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주거...<궁정동 사회주택 청운광산>
임업진흥원 <목재 인테리어 공모전> 주거부문 수상작
고가의 CLT(구조용 집성판)을 대체할 HBE(구조용 집성재 패널) 사용
3개 층에 11개의 방이 있고, 최상층엔 공유주방이 위치
구보건축사사무소 설계
편집부
woodplanet@naver.com | 2024-09-03 11:09:28
북악산과 인왕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서울에서 만나기 어려운 풍광 아래 서울시 토지임대부의 첫 번째 사회주택인 궁정동 ‘청운광산’이 터를 잡았다. 이곳은 청년 1인가구를 위한 보금자리로, 이들은 ‘따로 또 같이’ 양질의 주거환경 하에서 삶과 취향을 공유한다.
궁정동 청운광산은 고가의 CLT(구조용 집성판)을 대체할 HBE(구조용 집성재 패널)과 철근콘크리트의 혼합구조로, 합리적인 비용으로 숨 쉬는 목구조 공간을 조성하면서도 안전성을 겸비했다. 뿐만 아니라, 대지 면적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11세대가 한 지붕 아래에 놓인 만큼 다양한 크기의 창을 충분히 내어 답답함은 해소하고 여유로움을 더하고자 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주거유형 실험
이 시대 청년의 절반 이상은 혼자 산다. 하지만 혼자가 낯설지 않은 밀레니얼 세대는 연대와 연결 역시 소구한다. 이러한 오늘날 청년의 모습은, 마치 혼자 선 건물임에도 사방의 창들을 통해 주변과의 연결을 시도한 점은 청운광산의 개성 있는 외양과도 닮아있다. 1층의 카페 겸 식당 ‘큔(kyun)’과 분리된 출입구를 통해 내부로 들어서면, 누크(nook)로 층간이 이어진 3개 층에 11개의 방이 있고, 최상층엔 공유주방이 위치해 있다.
계단실의 누크형 공간은 방과 방을, 사람과 사람을 느슨하게 연결하면서도 분리한다. 한편, 공유주방의 천정에 뚫린 통창은 비좁은 내부임에도 불구하고 거주자들이 같은 풍경을 공유하며 여유를 누리길 바라는 의도가 충실히 반영되었다. 청운광산의 내부에서 가장 특징적인 건축적 요소를 이 두 가지로 꼽을 때, 이들은 각각 ‘따로’ 또 ‘같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점들이다.
한편, 오피스텔, 아파트 등의 주거 형태가 익숙할 오늘날 청년들에게 11개의 방을 가득 메운 목재 벽 구조는 신선함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렇듯 나뭇결이 살아있는 벽으로 둘러싸인 각자의 공간은, 진정한 휴식공간으로서의 집을 실현하고자 한 실험의 결과물이다.
차경의 미학
크지 않은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다채로운 비율의 창문들이 네 입면들을 채우고 있는 점은 청운광산의 큰 특징 중 하나다. 이는 창문 크기의 변주를 통해 사방의 주변 풍경을 내부에 들여 사용자가 느끼는 공간의 확장 효과를 꾀한 것으로 읽힌다. 이같은 ‘차경(借景)’의 기법은 경복궁 경회루, 창덕궁 후원 등 우리의 전통 건축에서도 애용한 기법이다. 선조들이 인왕산과 북한산의 장관을 ‘빌려’ 실내에서 향유했듯, 청운광산 역시 500여년의 시차에도 변하지 않은 같은 풍경을 빌린 것이다.
마천루의 숲에서 지내며 자연을 접하기 어려운 청년 세대들에게 이러한 주거공간은 진정한 휴식처이자 도심 속 오아시스임에 분명하다. 청년기에 이 곳에서 거주하는 경험은 그들에게 그저 금전적 가치로, 최저의 생활수준을 겨우 갖춘 거처로만 기능하는 곳이 아닌 ‘집’, ‘삶’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청년을 위한 보금자리 건축
이 시대 서울의 청년 대다수는 개발 논리와 수익구조만을 내세운 우리 사회의 건축 방식에서 약자가 되기 쉽다. 청운광산은 그런 청년들에게도 스스로가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 등장한 좋은 본보기라 평할 수 있다.
복지, 사회주택, 주거난 등 관련 키워드와 연상되는 주거공간에 대한 고정관념과 달리, 청운광산에서는 ‘대접받는 느낌’, ‘사람 사는 곳’에 초점 맞추어 지어진 공간임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도시 문제, 청년 문제가 나날이 커지는 오늘날 서울의 상황을 기민하게 포착하면서도, 청년들이 나무처럼 산처럼 ‘숨 쉬며’ 성장할 수 있는 일상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고자 한 구보건축사사무소의 목표가 이 공간에 집약된 것이다.
자본 논리 대신 공간이 인간에게 지니는 의미, 자연과 인간의 연결을 지향하는 마음이 앞으로 더 많은 시민들에게 가닿을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설계: 구보건축사사무소 (대표 조은희)
·시공: 코아즈산업
·사진: 텍스쳐온텍스쳐 신혜수
·글: 이나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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