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개인전 <Bagatelle in Void>...사소한 존재의 물질적 공간 질료
'웜홀(worm hole)’의 비가시적 존재를 작업의 모태를 서사
매스와 매스는 공간을 유영하고
2025. 06. 18. - 06. 28. '비트리 갤러리 부산'
편집부
woodplanet@naver.com | 2025-06-10 10:41:25
‘존재(存在)는 존재 이전의 존재로 말미암아 존재한다.’
동양 철학의 바탕인 성리학은 모든 존재의 이치를 이기론(理氣論)에 함축한다. 이(理)는 사물의 존재와 생성 이전의 이치를 뜻하며 소리, 냄새, 부피, 겉과 속, 정의, 헤아림, 조작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직접 감각할 수 없는 성질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무(無)의 상태는 더 더욱 아니다.
기(氣)는 사물의 존재와 생성과 관련된 질료(質料)·형질(形質) 등의 현상적 요소로서 직접 감각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구체적 성질이자 생성 현상이다. 모이고 흩어지며, 굽히고 펴는 성질과 낢과 뜀, 생성되어 다하여 사라지는 것으로 유위(有爲), 유욕(有欲)의 본성을 드러낸다. 또한 모든 사물 현상과 존재의 바탕이 되는 질료(DNA)로 존재한다.
우주 만물은 이(理)와 기(氣)의 순리에 속한 채로 어루만지고, 움켜잡고, 집다, 문지르고, 보듬고, 빚고, 매만지고, 다듬고, 채고, 휘고, 꺾는 능동성과 닳고, 갈라지고, 부풀리고, 깎이고. 꺾이고. 흠집 나고, 구부러지고, 닳고, 터지는 피동성을 취한다. 존재는 존재 전의 존재에 의해 현상한다.
이정훈과 그의 작업은 동양적 사유 체계인 이기(理氣) 철학을 선험적 바탕에 있다. 그는 “자연 현상에는 균형과 질서가 존재한다.”를 명제로 ‘웜홀(worm hole)’의 비가시적 존재를 작업의 모태로 서사해 왔다. 블랙홀과 화이트홀의 시공간을 관통하는 웜홀은 우주의 중력과 관성력에 의해 내재하지만 현상 그 자체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존재 너머 존재 질서이며, 어쩌면 대혼란의 카오스 우주가 세계적 질서를 이룬 코스모스 우주로 변환하는 궁극의 이치임을 이정훈은 신념화했다, 대우주의 무한 원리는 철학자 자크 라캉의 “인간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해진다.”라는 주장처럼, 기정된 우주 질서를 고스란히 수용한 것이 그의 작업 세계이며, 그것의 현재는 배꼽이나 과실의 꼭지라는 매우 단순한 미니멀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는 작가의 ‘상상계’ 혹은 ‘상징계’의 현상으로 그가 어떤 시공간에 안착하는지를 귀띔해주고 있다.
이정훈은 자신의 작업 노트에서 ‘잡히지 않는, 잡을 수 없는 신기루’를 물질적 이미지로 전환하는 것이 작업의 목표라고 고백하고 있다. 신작 ’Void_bagatelle‘은 신기루의 대상체이다. 목재 덩어리의 표면인 외부 목리가 작은 구멍으로 연속적으로 빨려 들어가는 무궁한 상태를 취하고 있다. 이는 중력에 의한 우주적 물리 현상을 상징하는 것으로 웜홀의 자연적 중력과 관성력에 다름 아니다. 또한 이는 존재 이전의 존재가 생명력을 통해 존재 그 자체로 자생하려는 이정훈의 물리적 상상계의 표상이면서 작가 세계의 상징계로 이해해야 한다.
’Void_bagatelle‘는 객관적 인식 체계를 이미지 체계로의 대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idea) ‘감추어진 현실’을 현재성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면서, 이미지를 형태가 아닌 물질 그 자체로 파악하고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요소들을 모두 제거하는 과정을 띠고 있다. 이는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 말한 살균된 세계를 벗어나 자연계의 질서에 순응하는 태도와 같다. 외적 형태를 나무의 생명력에 기인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작가는 나무의 형태가 아닌 나무라는 성질 그 자체에 주목한다. 목재의 형태적 변화와 조형을 위한 물리적, 기계적 기법을 넘어, 목재 고유의 물성이 스스로를 창조한 이미지를 수행하는 것이야 말로 이정훈 작업의 실상이자 실체이다.
물질은 그것의 고유한 ‘업(業)’에 따라 ‘체(體)’로 나타난다. 배꼽은 생명을 일으키는 통로이자 살핌의 모양으로 존재한다. 관념, 의지, 의도는 업을 통해서만이 체에 이를 수 있다. 우주를 떠다니는 미립자들이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빅뱅을 일으키고 대우주를 이룬 것과 같이, 우리 앞에 놓인 그 어떤 물질도 의도한 바가 분명할 때 자기 자장(磁場)을 일으켜 체를 이룬다. 그런 맥락으로 볼 때 이정훈의 ’Void‘ 시리즈는 사소한 물질에 생명선을 매는 것에서 시작된 업과 체의 공간 덩어리이다. 그것은 생명의 모호함, 공간의 무한함, 물질의 고유함이 하나의 유기체로 존재하면서 우주의 공간 질서를 이루고 있다. 기능의 각별함을 떠나 사유의 유연함에 기인한 결과이다.
이정훈은 이번 전시를 “존재감은 없지만, 존재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을 이루고자 한다.”고 명명했다. 그는 지금까지 가구 디자이너의 합리성에서 공예 작가의 역사성까지 읊은 작가이다. 때로는 전통을 유추해 미적 기물을 다듬었고, 한편으로는 물질의 의미를 톺아가는 만물의 절대성을 도모하기도 했다. 이제 그는 몽상가(夢想家)의 입장을 취하기로 했다. 몽상가는 실현성이 없는 헛된 생각을 반복하는 비이성적 구현이 아니라,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면서 심연을 마주하는 사유의 세계를 펼치는 자를 말한다. 같은 선상에서 이정훈은 웜홀의 중심에 진입해 만물의 생성 원리를 탐구하고 비가시적 세계를 탐험하는 우주 공간의 모험가이기를 자처한다. 매스와 매스를 잇는 가는 띠는 공간을 유영하고자 하는 굳센 의지의 표현이자 공간 개념의 매듭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정훈은 언제나 극소주의 표현을 기초로 물질의 기류를 공고한 자태로 묘사해 왔다. 최소의 기능과 청렴한 디자인이 어우러진 그의 가구는 청태가 피지 못하는 청정 지역의 샘물처럼 맑았다. 누구나 그의 사물에 안착하고자 한다면 몸의 자세를 바로 고쳐 잡아야 했다. 그것으로 충분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진정으로 그가 몽상한 세계는 기(氣)를 넘어 이(理)에 원리에 접신하는 것이었고, 블랙홀의 중심을 관통하는 웜홀의 공간 에너지였다. 그것은 우주의 시원에 안착하려는 유위(有爲)이자 무위(無爲)의 통섭이면서, 존재와 비존재의 섭리에 순응하려는 한 예술가로서의 애달픈 소망이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전시 ≪Bagatelle in Void: 사소한 존재의 물질적 공간 질료≫는 존재 그 자체로 우주의 만물이 되고자 하는, 어떤 근원성이 되고자 하는 나무의 물성적 몸부림에 호응한 작가 이정훈의 순수이성에 의한 사물이다. 검은 나무 덩어리의 가슴과 옆구리를 파고드는 우주의 방울 자국에 눈을 맞추고 그 속을 살피는 가운데 희미하나마 생명의 시원을 발견하게 되는, 무한한 경이로운 세계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Void_bagatelle’, ‘Void‘는 오로지 그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업(業)과 체(體)의 순환임을, 이정훈의 우주적 몽상임을 기억해야 한다.
글 육상수 공예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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