetics)이란 글에서 '현대 건축에 현대 미술을 끌어안았다'는 평가를 두고, 예술의 근원인 소재와 색과 빛을 기초로 한 것임을 밝혔다. 그래서 우리는 소재(돌)와 색(물), 빛(바람)이라는 이름의 미술관 앞에서 가장 현대적인 방법으로 제주의 무채색을 끌어내 완성한,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의 주술이 담긴 경지로 이끄는 거장의 손길을 느꼈다. 이것을 토속적이라 표현해도 좋고, 일본적인 것이라 말해도 좋다.

결국, 서정적인 힘을 가진 한 건축가는 시간과 공간, 배경을 초월할 만한 ‘예술’을 등장시켜 그가 없는 자리에서도 이토록 장엄한 감동을 던지고 있다. 그에게 ‘바람’은 시적 언어이고, ‘물’은 음악적인 운율이며, ‘돌’은 건축의 영혼을 담은 석관이었던 것이다.

우드 공간의 ‘역사성’과 ‘품격’

오후 다섯 시, 다시 포도호텔 앞에 선다. 돌과 목재로 꾸며진 작은 집합체가 마치 1000년 전부터 이곳에 자리했던 조형물처럼 엄숙한 얼굴로 웅크리고 선 자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푸근한 건물의 품에 들어가며 공동체를 생각한 건축가의 마음 씀씀이(이타미 준 선생은 복도를 '공동체 내 통로'라 지칭했고 통로가 가진 높이의 차이는 ‘작은 계단으로 극복할 만하다‘고 밝혔다)가 고마워질 때쯤 해가 지는 오름과 수평선을 만나게 된다. 바로 그 때 통로는 수(水), 풍(風), 석(石)이 가지는 물성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그리고 목재는 이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 수(水) 박물관

▲ 석(石) 박물관

 

▲ 풍(風) 박물관

 

목재는 이타미 준 건축이 가지는 지역성을 표현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다. 포도호텔 객실로 들어서면, 원목을 이렇게 과감하게 쓸 수도 있을까, 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고 보면 제주에서 만난 것이 ‘낯설게 하기’ 아닌가. 도시와는 다른 이질감에 나무가 있다. 목재건축물은 곧 천혜의 자연이라는 이곳 안내문의 활용정점 격이다. 편백나무로 감싼 욕실은 정신적 안정을 준다. 공간의 포인트 역시 목재가 이끄는 시선을 따라 미끄러지고 이곳에 이르러 ‘완벽한 휴식’을 제공한다.

원목이 주는 무게와 공간감은 취하면서도 전체적인 조화와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변화가 공간의 단조로움을 조화롭게 풀어간다. 이것이 공간을 대하는 건축가의 예(禮)라고 말할 수 있을까.

또 다른 특징은 로비와 클럽하우스에서 보이는 통일성을 지닌 팔각의 조형물과 기둥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타미 준 선생은 팔각과 물을 사용한 수경 디자인을 반복적이면서도 각 건물에 맞는 변화를 주며 자신만의 독립적인 미학 스타일을 이어갔다.

 

▲ 클럽하우스의 아프리카 체리 천장과, 멀바우 기둥과 바닥재 (사진 유림목재 제공)


로비 천장에 사용된 아프리카 체리목과 바닥과 입구 벽체로 쓰인 멀바우는 같은 원목이면서도 외부 노출에 따라 채도를 달리해 입체감을 불러 일으킨다. 물과 바람과 빛은 나무를 변색시킨다. 외부의 원목은 색이 빠지면서 이 건물이 가지는 역사성을 증명할 것이고, 실내의 원목은 원색 이상의 색감이 시간의 흐름을 타고 더욱 짙게 배어 나오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변하지 않을 품격이라 부른다.

"고전과 현대의 조화가 완성될 것입니다. 본인(이타미 준)으로서는 이 호텔이 세계의 자존심이 될 거라는 자신감을 느끼고 있으며 모든 스태프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라 여깁니다."

이타미 준(伊丹潤)은 유동룡(庾東龍)이다

재일동포 건축가 이타미 준은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흙, 돌, 나무를 소재로 사람냄새 나는, 체온이 느껴지는 건축을 발표해온 세계적 거장이다. 1964년 무사시공업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이타미 준 건축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림과 조각은 물론 문학에 조예가 깊어 자연을 대상으로 한 여러 편의 명문을 남겼다.


▲ 방주교회. 한국 건축의 새로운 이정표를 남겼다.

 

▲ 방주교회 전경

 

▲ 방주교회 실내목재는 아프리카 체리로 마감했다.(사진 유림목재 제공)


데뷔작 <시미즈의 집>을 시작으로 2011년 6월 타계할 때까지, 일본에 있는 <먹의 집> <조각가의 아틀리에> <석채의 교회> 과 한국에 있는 <각인의 탑> <온양미술관> <포도호텔> 등의 명건축물을 남겼다.

2002년에는 경기도 성남의 금토동 주택으로 한국건축가협회 작품상을 받았으며, 2003년에는 프랑스 국립 기메 미술관이 개인으로는 최초로 그를 초대해 ‘이타미 준 일본의 한국 건축가’ 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당시 기메 미술관은 그에게 “현대 미술과 건축을 아우르고 국적을 초월해 국제적인 건축 세계를 지닌 건축가”라고 찬사를 보냈다.

2005년에는 프랑스의 예술문화훈장인 ‘슈발리에’를 수상했으며 2006년 아시아 문화·환경상을 받는 등 생전에 여러 국제상을 휩쓸었다.


▲ 단순함으로 절제된 공간과 사물의 조합은에서 미묘한 감성이 일어난다. 

 

() 박물관 내부. 해를 따라 돌의 형상이 변주된다.

 

 

(박굴관 내부.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바람이 몸믈 통과하는 체험을 가질 수 있다. 

 

▲ 호텔의 후미진 곳에도 건축가의 공예적 철학이 베어 있다.

또 ‘제주 핀크스 미술관 석(石)·수(水)·풍(風)’으로 2006년 ‘김수근 문화상’을 수상과 일본에서는 2010년 무라노도고상을 수상했다. 2009년부터는 제주영어교육도시 개발사업 관련 건축총괄 책임자(Master Architect)로 활동하면서 대지로부터 얻어진 돌, 흙, 나무, 철 등 토착적인 소재와 색과 빛을 기초로 한 건축미를 강조했다.

그는 평소 “귀화한 사람이나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나 모두 조국이라는 이름의 땅을 그리워하기는 마찬가지”라며 조국에 대한 상념과 한국적 아름다움을 다양한 저작활동으로 풀어갔다. “아마도 제 몸에 흐르는 피와 저를 둘러싼 환경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타미 준은 본명인 ‘유동룡’의 삶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이타미 준’이라는 예명으로 엄숙한 자연 앞에 경배드리는 건축의 순례자로 살았다.

2011년 7월, 고국에 묻히고자 돌아온 그는 유작 가운데 제주 영어교육도시를 남겼다. 이후의 여정도 이어진다. 아일랜드리조트 클럽하우스와 빌리지, 성극장, 서원밸리 클럽하우스는 딸 유이화(ITM건축연구소장)의 손을 빌려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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