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네틱 아티스트 양정욱: 이것은 아주 평범한 이야기

아트 / 김수정 기자 / 2019-09-02 18: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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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주 독특한 예술을 한다.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키네틱 아트(Kinetic Art)다. 키네틱 아트의 사전적 정의는 “움직임을 중시하거나 그것을 주요소로 하는 예술 작품”인데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움직이는 조각이다. 나무, 병, 플라스틱 따위를 실로 엮어 모터에 연결해 움직임을 만드는 그의 작업은 일견 기괴하고 수상해 보인다. 어떤 공포 앞에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움츠러들게 마련이지만 한편으로 그 공포의 실체를 확인해보고 싶은 욕구를 떨치지 못한다.

수상한 기계장치



그렇게 그의 작품 ‘언제나 피곤은 꿈과 함께’에 다가가면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령 이런 것이다. 밤부터 새벽까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남자가 있다. 새벽 네 시의 편의점은 담배를 사러 온 남자를 마지막으로 인적이 끊겼다. 교대하는 여자애가 오려면 아직 멀었다. 무료한 남자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유리창 밖을 바라본다. 길 건너 빌딩의 경비실 초소에 경비 아저씨가 졸고 있다. 아슬아슬 끄덕거리던 고개가 푹 떨구어진다. 소스라쳐 눈을 뜨지만 이내 꾸벅꾸벅 졸 것이다.

 


기승전결도 없는 이 시시한 이야기에는 불편함 없이 공감할 수 있는 어떤 감정들이 있다. 우리는 모두 꾸벅꾸벅 존다. 학원 버스에서, 점심을 먹고 들어온 사무실에서, 퇴근길 전철 안에서. 그런 졸음의 기억들을 떠올리다 다시 작품을 보면 그 움직임이 사뭇 다르게 보인다. 불규칙하고 기괴한 움직임은 꾸벅꾸벅 졸다 고개를 푹 떨구고 다시 소스라쳐 일어나는 우리들의 움직임과 꼭 닮아있다. 그것은 인체의 이미지가 제거된 우리의 어떤 모습이다. 


다른 작품 ‘날벌레가 알려준 균형전문가의 길’을 본다. 거대한 벌레의 형상은 공중에 가만히 매달린 채로 가쁘게 다리를 움직인다. 수십 마리의 날벌레가 나는 듯한 소리도 함께 들린다. 거기에 작가는 이러한 주석을 달아 놓는다.

 


“그는 가만히 멈추어 서있다. 순식간에 남편이 되었다가 아들이 되었다. 학생이 되었다가 손님이 되기도 하고 선생님이 되기도 했다. 매시간 자신이 불리어지는 위치로 허겁지겁 쫓아가서 그 자리에 앉아있기에 바빴다. 손님이 되었던 어느 시간, 공중에 떠있던 날벌레가 그에게 무엇인가 속삭였다. 그 후 그는 모든 역할이 항상 변해간다는 것을 이해했다. 이제 그는 가만히 멈추어서 균형을 잡으려 한다.”


몽롱한 몇 줄 주석만으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아 작가에게 묻는다.

“낮에, 열두 시쯤이었을 거예요. 편의점에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캔커피를 사서 말없이 유리창 밖을 바라보고 있더라고요. 말도 없었고 전화도 받지 않았죠. 그 위로 파리 한 마리가 있더라고요. 정지한 상태로. 멀리서 봤을 때 파리가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여도 아마 파리는 미친 듯이 날고 있었을 거예요. 회사원도 저렇게 가만히 서있지만 과장님이며 아내며 자식 생각에 머릿속은 미친 듯이 돌고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파리를 보면서 남자의 마음을 알게 된 거죠. 모든 사람들은 멍하니 있는 듯하지만 내면은 그렇게 복잡해요. 그걸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공감은 사소한 데서 온다


그가 이야기하려는 것들은 이렇게 사소하다. 그 사소한 영감의 대부분은 편의점에서 얻었다. 그는 편의점에서 9년째 일하고 있다. “장사는 잘 되지 않고 인사만 줄곧 해야 하는” 가게에서 막막한 새벽을 견디려면 어떤 유희가 필요했다. 영화는 볼 수 없었고 책은 졸렸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 나오는 월터처럼, 그는 혼자 상상의 유희에 빠져 들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그에게 그 일은 꽤나 재미있는 놀이였다. 취한 손님을 보면 왜 취했을까 궁금했고, 남녀가 들어오면 무슨 관계인지 궁금했다. 

 

누군가 돈을 던지듯 주고 가면 ‘저 돈에 날개가 달려 있어서 나에게 날아오면 좋았을 텐데’하는 따위의 공상을 했다. 그들과 나눈 것은 손님과 점원 사이에 으레 건네는 인사가 전부였지만 그들은 그들의 모습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런 것들을 읽어내고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웠다. 그것은 삶의 습관이 됐다. 

 


“굳이 자극적인 이야기를 찾지 않아도 주변에 이야기들이 깔려 있어요. 그런 이야기들은 공감하기가 쉽죠. 예를 들어 방화범의 이야기를 하면 자극적이고 할 이야기도 많을 거예요. 그렇지만 우리는 방화범의 심리에 공감할 수가 없죠. 하지만 피곤해서 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공감해요.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건 그런 사소한 것들이죠.”

평범한 이야기, 비범한 방식


그는 그런 평범한 이야기를 아주 비범한 방식으로 한다. 그가 이러한 형태의 작업을 택한 것은 ‘움직임’이야말로 그가 하려는 말을―적어도 지금까지는─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언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텅 빈 건물에 하이힐을 신고 걸어가는 여자를 상상해보세요. 움직임의 속도와 반응만으로도 우리는 그 여자가 지금 불안해하는지 여유로운지 알 수 있어요. 제가 키네틱 아트의 형태로 작업하는 건 움직임이 색이나 형태보다 더 선명하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방점은 ‘비범한 방식’이 아니라 ‘이야기’에 찍혀야 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사람들이 이야기가 아니라 키네틱 아트라는 한 방식에 주목하는 것을 무척 경계한다.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우와! 신기하다!’ 이런 감정을 먼저 느낀다면 나는 실패한 거예요. 그래서 전시를 할 때마다 실패했다는 생각을 조금씩 해요. 작업 자체가 신기하면 안 되죠. 제 작업은 제가 하려는 이야기를 표현하려는 하나의 방법이자 수단일 뿐이니까요.” 

 

 

그렇게 포착한 일상의 편린을 만지고 움직이는 실체로 표현하기까지는 수공예적 노동 이상의 길고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 영화 촬영에 앞서 시나리오가 필요하듯 그는 작업에 앞서 장문의 소설을 쓴다. 그는 ‘움직임’만큼이나 ‘언어’가 주는 뉘앙스에 관심이 많다. 그 긴 소설을 다시 몇 줄의 시로 압축하고, 제목을 붙인다. 그리고 거기에 합당한 상황을 형태로 만든다. 

 

발상을 얻고 정리하는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는 데 비해 이를 기계 장치로 만드는 과정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작업에는 주로 나무를 쓴다. 사실 나무는 그가 하는 작업에 그다지 적합한 소재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휘고 뒤틀리는 나무의 특성은 복잡한 계산 하에 움직이는 기계 장치의 부품으로 썩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나무를 쓰는 것은 “나무가 절반은 해준다.”라고 믿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나무를 쓰는데 거기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어요. 목재소에 파는 구조목을 말려서 쓰는 게 전부죠. 제가 나무를 쓰는 건 나무가 제 작품의 절반은 해주기 때문이에요. 어떤 재료보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와 잘 어울리죠. 나무 자체가 회화적이기도 하고요.” 

 


나의 작업이 모닥불이기를


그는 자신의 작업이 모닥불 같은 것이기를 바란다. 모닥불 앞에서 사람들은 일렁이는 불꽃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생각에 잠긴다. 기계장치가 만들어내는 그 독특한 움직임에는 절뚝거리는 내가 있고, 일에 치이는 남편이 있고, 매일 같은 말을 반복하는 텔레마케터도 있다. 그는 일렁이는 불꽃을 가만히 바라보듯 사람들이 그 움직임 속에서 자신을 보고, 자신을 둘러싼 일상을 보고, 무심하게 지나쳤던 많은 것들을 되돌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호기심을 거두고, 다시 그의 작품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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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욱 |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1년 경원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했다.<예술은 적당히>(2009), (2009), <사이의 변칙>(2012) 등 다수의 전시에 참가했다. 2013년 ‘언제나 피곤은 꿈과 함께’로 제35회 중앙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첫 개인전 <인사만 하던 가게에서>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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