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송을 좋아하는 기철 형님

편집부

woodplanet@naver.com | 2026-04-14 11:04:08

 

우리 부부는 신기하게도 ‘신기철’이란 이름을 가진 분을 세 명이나 알고 있다. 한 분은 경주에서 주꾸미 장사를 오랫동안 하신 시이모부님이고, 또 한 분은 과거 서방파의 넘버 투였다고 하셨던 형님이신데 안타깝게도 올해 병고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마지막 한 분은 건축일도 하시고, 사과농사도 지으시는 손재주가 굉장히 좋으신 분이다.

그는 낙엽송 예찬론자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은 첫 번째 황토방도 낙엽송 예찬론자인 마지막 신기철 씨의귀틀집이 모델이었다. 그의 집은 작지만 반듯하고, 고요하지만 기운이 넘쳐 보이는 집으로 꼭 자족하는 선비를 연상시킨다. 우리 부부는 그를 기철 형님이라고 부른다. 정이 많아 “형님, 이번 주말에 귀틀집에서 자고 갈래요”라고 하면 형님은 안 그래도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래지며, 아궁이에 불을 신나게 때신다.

덕분에 우린 절절 끓는 방에서 밤새 한숨도 못 잔 경우가 많았다. 그 집에 누워서 천장을 보면 상량식 때 써 놓은 글귀가 보이는데 참 좋다. 창문은 네모반듯하지 않고 휜 나무 그대로 비정형의 모양인데 나무가 그렇게 생겼기 때문에 틀도 그대로 살렸다고 하시는 분이다. 그 창밖의 풍경이 기철 형님의 눈으로 본세상이다.

진공관을 통해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고 있으면 종종 형님의 집짓는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곤 한다. 그 집 주변으로는 묘목들도 많은데 나무집을 지으실 때 항상 나무도 함께 많이 심으신다고 하신다. 잃음과 얻음, 비움과 채움, 모든 게 자연의 순리대로 일을 하시는 분임이 분명하다. 요즘에 특히 더 이러한 분들이 오래오래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작년 겨울 카페 천장을 낙엽송으로 올려 내부 마감을 하면서 매우 힘들게 일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조금은 늦었지만, 기념수 두 그루도 최근에 심었다. 생생한 추억이 되는 순간이다. 기철 형님은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난 낙엽송이 믿음이 가. 작업할 땐 힘들지만, 낙엽송이 좋아. 그게 말이지 쭉쭉 뻗은 날씬한 아가씨의 모습 같기도 하단 말이야.”

나무에서 사람을 떠올리는 기철 형님이다.

- 글 그림 이두나

 

[ⓒ 우드플래닛.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