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예술가

야코 퍼누의 작품 앞에 서면 우리는 모두 소인국 시민이 된다. 소인국 사람들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 걸리버의 정체를 알기 위해 그의 몸 위를 걸어 다니며 이곳저곳을 관찰했다

박신혜 기자

editor2@woodplanet.co.kr | 2025-03-20 12:13:45

 

핀란드 칼비아에서는 매 순간 광활한 자연이 당신을 유혹한다. 등산, 하이킹, 스키 타기, 서핑 등 각종 다양한 방법으로 당신에게 손짓하는 자연을 떨쳐내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곳에서 태어난 야코 퍼누가 친환경 예술가가 된 것은 어쩌면 예정된 수순인지도 모른다. 여기저기 흩어진 자연을 한 데 모아 응집시켜놓은 그의 작업은 순식간에 우리를 이상한 나라로 데려간다.


위대한 탄생


그의 작품은 살아 있다. 자연에서 재료를 모아 거대한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태어난 작품은 유럽이나 캐나다 등 해외 등지의 공공장소에 자리를 잡고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 그는 자주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어렸을 때 야코 퍼누는 배를 만드는 아버지를 도우면서 나무를 다루는 전반적인 기술과 조각하는 법을 배웠다. 그의 작품이 탄생하는 순간을 예고하는 태동기였다.  

 


자연에 널린 나뭇가지와 통나무를 재료삼아 예술가의 손길로 정교하게 쌓아올리면 작품 하나가 완성된다. 완성된 작품은 원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질문하는 오브제

세월이 지나면 머리가 하얗게 세고 주름살이 늘어가는 것처럼 그의 작품 역시 바뀌는 날씨와 흐르는 시간에 따라 그 모양을 달리 한다. 그렇게 생명을 얻은 작품은 박물관에 편히 앉아있을 수도 있다. 마음만 먹으면 제 힘으로 일어서 근처 넓은 갤러리의 문을 열고 들어가 좋은 자리를 발견하면 털썩 주저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붕이 있는 곳에서 비바람을 피하고 준비된 사람들과의 안락한 만남이 지루했던 걸까? 그의 작품은 시공간을 뚫고 툭 튀어나와 우리가 매일 오가는 길가에 나타났다. 작품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매일 지나던 거리를 지나다가 그와 마주쳤을 때 깜짝 놀라는 사람들의 반응이 즐겁다. 

 


거칠게 다듬어진 줄기 더미가 멋지게 쌓인 그가 눈을 빛내며 자신과 대화할 친구를 찾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흥미를 보이는 사람들을 찾아낸 그가 먼저 다가가 자기소개를 한다.

“버드나무로 이루어진 제 이름은 팀버라인(Timberline)이에요. 수목 한계선이라는 뜻이지만 거기에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저를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누군가는 저를 보고 한계선을 넘어 자연을 침범하는 도시의 경계에 놓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미학의 한계선을 나타내는 것 같다고도 하더군요. 어쨌든 그게 다 무슨 상관이에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제가 어때 보이나요?”


자연을 납치한 대담한 발상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 멈춰있기 지루했는지 그의 작품은 종종 사람들 속에 일부러 섞여들기도 한다. 야코 퍼누는 조용히 잠자던 자연을 통째로 납치해 들쳐 메고 벨기에 브뤼셀 음악 축제인 컬러 카페(Couleur Cafe)에 나타났다. 축제가 펼쳐지는 3일 동안 7만 명의 방문자들은 작가가 데려온 숲 주변을 배회하다가 친해졌는지 금세 자리를 펴고 휴식을 취한다.

주변에서 공수한 나무의 몸통에 핀란드산 버드나무를 얹어 숲을 납치하기까지 3주간의 긴 시간이 필요했지만 작가의 범죄는 성공적이었다. 잔디를 깔고 나무를 심지 않아도 철로 현장에 세워진 축제 현장이 한순간에 숲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따뜻한 여름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고 하나둘 조명이 켜지면서 그의 숲도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다. 나무의 거친 질감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마냥 부드럽고 다정해 보이는 그가 행복한 듯 미소 짓는다. 이 모든 게 이상한 나라의 예술가 야코 퍼누의 손끝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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