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예 기획자 이동훈>, 전통한지전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신고전주의’ 공예 재구성

2025 한지가헌 연간 기획전 <백지의 서사 : 산세, 바람, 대지> 개최를 맞아 한지 전시의 의미와 기획자의 생각과 계획을 들어보았다.

김한슬 리포터

woodplanet@naver.com | 2025-07-10 12:39:31

▲ 이동훈 큐레이터


- 올 한 해 북촌한지가헌에서 한지 전시를 맡은 것으로 알고 있다

올해 2월에 <기원> 전시를 기획한 것을 인연으로 다시 1년 기획을 맡게 되었다. 연간 전시를 어떻게 풀어갈 지 오랜 시간 고민했다. 한지가헌은 지역의 한지를 수급하고 소개하는 교두보 같은 공간인데, 그동안 지역의 한지를 본격적으로 다룬 기획이 없었던 만큼 이번 전시에서는 지역성과 한지의 연결에 주목하고자 했다. 각 지역의 풍토와 기후, 문화와 전통이 어떻게 한지에 스며드는지를 살펴보다 보니, 한지가 자라난 지역의 풍토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백지의 서사 : 산세, 바람, 대지> 그 첫 번째 이야기인 ‘산세의 형상’ 전의 개요를 설명한다면

한국 백지(白紙)의 서사를 탐구한 기획전이다. 전시의 첫 번째 챕터는 괴산이다. 소백산맥의 조령산과희양산 같은 산에서 직접 기른 닥나무로 괴산의 신풍한지가 만들어진다. 나는 이곳의 닥나무가 자라는 ‘산세’에 집중을 하고 싶었다. 산세라는 테마를 통해 괴산의 풍토와 닥나무가 담긴 이야기를 ‘발’이라는 기물로 풀어냈는데, 발은 안과 밖을 이어주고, 빛과 바람을 통과시키는 구조적 특성이 있어서 산세의 협곡이나 능선처럼 흐르고 이어지는 한지의 감각과도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산세의 형상’ 전시는 그런 산세의 기운을 '발'을 통해 형상화한 전시이다.

 

- ‘백지의 서사’ 라는 주제를 선정한 이유는

지역과 한지를 큰 서사로 통합적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백지의 서사’는 지역 풍토와 한지의 연결을 오디세이처럼 풀어가는 여정이다. 천년의 풍토를 품은 한지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하고 과거의 기물들이 어떻게 현대와 미래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한지에 서려 있는 이 땅의 섭리와,고장의 명맥을 잇는 한지 장인들의 기품을 함께 다루고 싶었다.이 땅이 가진 잠재력을 찾아가는 유람 같은 개념이기도 하다.

 

- 이어지는 전시의 주제인 ‘바람의 기운’, ‘대지의 결’은 어떻게 풀어 갈 계획인가

이어질 두 전시에서 소개될 지역은 전주와 안동이다. 전주는 노령산맥의 지류에 둘러싸여 독특한 기류를 품은 바람의 고장이다. 예로부터 판소리를 바람에 실어 전하고, 처마의 풍경에는 바람이 머물며, 부채로 바람을 다스렸다. 그래서 전주를 ‘바람’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했다. 바람의 기운이 전주 한지에 어떻게 스며드는지 탐구하고 이를 풍경이나 부채 같은 기물로 표현하려고 한다. 안동은 낙동강의 유장한 강줄기가 만들어낸, 비옥한 풍산평야 같은 큰 대지를 품고 찬란한 정신문화의 꽃을 피웠다. 이러한 땅의 감각들이 한지에 어떻게 표현되는지 보여줄 계획이다. 

 

▲ 한지가헌 열리고 있는 《백지의 서사 : 산세, 바람, 대지 (Hanji Odyssey: Mountain, Wind, Land)》전시장

 

- 한지를 생산하는 많은 지역 중 괴산, 전주, 안동 세 곳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다면

한지를 만드는 지역은 많다. 그렇지만 괴산, 전주, 안동은 특히 지역성과 한지의 맥락이 잘 닿아있다고 생각했다. 괴산은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의 주요 생산지이고, 전주는 풍류와 바람의 기운이 한지에 스며들어 흐르는 곳이며, 안동은 대지의 넓고 깊은 결을 가진 고장이다. 각 지역 풍토가 한지의 감각과 연결되어 있다고 봤다. 그래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세 지역을 상징적으로 선택했다.

 

- 한지라는 소재를 어떻게 활용하고 싶었나

과거의 한지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한지의 미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한지는 단순히 종이가 아니라 닥나무, 물, 장인의 손길이 결합해 만들어지는 물질이고, 그 안에 지역성과 풍토를 품고 있다. 발, 부채, 풍경, 합 같은 전통 기물을 매개로 한지의 다양한 감각들을 현대적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 전시에서 안치용 장인의 ‘신풍 한지’가 임서윤, 임정주 작가를 통해 오브제로 만들어졌다

작가 선정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기존에 한지를 주로다루지 않았던 작가를 선정하는 일이었다. 각 분야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탁월하게 구축한 작가들이 한지를 다룰 때 어떤 해석이 나올지가 궁금했다. 이번 <산세의 형상>전시에 참여하는 임정주 작가는 나무 조형을, 임서윤 작가는 섬유와 바느질을 활용해 섬유 작업을 해왔다. 앞으로 소개 될 스튜디오 포, 곽철안, 김준수, 안성규 작가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지역과 풍토가 깃든 한지를 통해 옛 기물을 어떻게 동시대적으로 다룰 지 기대된다.

 

- 전시 설명 중 ‘발’을 ‘도회적’으로 해석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신고전주의를 펼치고자 했다. 발 같은 기물을 도회적으로 해석해 현대성과 연결 짓고, 관람객이 이 땅에서 자라난 감각을 새로운 시각으로 경험해주길 바란다. 기획의 핵심은 과거로부터 길어온 정체성을 현대와 미래의 독창성으로 이어가고, 그 안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 기획자로서, 전시에서 주요하게 신경 써는 부분은 무엇인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전통이라는 개념 너머, 내가 발 딛은 이 땅에 대한 이야기다. 독창성과 정체성이 무엇인지 묻는 것은 참 모호한 일이지만, 과거로부터 자라난 미래가 결국 독창성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이 땅의 정체성에서 길어온 현대성과 미래성은 유일무이한 것이다. 결국 그것은 내가 밟고 서 있는 이 땅에서 오는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 전시에서 지양하거나 경계하는 부분도 있는지도 궁금하다

과거의 유물을 단순히 재현하거나 고루하게 다루는 것은 경계하고, 전시가 단편적이거나 반복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큰 서사와 맥락을 담아내려고 고민한다. 과거의 향수에 머무르지 않고, 응용과 변주를 통해 현대적이고 도회적인 방식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 한지 제조 과정

 

- 그간 기획한 공예 전시에서 잔잔한 흐름과 강렬한 한국 문화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모든 것이 결국 내가 딛고 선 땅, 이 고장에서 비롯된 감각이다. 기획의 분위기나 감각을 이 땅에서 자라난 조형감, 풍토, 문화적 기질 같은 데서 가져오려 한다. 그것이 나의 기획과도 연결되어 있다.

 

-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작업에 특히 관심이 많아 보이는데

과거가 미래로 이어지는 네 단계, 즉 보존, 전승, 적용, 응용이 있다고 가정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응용의 영역에 관심이 많다. 과거의 에센스를 뽑아내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형태로 변주해 미래적인 가능성을 제시하려고 한다. 과거의 증거물과 현대, 미래 사이에서 관람객이 새로운 질문을 하도록 만드는 기획자가 되려 한다.

 

- 기획의 관점 속에서, 공예(작품)-작가-관람객 사이에서 기획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지난해에 디자인하우스 주관으로 부산에서 연 <고전: 영감의 보고>도 과거 이 땅에서 자라난 유물이나 문화, 풍토 같은 상징물들이 어떻게 현대적으로 이어져 왔는지를 바라보는 전시였다. 예를 들어 전시의 참여 작가였던 이수경 작가의 도자기 작업이나 최정화 작가의 탑 작업 같은 것들은 적용의 단계를 넘어 응용의 개념이라고 본다. 옛 것의 본질적인 기조와 에센스를 가지고 조형 작업을 한 것이다. 결국에는 그래야 의미가 있다고 본다. 내가 발 디딘 땅을 창작의 기반으로 두었을 때야 말로 그 독창성과 유의미함이 진정으로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 어떤 공예 전시를 열어갈 계획인가

사실 전시 기획만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싶은데,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건 ‘질문’을 던지고 탐구하는 일 그 자체이다. 전시는 그 질문을 풀어내는 한 방법인 거다.

 

- ‘공예 기획자’는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하나

경계가 점점 사라지고, 모든 것이 융합되고 혼종하는 시대가 올 거라 생각한다.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질문을 가지고 있느냐, 그리고 나만의 독창성이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공예든 디자인이든 이제는 그 구분이 크게 의미가 없어질 거라고 보고, 자신만의 질문과 정체성을 가지고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기획해야 할 것이다.앞에서도 강조했지만, 모든 것을 아우르는 큰 개념이 중요하다.

 

- 공예 기획자의 꿈을 키우고 있는 후배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왔고, 이제 누구나 기획자가 되는 시대가 왔기 때문에 중요한 건 ‘나만 할 수 있는 질문’이 무엇이냐는 거다. 질문을 풀어내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분야를 하나에 고정하지 말고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탐구해보길 권하고 싶다. 결국 나만의 정체성이 독창성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이동훈 : 대한민국 서울을 기반으로 공예·디자인 전반에 걸쳐 전시 및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한다. 큐레이토리얼의 관점을 토대로 텍스트와 이미지 그리고 오브제와 공간을 경계 없이 넘나든다.한지를 주제로 옛 지등과 지합 그리고 전통 문양을 현대적으로 응용한 <기원>, 한국의 유산을 재해석하는 현대작가들을 소개한 <고전: 영감의 보고> 등을 기획하였으며, 공예의 변주를 주제로 밀라노에서 한국의 고유한 미감을 전한 <밀라노 한국공예전 SHIFT CRAFT>, 600년 역사를 간직한 세계유산 창덕궁에서의 타임리스 하모니를 보여준 <공생: 시공간의 중첩>, 한국미의 정수로 평가받는 분청을 주제로 대표 작품들을 선보인 <분청>, 백남준 특별전 등에 큐레이터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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