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헤리티지 브랜드 <채율>...전통의 명품화를 위한 노력

명품의 가치를 헤아리기란 쉽지 않다. 명품 탄생을 위한 인고의 과정은 생략되고 오직 결과물만이 우리 앞에 도도하게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공예 브랜드 ‘채율’의 제품은 오래도록 들여다보아야 한다.

송은정 기자

woodeditor2@woodplanet.co.kr | 2025-04-21 12:34:48

▲ 모란 6단약장

 

전통의 이름을 빌려 그 무늬와 선을 그럴듯하게 흉내 낸 제품들은 이미 수두룩하다. 소비자들이 더는 전통이라는 콘텐츠에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이에 맞서 채율은 옻칠과 칠보를 ‘신의 한 수’로 두었다. 장인의 손길을 거친 옻칠과 칠보 제품을 선보임으로써 전통의 명품화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 세계무대를 상대로 하고 있다.


국내 유일 옻칠과 칠보의 만남 


▲ 도라지 꽃 은 칠보 보석함


채율은 국내 최초로 옻칠과 칠보 공예의 결합을 선보였다. 옻칠 가구에 나전 장식을 더하는 일반적인 방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채율에서만 볼 수 있는 고유의 제품을 탄생시킨 것. 이때 칠보는 제품의 가치를 최상으로 끌어올리는 화룡점정의 역할을 한다. 유약을 올리는 바탕 재료로 흔히 쓰이는 동 대신, 순도 99.9%의 은을 선택한 것이 한몫했다. 은이야말로 칠보의 신비로운 색채를 가장 아름답게 담을 수 있는 금속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옻칠과 칠보를 입힌 가구와 공예품의 수명은 세기를 넘나든다. 손에서 손으로 대를 물려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제작하는 것이 채율의 소명이라 한다면, 옻칠과 칠보는 이러한 지향점을 실현할 가장 안성맞춤의 전통기법이다. 수십 번의 옻칠과 건조 과정을 거친 가구는 수백 년은 거뜬히 이겨낼 만큼 견고하기 이를 데 없다. 칠보에 사용되는 유약 또한 내식성과 내수성이 뛰어나다.

“귀한 재료를 사용해 완성도 높은 제품을 제작함으로써 한국의 아름다움을 세대를 걸쳐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채율 이정은 팀장의 설명처럼 공예품의 ‘소장가치’에 주목하고 있는 최근 국내외 공예 시장의 흐름을 본다면 이는 탁월한 선택이다.


채율과 장인의 환상 호흡  


▲ 나비당초 3단서랍장


제품의 공정 과정은 다소 독특하다. 철저한 분업 시스템에 따라 디자인과 가구 짜기, 옻칠, 칠보 작업이 진행된다. 주목할 것은 국내 각 분야에서 손꼽히는 장인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4호 김의용 소목장을 비롯해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호 손대현 옻칠장, 그리고 김미연 칠보 공예 작가가 채율의 제품 제작에 힘을 쏟고 있다. 한자리에서 쉬이 보기 어려운 장인들의 콜라보레이션을 하나의 제품을 통해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여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제품의 가치를 판매가로 매기는 것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

이와 같은 채율과 장인의 협업은 더욱 넓은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국내의 열악한 공예 시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작가들에게 보다 안정적인 작업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고가의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지원하는 덕에 제품의 퀄리티는 자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전통 장인 외에도 다양한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 협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사람의 손으로 ‘한 땀 한 땀’ 만들어지는 탓에 생산되는 각 제품의 수량은 고작 1개뿐이다. 설령 같은 디자인이라 할지라도 각각의 디테일과 색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제작 기간 또한 최소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까지 소요되기 때문에 유일무이한 나만의 가구를 갖기 위해서는 인내의 시간이 요구된다.  

 

▲ 백수백복 주칠캐비넷


이 같은 공정 과정은 고객들에게 모두 공개된다. 서울 근교에 마련되어 있는 작업장을 찾아가 공정 현장을 두 눈으로 확인한 대부분의 고객이 혀를 내두르게 된다고. 특히, 옻을 칠하고 건조하는 과정을 서른 번 반복하는 집요함은 명품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은수저 역시 대공들이 손으로 하나하나 두들겨 만들어낸 노력의 결실이다.


옻칠의 스펙트럼을 넓히다 


▲ 혼수세트= 도라지 꽃 합주발 세트 + 구름 은칠보 수저 세트 +도라지 꽃 수저받침 + 도라지 꽃 구절판


‘색을 다스린다’라는 그 의미처럼 채율은 기존의 옻칠과 칠보 공예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새로운 색상을 개발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옻칠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색이라 하면 청색, 황색, 백색, 흑색, 적색으로 이루어진 '오방색' 정도를 보통 떠올리지만, 옛 문헌을 살펴보면 파스텔색, 형광색 등도 표현되어 있어요. 옻칠에 적용 가능한 다양한 색상을 개발해 새롭게 전통을 재해석하고 있습니다."라고 이정은 대표가 설명을 덧붙인다. 

 

▲ 혼수세트= 도라지 꽃 합주발세트 + 연꽃 은칠보 수저세트 + 도라지 꽃 수저받침 + 나비당초 혼수함


최근에는 살구빛, 하늘빛의 나전 보석함을 선보이면서 옻칠 가구 특유의 무겁고 올드한 이미지를 탈피했다. 화학성분이 아닌 천연재료만으로 색상을 개발하기 때문에 은은한 파스텔톤을 뽑아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고. 두 가지 톤으로 옻칠을 하여 가로 줄무늬를 입힌 주칠 캐비닛 또한 보기와는 달리 고도의 기술을 요한다.

현재 채율은 가호수길에 본점을 두고 롯데호텔, 압구정 현대백화점의 주요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전통기법에 현대적인 디자인을 적용한 채율의 제품은 외국인으로부터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금이나 다이아몬드에서 발견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칠보와 나전 장식에 매료된 것. 해외 진출 러브콜도 잇따르고 있지만 빠른 성공을 위해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완벽한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그것이 바로 채율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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