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예가가 만드는 나무의 레시피...부산의 목공예가 박태홍의 나무 그 자체의 물성
전미희 기자
woodplanet@naver.com | 2026-03-11 11:57:10
부산 토박이인 박태홍 작가와 이용기, 두 작가의 작품은 사진으로만 보아도 나무 그 자체의 물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나무가 주는 힘을 눈으로만이 아니라 손과 코와 귀로 느낄 수 있다. 바다의 도시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나무 레시피는 그 자체로 설렌다. 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짜 나무다움의 힘
2013년 1월호 우드플래닛에서는 나무의 물성을 가구에 그대로 녹여낸 작가를 소개한 적이 있다. 거친 끌 자국이 인상적인 가구는 박태홍 작가의 둠 시리즈였다. 둠 시리즈는 사물이 가장 자연스러운 자리에 그대로 ‘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연스러움을 살리기 위해 그는 나무의 색깔과 물성, 형태를 그대로 살려 작업을 했다. 한눈에 보아도 나무의 맛을 알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달랐다. 사물에 대한 그의 정의는 같았지만, 이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2015 둠 시리즈의 작품들은 모두 같은 색감과 형태로 공간에 놓여 있었다. 까맣게 탄 나무와 이를 받치고 있는 금속이 만나 하나의 선을 이루고 있어, 어디까지가 나무이고 금속인지 그냥 보아서는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또한 오로지 사각 형태로만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사물의 쓰임이 무엇인지 짐작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이미 박태홍 작가의 지난 작업물들을 보았기 때문에 낯선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그 정형화된 색과 형태 속에서 유난히 빛을 발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나무의 결이었다. 깊고 진한 결과 옹이는 까맣고 네모난 사물 안에서 더욱 강하게 전달됐다.
“우리 일상에는 너무나 색이 많아요. 나무인 척 하는 가구도 많고요. 또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구조 속에서 대부분 똑같은 배경의 집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아주 기본적인 형태로, 간결하지만 짙은 색감으로 그 사이에서 진짜 나무다움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 묵직한 가구가 그러한 공간에 들어가면 온몸으로 자신이 나무임을 발산할 테니까요.”
작가는 이 작업을 위해 전통공예기법인 낙동법을 적용했다고 전했다. 나무를 태움으로써 기존의 결을 더욱 강조한 것이다. 또한 균일하고 짙은 색을 얻기 위해 칠을 더하고, 나무의 형태를 모두 사각으로 만들어 작품이 갖추고 있는 기본적인 요소를 똑같이 했다. 그러나 각각의 사물은 닮은 듯 닮지 않았다. 저마다 다른 결과 옹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두툼한 결에서 세월을 느끼고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어떤 것으로도 덮어지지 않는, 세월과 자연의 숨결이 만든 흔적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러니 제아무리 형태와 색감을 똑같이 적용한다 할지라도 모든 작품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는 나무만이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고, 그 힘이다.
“이리 와서 앉아 봐요.” 박태홍 작가는 작품을 바라보고만 있는 기자에게 앉아보고 만져볼 것을 권했다. 그래도 엄연히 미술관 조명 아래 전시되어 있는 작품인데 이래도 될까 싶었다. 작가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소지품을 그 위에 올려놓고, 낮고 널찍한 작품 위에 앉았다. 그를 따라 나도 슬쩍 가 앉았다. 그리고 만졌다. 역시 보는 것으로는 알 턱이 없는 감촉이었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 생활에는 나무 아닌 것이 나무인 것처럼 흉내 내고 있는 것들이 많지만, 이 결에서 느껴지는 감촉은 따라하려 해도 따라할 수 없다. 요즘 가구들은 소재가 묻히는 경우도 더러 있다. 굳이 나무를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말이다. 작가는 나무로밖에 나타낼 수 없는 것을 보여준다. 아주 단순한 디자인과 색으로도 작품의 바탕이 나무임을 완벽히 드러낸다.
오랜 시간 목공예가로 활동해 온 박태홍 작가는 이번 작업을 통해 공예가로서 고민도 한층 깊어졌다고 말했다. 50년 넘게 목공예에 발을 담가온 그이지만, 지금처럼 공예가 주목받았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공예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배경에는 기술적인 면도 있을 테지만 조형적인 부분에서 발전을 이뤘기 때문이라고 박태홍 작가는 생각한다. 그리고 단순히 쓰이기만 하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예술 장르로서의 공예를 이번 둠 시리즈에서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2012년 첫 번째 둠 시리즈와 다른 점도 여기서 비롯된다.
“그 당시는 나무를 놓고 디자인했어요. 나무를 보고 거기에 어울리는 형태를 고안했다면, 이번 작은 드로잉을 먼저하고 거기에 나무를 맞췄어요. 어떻게 하면 더 작품성을 나타낼 수 있을까, 공예가 지닌 미학적인 부분을 어떻게 강조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 작업을 했죠.”
그가 택한 것은 선과 면의 조화였다. 작품에 각을 더해 금속의 선과 나무의 면을 강조했다. 나무를 받치고 있는 금속 또한 예열을 통해 나무와 같은 색을 낼 수 있도록 제작해 마치 한몸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작품이 처음 보았을 때 낯설었던 것이다. 가구이기도 하면서 조형물로도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작가가 가구의 쓰임을 규정하지 않고 있어서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오브제가 될 수도 있고, 자기가 원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용도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따라서 누구나 바라보는 대로 사물을 정의할 수 있다.
공예의 예술성은 이러한 상대성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작품의 본질은 나무라는 점이다. 작품이 놓이는 환경이 달라진다 하여도 이것의 밑바탕에는 세월을 견딘 묵직한 나무라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부산 남자 특유의 거칠고 무뚝뚝함을 닮은 것처럼 박태홍 작가의 나무는 어둡고 묵직하지만, 온몸으로 자신이 나무임을 말하고 있다. 그 순수함은 무엇으로 덮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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