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가 박수동 : 느림의 칠(漆)학

Craft / 이현수 기자 / 2018-10-16 17:2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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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칠 인생 12년. 이제야 세상 밖으로 내 작품이 나왔다. 조금 느리지만, 바르게 내 갈 길을 가고 싶다.

 

박수동의 '나전옻칠 개인 다과세트'는 2016년 인천사공예품대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이번 공예트렌드페어에 출품했던 작품들도 공예진흥원에서 kcdf갤러리 입점 제안을 먼저 꺼내왔다. 4년 전부터 작품을 만들어 왔지만, 박수동 공예가의 작품은 2016년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 선보이게 되었다. 짧은 기간 내에 놀랄만한 성과다. 허투루 이루어낸 건 아니다. 12년을 스승 밑에서 올바르게 배웠고, 조급해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려고 했던 공예가의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모든 건 옻칠에서 깨우친 것이다.

옻칠에 물꼬를 틀다

공예인디자인학과를 진학해 금속과 나무를 다루는 것에 대해서만 배웠지, 옻칠을 살필 겨를이 없었던 박수동 작가는 할머니의 장롱만이 옻칠과 자개 이미지의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가장 친한 친구가 대학원에서 옻칠을 배우게 되었고 우연한 기회에 옻칠 작업 현장을 가게 되었다. 백골 상태에서 한 겹 한 겹 칠을 올리는 과정은 지금껏 자신이 해오지 못한 작업이었기에 흥미로웠고 배워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기까지는 거침이 없었다. 

 

공예 전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일괄적으로 그려내는 산업디자인의 틀에서 자유를 느끼고 싶었던 내재한 바람이 끌어 오른 것이었다. 운이 좋게, 옻칠의 물꼬를 틀 무렵 스승 정수화를 만나게 되었다.


촌스럽다는 이미지가 강했던 옻칠장은 정수화 선생의 작품을 보면서 완전히 탈바꿈되었다. 도제식 교육으로 사포질만 몇 년이었고, 다양한 칠 기법과 자개를 얹는 작업을 배우는 게 분명 녹록하지 않았지만, 고혹적이고 기품 있는 옻칠을 제대로 알 수 있다면 힘든 시간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직한 태도, 더 정직한 결과물


 

옻칠은 기존에 대학에서 배웠던 ‘나무’라는 물성에 대한 이해의 폭도 함께 넓어지게 했다. 백골에 삼베를 바르고 옻칠로 도장하는 기법인 ‘목심저피칠기’ 기법은 목재의 특성상 시간이 흐르면서 갈라지거나 틀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나무가 가진 불안정한 면을 보완시켜주는 것이다. 

 

또 느티나무 같은 경우에는 목리가 워낙 아름다운데, 흑칠이나 색칠 대신 맑은 투명 칠을 사용해, 목리를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목심칠기’ 기법을 사용하면 나무가 가진 특징을 겉으로 드러내면서 내구성은 쓰임에 맞게 보완시킬 수 있다는 것이 옻칠에 흥미를 가하게 했다. 재미를 느낀다 한들, 급하게 많이 만들 수 없었다.

 

 

옻칠의 작업과정은 박수동 공예가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심혈을 가해야 했다. 옻칠 과정에서 한 부분이라도 쉽게 생각한다면, 건조되지 않았을 때는 드러나지 않았던 미세한 흠들이 건조한 후에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결과물로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박수동은 칠하는 작업과정도 물론 중요하지만, 옻칠하기 전 정제칠의 농도를 맞추기 위해 몇 번이나 송정유를 이용해서 저어 농도를 맞추는 일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그 이유는 물기가 적어 빡빡한 옻칠을 올리게 되면 칠이 한 곳에 뭉치기가 쉬워, 균일하게 옻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건조할 때도 마찬가지. 온도는 20~30도, 습도는 70~80% 적정선을 유지해야 하는 건조 환경도 간단하게 넘길 부분이 아니었다. 

 

이런 과정은 한 차례로 머무는 것이 아니며, 7~8번 이상의 반복이었고, 그 시간을 따지면 적으면 한 달, 길게는 반년이고 1년이었다. 한 단계라도 자신의 재능을 믿고 우습게 생각한다면 뒤틀린 결과로 돌아오니, 흠을 없애기 위해 세월을 긁어내야 했다. 


도구는 전통, 해석은 현대



“공예품을 장식품에만 머무르게 하고 싶지 않아요. 진짜 사용할 수 있어야죠.” 공예가 박수동은 공예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재료와 도구는 전통적이지만, 현대에 쉽게 쓰이고 있는 보편적인 물건의 디자인을 현재의 전통공예품으로 소개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텀블러와 트레이를 옻칠해 나전옻칠 개인 다과세트를 만들었고,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작품을 옻칠 접시에 담아 이전에 없는 시선을 전통 공예품에 담으려 노력한다. 

 

앞으로는 벼루와 붓을 담는 연상이라는 함을 모티브로 해서, 밑에 다리를 달아 소반과는 다른 개념의 1인용 다과 함(函)을 만들 예정이다.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벽화, 집기, 접시류가 현대에 와서 그 시대를 상징하는 물품으로 남듯, 언젠가는 박수동의 가장 현대적인 디자인을 따온 작품도 지금 이 시대를 상징하는 전통공예품으로 남겨질지도 모른다.


 

 

박수동은 정수화 선생 밑에서 옻칠을 배울 때 한옥 전체에다가 옻칠을 한 적도 있었고, 1년 반 동안 옻칠을 교육한 적도 있으며 지금은 냉.온기에 옻칠을 접목하는 연구소 소장 역할도 하고 있다. 그런 하나하나의 경험들이 무늬와 형태를 전통 기법에만 한정시키려고 하지 않는 그의 작품에 칠해져 있다. 

 

작업하는 태도를 결과물로 대변시켜주는 옻칠을 통해, 인생도 부지런하게 살면 그에 조응되는 결과물을 맛볼 수 있을 거라는 느림의 칠(漆)학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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