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이력을 조각한 신혜림 장신구전, <시간의 비가 내린다>
공예의 맥락과 전통 안에서 그의 작업이 ‘삶과 정신의 거울’ 모색
12월 14일 (목)부터 라흰갤러리에서 개최
강진희 기자
woodeditor2@woodplanet.co.kr | 2023-12-20 10:03:42
금속공예계의 중진 작가인 신혜림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이에서 형성되는 복합적인 관계와 가치를 이해하고 이를 삶의 물결 위로 실어내는 작가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공예 미학의 근본적인 요건들을 층별로 구획된 전시 공간에 하나씩 풀어내며, 공예의 맥락과 전통 안에서 ‘삶과 정신의 거울’로서 모색하고 있다.
‘시간의 비가 내린다’는 신혜림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개념으로 하루하루를 축적한 ‘반복’의 결과이다. 지하 공간의 ‘벽을 위한 사물’은 금속에 실을 덧대어 선을 이룰 때까지 감고 이 선을 쌓기를 다시 수십 번 반복하여 완성한 것으로 작업을 구성하는 모든 가닥들은 작가가 오랜 시간 집약한 시간들이다.
전시장 1층 ‘그림으로 만든 브로치’는 장신구들을 ‘몸을 위한 사물’로 선보인다. 비를 주제로 직접 그린 그림의 캔버스 천을 감아 압축한 후에 금속의 틀 안으로 모아 평평한 형태로 가공한 결과물이다. 장신구의 본질에 맞게 신체를 보완하면서 ‘관람’이라는 또 다른 기능을 지니도록 했다.
전시장 2층의 ‘구석을 위한 사물’은 은으로 제작된 작은 오브제와 가느다랗게 이어지는 선형의 작업들을 실내의 빈 여백에 대담하게 얹음으로써, 무료하고 공허했던 공간에 의미를 부여했다. 구석의 경계에 무심하게 놓인 이 작업들은 증폭하는 형상이 되어 사물의 내적인 목소리를 공간을 채웠다.
마지막 층의 ‘보여주는 이야기’ 작업들을 쌀알과 숟가락, 실 등 여성의 일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재료를 써 내러티브 오브제로 전환했다. 작가의 생활을 둘러싼 소소한 사물에 작가의 삶과 내면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시간의 비’라는 4개의 주제가 어떻게 순환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지도이다. 비가 내리고 증발하는 일이 반복되어 물방울이 순환하듯, 작가의 삶과 작업도 또한 실타래처럼 이어져왔음을 고백하고 있다. 이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이어져 생의 형식을 헤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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