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고 다니냐?

이인혜 기자

woodeditor3@woodplanet.co.kr | 2024-01-25 11:28:42

 

 

‘식구(食口)’는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식구란 의미가 옅어진지 오래다.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있지만 같은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은 적이 언제였던가. 내 가족끼리 찌개를 떠먹는 것보다 남들과 반찬을 나눠먹는 시간이 더 많다. 밥 먹으라는 소리에 흩어져 있던 식구들이 밥상에 한 데 모여 밥을 먹는다. 부딪히는 젓가락 사이로 말이 흐른다. 밥상은 단순히 음식을 받치는 ‘상(床)’이 아니라 가족의 모습이 담긴 ‘상(象)’이다.

밥상의 역사는 낙랑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낙랑고분에서 발견된 삼족동반(三足銅盤)의 모양에서 밥상의 옛날 모습을 찾을 수 있는데 상이 둥글고 세 개의 다리는 매미모양을 하고 있다. 이러한 모양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로 오면서 밥상의 모습은 다양해졌다.

원형과 사각형으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단칠과 흑칠 입혀 개성을 살렸다. 밥상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더욱 다양한 형태로 발달했다. 유교사상이 지배적이었던 조선시대는 계급에 따라 왕의 밥상인 수라상을 비롯하여 관가에 점심을 나르는 공고상, 개다리소반까지 그 모습이 다양했다. 조선시대 소반은 만들어진 장소에 따라 그 명칭이 달라지기도 한다. 전라남도 나주 지방에서 만든 나주반, 황해도 해주 지방에서 제작한 해주반, 경상남도 통영 지방에서 생산되는 통영반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소반이다.

세 지역의 소반은 조각 장식, 다리의 모양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소반을 만들 때 반에는 주로 결이 곱고 치밀한 은행나무를 사용했다. 때로는 나뭇결이 좋은 느티나무를 쓰기도 했다. 다리는 주로 소나무로 만들었는데 특히 해주반의 화려한 다리는 단단한 가래나무를 조각해 만들었다.

우리나라처럼 현대화가 빠르게 진행된 나라가 또 있을까. 옛날의 것은 모두 촌스럽고 구닥다리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꿔 들였다.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물건들이 드넓은 바다를 유유히 헤엄쳐 들어왔다. 사람들은 열광했고, ‘양(洋)’자가 붙은 물건들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좌식 생활에서 입식 생활로 변화하면서 밥상 역시 그 모습이 달라졌다. 옛날 밥상은 민속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과거의 것이 되어버렸고, 식탁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현대의 식탁은 주로 애쉬, 스프루스, 오크 등의 서양 나무를 만들어진다. 빈티지, 앤티크, 북유럽 풍, 아일랜드 풍 등의 서양식 디자인을 본 떠 만들어진 식탁이 대부분이다.

밥상이 식탁으로 모습만 변했을 뿐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니다. 온 가족이 밥을 먹으며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란 것은 변함없다. 밥상이건 식탁이건 그 모양새는 중요치 않다. 식구를 위한 밥상을 차려보자. 가을에 수확한 곡식과 채소로 음식을 차려 크게 한 숟갈하자. 서로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온다. 튀어나온 밥풀이 그저 정겹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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