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퍼니처 작가 정명택...우리 시대 가구에 대한 각별한 정의

아트 / 김윤주 기자 / 2021-07-15 19: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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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의자가 등장했다. 마땅히 붙어 있을 것이라 생각한 다리가 없다. 대신 거문고를 비스듬히 세워 놓은 듯한 나무 받침대가 놓여 있다. 풍류객의 연주를 기다리는 악기 같다. 어떻게 앉아야 할까. 걸터앉는 행위 대신 반 눕는 행위를 요구한다. 아름답고 도발적인 이 의자는 ‘아트 퍼니처’라는 새로운 물결을 타고 있다. 가구 형태의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만, 조형미와 기능성 어느 쪽도 양보하지 않는 가구디자이너 정명택의 <Ducking Lounge C

 

▲ Charisma

 

‘앉는다’는 행위를 너무 좁게 생각한 것이 아닐까? 정명택의 의자는 그런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의자’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서양에서 들어온 ‘입식문화’와 연결되어 있다. 조금만 넓게 생각하면 서 있는 것도 누워 있는 것도 아닌 중간 자세, ‘앉는다’는 행위에는 쪼그려 앉는 것도 걸터앉는 것도 가부좌도 있을 수 있다.

무릎을 쫙 펴고 다리를 쭉 뻗어 앉은들 어떠하리. 그렇다면 의자의 디자인도 보다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다. 어디 의자뿐인가. 우리가 사용하는 다른 가구들의 디자인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 독특하면서도 결코 기능을 잃지는 않는 이 의자에 정명택은 한 가지를 더 보태었다. 바로 심미성, 아름다운 것을 감상하는 즐거움이다. 곧 연주될 거문고처럼, 나긋나긋한 의자는 사용하지 않고 지켜볼 때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이 된다. 가구라는 것은 공간에서 사용할 때는 그 기능을 발휘하지만, 사용하지 않을 때는 조형성을 갖는다. ‘조형성’에 좀더 의미를 부여해 조각처럼 아름다운 가구로 만들어보고자 하는 것이 정명택이 선보이고 있는 ‘아트 퍼니처’이다.

아트 퍼니처 작가가 되기까지

물론 그가 처음부터 아트 퍼니처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건 아니다. 작가를 꿈꾸며 92년 입학한 홍익대 목공예(현재는 목조형가구)학과는 커리큘럼이 목공예, 목가구 중심이었다. 나무를 깊이 있게 배우는 것은 좋았지만 다른 재료를 배울 기회를 주지 않아 아쉬웠다. 나무와 다른 소재를 접목시키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 Steam bending bench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고 나무를 통해 입체물을 만든다는 것은 매력이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한국에서 공부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

그가 아트 퍼니처라는 단비를 만나게 된 것은 은사 최병훈 교수를 통해서이다. 90년대 초반 국내에 아트 퍼니처 개인전을 연 최병훈 교수는 1996년 홍익대에 아트 퍼니처란 과목을 개설한다. 국내 대학이 가구디자이너를 양성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이다. 정명택이 본격적으로 아트 퍼니처의 맛을 본 것은 대학원 산학협동과정 프로젝트 중 한 업체를 선택해 협업으로 가구를 전시, 발표하는 과제 덕분이었다.

재료로 ‘철’을 선택했고 용접 기술을 배워 가구에 접목시켜 보았다. 의자의 아이디어는 한옥 기와에서 착안했는데 ‘철’이라는 낯선 소재를 통해서도 표현이 가능했다.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그에게 아트 퍼니처 작업은 매력적이었다. 조용해 보이지만 내면은 열정으로 들끓는 이 젊은 가구디자이너는 그래서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로 결심한다. 로체스터 공과대학에서 다시 가구디자인을 공부하기 시작하고 아트 퍼니처 분야의 세계적인 작가 웬델 캐슬의 스튜디오에 들어가 자신의 작품을 진화시켜 나간다. 미국은 한국보다 공방 가구가 활성화되어 있었고 공법과 재료의 특성을 시험해 볼 기회도 넓었다.

“스팀 벤딩 작업은 한국에서는 말로만 들었지 해보지 못했어요. 유학 당시 벤딩 프로젝트에 스팀 벤딩 작업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단풍나무로 해보려 했지만 매번 부러졌어요. 한 70여 개 부러졌지요. 돈 없는 유학생이 재료비 참 많이 날렸어요. 자료를 찾아 굽힘, 강도, 수종별 퍼센트를 보니 단풍나무가 매우 낮은 거예요. 유연성 실험에선 호두나무가 우수했지만 생산 단가를 생각해서 물푸레나무를 선택했지요.” 

 

▲ Ducking Lounge Chair

 

‘Ducking Lounge Chair’는 그런 시행착오를 겪고 나무의 유연성을 발견해 탄생시킨 가구이다. 의자에 오르면 부러질 것처럼 연약해 보이지만 실제로 앉아보면 의외로 편안하고 탄력적이다.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느낌을 표현했다”는 그의 말을 실감할 수 있다.

 

부드러운 시소에 앉은 듯 상쾌하고 재미있다. 무거운 사람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무게를 실어도 부러지지 않는다. 재료의 물성에 대한 실험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의자로서의 기능도 잃지 않는 것이다. 미국의 가구학회는 그의 이런 새로운 가구를 먼저 알아보았다.

천연 등나무를 스팀 벤딩 기법을 이용해 만든 <오버 더 레인 보우>로 정명택은 미국 가구학회 신진 디자이너로 선정된다. 지상에 낮게 걸린 무지개가 쏟아지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예술성과 실용성을 두루 갖춘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아름답고 쓸모 있는 가구에 대한 그의 남다른 갈망과 노력이 낳은 결과였다.

 

▲ Seating for Communicating - Over the Rainbow

 

조형성과 기능성, 두 마리 토끼 잡기

유학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아트 퍼니처 작업에 입문하는 방법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저마다 다른 삶의 결에서 개성 넘치는 작업을 뽑아 올릴 수 있다고 본다.

“대학, 전공 등의 고정된 루트를 따라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꼭 형식에 맞춰 입문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신선한 작업을 할지도 모르죠. 가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자기 철학을 갖게 되고, 그 철학을 바탕으로 해 나간다면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지나치게 외국 사례만 보고 흉내 내거나 특이하기만 한 작업을 하려고 하는 학생들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도 기능을 상실한 가구는 가구가 아니라고 본다.

“조형성만 있고 기능성이 없다면 가구라고 할 수 없어요. 아트 퍼니처라고 하면 작가의 철학적 사고가 담겼으면서도 동시에 가구로서의 기능을 해야 합니다. 그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어야 해요.”

어느 사회나 독창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현대미술에선 그것을 더욱 강조한다. 재료의 이해나 기술은 오래 연마하면 어느 선에 다다를 수 있다. 하지만 반짝이는 착상도 자기가 거느린 세계 없이는 지속되지 못한다. 작가라면 자기 세계가 있고, 의식부재의 행위일지라도 체계가 서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서양 것만 추종하거나 특이한 것만 찾는 태도를 우려하고 탄탄한 개념과 철학을 바탕으로 한 결과물을 중시한다.


▲ Seating for Communicating - On the Log

 

독창성을 요구하고 부르짖는 시대에 전통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도 맞지 않다고 본다. 모방하는 것을 당연한 듯 여기는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 분야를 고정시키려 하고 표면적인 것에 대해서만 말하려는 태도 또한 경계한다. 작품이든 제품이든 특정 분야의 우월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디자인 영역은 상상력의 폭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디자인 영역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어요. 확실한 철학만 정립이 되면 그 결과물로 가구가 나올 수도 있고, 공간이 나올 수도 있고, 건축물이, 시티 플랜이 나올 수도 있어요. 저도 작품을 하고 있지만 제품 디자인도 하고 있습니다. 조각이냐, 작품이냐, 제품이냐 작업의 범위를 국한시키지는 않아요. 구분은 직접적인 작업에 들어가서 스케치를 할 때 필요하지요.”

마치 서로 반대쪽으로 달려나가는 듯한 두 마리의 토끼, 심미적 욕구와 기능적 필요는 그의 작품에선 모두 한 그물 속이다. 그는 아예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듯 ‘소통을 위한’ 의자 시리즈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디자이너란 다음 세대를 위한 제안, 제시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는 아이디어가 끊기면 디자이너의 생명력도 끊긴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것을 표현하기 위해 모험을 무릅쓸 수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타성을 깨고 변화하려 한다. 하지만 거기엔 반드시 탄탄한 철학적 바탕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것이 그가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데 쓰는 그물,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법이다.

 

▲ Flooring back Seating 0801


우리 시대 우리 가구를 꿈꾼다

미국에서 그의 의자는 동양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오버 더 레인 보우>에서 등나무 외에 바닥의 나무 소재 원형 역시 의자 역할을 맡았다. 한 사람은 좌식 문화를 대변하는 원형에 앉고 다른 사람은 입식 문화를 대변하는 등나무에 앉아 서로 다른 위치의 시선을 교환하는 것이 콘셉트였다. 하지만 서양인들은 원형바닥에 앉는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바닥이 ‘Sit’이 될 수 있지만 서양은 단지 ‘floor' 개념만 있기 때문이다. 문화의 차이란 이런 지점에서 불쑥 나타난다. 동양 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던 정명택은 이 지점에서 서구 사람들과 다른 동양적인 가구를 제시할 필요성을 느꼈다.

“일본 작가들은 일본 정체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작업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유럽, 미국도 마찬가지죠. 공방가구라든가 커뮤니케이션의 형성 등등. 하지만 국내는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우리에게 앉는 것이란 무엇인지부터 의문을 가지고 연구할 필요가 있어요.”

아트 퍼니처라는 낯선 분야를 서양에서 공부했던 그가 이제는 국내에서 새로운 형태의 한국적 가구를 꿈꾼다. 국내에서 공부할 때는 우리 것에 관심을 갖지 못했는데, 외국에 나가 뒤늦게 그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경복궁 기와 너머로 콘크리트 건물이 보이는 것이 우리에겐 예사지만 서양인들에겐 특이한 것이다. 우리는 삶의 공간에 테이블, 의자, 붙박이장 등 서양인의 가구를 그대로 받아들여 따르고 있다. 콘셉트를 아예 동양적인 것으로 제시할 수는 없는가. 편한 소파 개념을 모르고 바닥에 앉는 의자를 만든 것이 아니다.


▲ Happy light


“동양적인 공간 개념은 서양적 공간 개념과는 큰 차이가 있어요. 서양은 ‘벽’을 통해 외부 공간과 내부 공간이 분리가 되지요. 동양은 그런 공간 분리 개념이 정확하지 않아요. 그러니 우리 공간에 대한 개념과 정립이 먼저 서야 하고 설득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우리 가구가 나와야지요.”

그는 가구 얘기를 하면서 공간에 대한 얘기를 빼놓지 않는다. 공간에 대한 그의 관심은 지대하다. 평생 연구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고 한다. 그에게 공간이란 만질 수 있는 재미난 주제이며 가구와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이다. 공간 없이 가구만 단독적으로 놓고 디자인할 수는 없다. 가구는 살아가는 공간과 반드시 연관시켜야 한다. 여기서 한국적인 가구란 어떤 것인가 하는 물음이 던져진다. 또 우리의 삶에 이미 서양 문화가 정착되었는데 한국적인 것, 우리 것이 가능할까 의문도 생긴다. ‘벽’이 생겨버린 상태에서 우리 공간, 우리 문화라는 개념이 만들어질 수 있는가.

“찾아야지요. 그렇다고 한옥을 지어 살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가구는 시대를 대변하는 물건입니다. 조선시대 물건을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그대로 쓸 수는 없어요. 이 시대에 맞는, 바람직한 건축물과 가구가 필요합니다. 한 명의 힘으로 그렇게 되는 건 아니고 의식이 전반적으로 그렇게 흘러가야 한다고 봐요. 아트 퍼니처 작업을 하는 사람들과 공통된 관심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Eight Edge Drawers

 

우리 시대 흐름에 맞는 가구이되, 한국적인 가구가 나와야 한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요즘 그는 여행을 많이 다니며 사찰도 찾아다니고 있다. 우리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것을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기간이 짧아 안타깝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뛰어넘을 수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스스로도 아직 공부하는 단계라고 겸손하게 밝힌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작업’, 그에게는 줄기차게 물고 늘어져야 할 화두이고 과제이다. 방향은 있지만 난제이고, 풀어내기 어렵지만 도전해 볼 가치는 있다. 쏘아 맞힐 시간은 침침하고, 예고된 미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이미 그 새로운 길을 향해 조용히 걸음을 떼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정명택은 어느 날 불쑥 우리 앞에 새로운 한국적 가구와 함께 등장할지도 모른다.

 

정명택 : 홍익대학교 및 동대학원에서 목조형가구를 전공했고 미국 로체스터 공과대학에서 가구디자인을 공부했다. 미국 에서 Wendell Castle Collection의 디자이너/제작자로 벤치와 테이블 제품을 생산한 바 있다. 2006년과 2008년에 정명택 아트퍼니처전을 열었고, 2009년에는 지식경제부와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선정하는 차세대 디자인 리더로 선정되었다.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청주공예비엔날레, 한국기초조형학회국제교류전, 런던디자인페스티벌 등 국내외 굵직한 그룹전에 해마다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현재 영남대학교 디자인미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디자인서울클리닉 전문지도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 아트퍼니처 정명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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