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이수홍...이분법 극복을 위한 조형적 시도

아트 / 장상길 기자 / 2021-05-16 21: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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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홍에게 ‘사이’는 공존과 균형의 세계이다.

 

▲ 안과 밖-그 사이 설치전경, 1997 

 

조각가 이수홍은 스물다섯 해가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안과 밖 - 그 사이’라는 화두를 끌어안았다. 안과 밖을 이분법으로 구획하는 건 그가 유년기부터 경험했던 이 세상의 질서였고, 그에게 인식되는 세상 그 자체이기도 했다. 이수홍 작가는 차이를 ‘다름’이라는 이분법의 질서로 받아들이기도 하는 세상의 질서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는 자유의지를 작품에 담고 있다.


조형 철학의 출발

논리학에는 모순개념과 반대개념이란 다른 속성의 개념이 있다. 유와 무, 선과 악, 삶과 죽음처럼 두 개념의 사이에 중간개념이 없는 상태가 모순개념이다. 모순개념에서는 흰 것과 흰 것이 아닌 것의 식으로 관계를 이분법적으로 정의한다. 이에 반해 반대개념은 중간적 속성을 허용한다. 백색과 흑색은 중간에 회색을 허용하는 반대개념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속성이기도 한 이 개념은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인식체계이기도 하다. 조각가 이수홍이 조형적 주제이자 예술적 화두로 삼은 ‘안과 밖-그 사이’는 바로 이 두 개념이 인간사회에서 발현되는 방식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 자연태도, 3100x3200x1400, 2013

 

 

자연과 인공은 분명히 중간이 없는 모순관계일 수도 있지만, 자연 상태의 나무를 깎아 만든 조형물의 경우 자연과 인공이라는 두 가지 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므로 반대개념에 속한다. 모순개념과 반대개념의 가장 큰 차이는 반대개념의 경우 양 속성이 다 부정될 수도 있지만, 모순개념은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참이어야 관계가 성립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두 개념 중 어떤 관점으로 조형물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조형물의 의미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반대개념으로 성립되어야 마땅한 논리적 관계가 인간사회에서는 감정적 모순개념으로 바뀌는 대표적 부조리함이 ‘흑백논리’다. 흑백논리는 때로는 그 질서 안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경우 매우 폭력적으로 개인을 억압하는 기제로 된다. 특히 우리 사회는 흔히 ‘패거리문화’식의 이분법적 사고와 주장들이 매우 흔하게 목격되는 사회다. 이수홍은 흑백논리식으로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들을 부조리함으로 인식했다. 특히 1980년 대학에 입학해서 “격동의 현대사”를 체험하며 성장했던 예술가에게는 탱크가 대학교 정문을 막아서는 상황 자체가 납득할 수 없는 모순 그 자체였다.

“저는 제 작업에 대해 이분법 극복을 위한 조형적 시도라는 표현을 자주 합니다. 이분법적으로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들이 저에게는 비논리적이었어요. 인간에게는 선택을 유보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이 자유의지를 억압하고 안과 밖이라는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상황들에 동의할 수가 없었던 거죠.”

이수홍은 이 이분법적 사고의 해결책을 자연의 균형 상태에서 찾는다. 자연의 균형은 동양에서는 흔히 ‘음양의 조화’라는 식으로 해석한다. 자연은 음과 양의 성질을 동시에 갖고 있으며 이 두 성질이 스스로 조화를 이루며 생명의 순환을 연속시키는 평형상태를 유지한다는 인식이다. 결국 음양의 조화란 자연의 자유의지인 셈이다.  

 

 

▲ House & Home, 270x210x300, 2015

 

 

▲ 안과 밖–그 사이:요철, 190x200x880, 2015



나무와 대화하다


이수홍은 ‘안-밖-사이’라는 삼각의 관계를 자연 상태의 나무와 그 나무의 형태를 묘사해서 깎은 인공의 나무를 나란히 병치하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자연과 인공, 이성과 감성, 논리와 직관이라는 두 개념적 속성이 상반된 조형물을 통해 드러나면서 주제의식 또한 매우 명징하게 표현된다. 이수홍 조형철학의 핵심으로 읽히는 ‘그 사이’는 결국 이런 조형적 대비를 통해 도출된다. 이수홍의 조형언어에서 자연과 인공으로 대비된 속성들은 흑백논리의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음과 양의 관계처럼 균형을 이루는 상보적 관계가 될 수 있는 ‘사이’라는 중간계, 혹은 중간개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는 공존이나 균형의 상태를 의미하는 지향점이겠지만, 그 자체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상징하는 보편적 진리로 읽히기도 한다.

“자연은 삶과 죽음, 상승과 하강, 밝음과 어두움, 다가옴과 멀어짐과 같은 상반된 상황에서 균형을 잃지 않습니다. 이런 이중적 상황과 그 사이의 균형이 내 작업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죠.”

이수홍 작가는 안과 밖, 그 사이라는 주제를 25년이 넘긴 긴 시간동안 얘기하고 있다. 이 주제는 매우 평이해 보이지만(이미 30년 전 미국 유학시절 담당 교수도 이 문제를 지적했다고 한다.) 실은 평범하기 때문에 조형적으로 풀어내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 너무나 평범하기 때문에 예술가로서 그 주제적 실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더 깊은 철학적 사유와 고민이 요구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이수홍이 2016년 1월 미국에서 선을 보인 <안과 밖, 그 사이 - 요철>전은 그의 주제적 천착과 조형적 시도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왕성하게 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안과 밖–그 사이:요철, 580x340x100, 2015

▲ 안과 밖–그 사이:요철, 각각 490x380x100, 2015

 

 

미국 첼시에 위치한 현대미술 갤러리 아트 모라(ART MORA)에서 열리는 전시는 凹와 凸이라는 언어 조형에서 출발해 그것이 합해지고 분리되는 다양한 의미망을 조형적으로 해석했다. 역시 재료는 나무이다. 이수홍 작가는 돌에서 출발해 나무에 안착했다. 두 재료의 차이를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돌은 처음에는 어려워 보이지만 나중에는 쉽습니다. 극복이 가능하죠. 나무는 정 반대에요. 쉬워 보이지만 결코 극복할 수 없어요. 그래서 재료를 극복하겠다는 욕망을 포기했어요. 그저 나무와 대화를 할 뿐이죠. 조각가에게 재료는 내 생각을 담기 위한 도구이겠지만 나무를 만지면서는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나무 자체가 바로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자연의 균형을 담고 있는 생명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죠.”

사진제공 이수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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