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차이나 퍼니처
국제적 전시로 거듭난 상하이국제가구박람회
인테리어와 가구에 대한 질 높은 생산과 소비 교차
우리가 풀어야할 숙제를 제시한 전시
육상수 칼럼니스트
ssyouk@woodplanet.co.kr | 2022-12-18 12:49:34
중국 상하이 푸둥국제공항의 대기는 여전히 무덥고 습했다. 푸동에 위치한 ‘상하이국제가구박람회’로 이동 중, 고가에서 바라본 상해는 무성한 잡초처럼 우후죽순 세워지고 있는 건설 현장으로 도시의 풍경을 대신했다.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 움큼의 미세 먼지를 마신 것 같았다. 하지만 잠시 뒤 만나게 될 중국 가구의 진면목에 받을 충격에 비하면, 습도에 녹아든 미세먼지쯤이야 차라리 낭만으로 치부할 수 있었음을 곧 깨닫게 되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서 규모와 인파 그리고 전시의 품격에 당황했다. 인파와 규모는 어느 정도 예상한 것이어서 통과. 하지만 진작의 충격은 이미 유럽의 디자인과 제조 시스템을 흡수한 중국의 능력이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제조 시스템이 이미 중국에 의존하고 있음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수제 가구나 공예품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예상이 완전히 빗나간 사실에 놀랍고 한편으로는 절망스러웠다. 우리가 몰라도 이렇게 모르고 있었던가.
이미 중국의 가구는 유럽의 디자인을 모방하는 데서 벗어난 유럽, 일본 등 세계적인 가구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시작했고 여기에 자국의 저비용 고효율의 제조 산업을 접목해 디자인과 가격 경쟁력에서 우리를 능가하고 있었다. 물론 거대한 제조 환경이 그 힘의 근원이겠지만 그것을 따지기 전에, 극히 사적인 작업에 머무는 우리나라의 공방 체제로는 감히 대항하기 불가능했다.
전시장의 대부분 제품은 유럽형 디자인과 월넛 소재가 대중을 이뤄 우리와 엇비슷했지만 그중에서도 중국의 고유의 디자인을 현대화한 전통가구가 특히 눈에 띄었다. 초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신진그룹들이 디자인했고 정확한 소비자층을 갖고 있다는 점이 부러웠다. 한국의 전통가구는 현대화도 지지부진하고 고가구마저 꽁꽁 숨어 있어 보기조차 어렵다.
해외 전용 부스인 W1관은 유럽의 유명 브랜드가 직접 스텝을 이끌고 참여해 마치 이태리 밀라노 부스에 온 것과 같았다. 전시회에 총 26개국의 해외 업체가 참여한 사실만으로도 상하이국제가구박람회의 이름값을 톡톡히 감당하고 있었다.
젊은 가구 디자이너들의 대약진
그중에서도 필자가 장 주목한 부스는 중국의 신진 가구 디자인들이 모인 ‘E8’관이었다. 지금의 중국보다 10년 뒤의 중국을 가늠해 보기 위해서였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참가한 이곳은 한국처럼 폭 3~6m의 작은 부스였지만 이들은 유학파를 포함해 전문 지식을 습득한 엘리트로, 창의적이면서 수준 높은 디자인은 물론이고 제품을 홍보하는 능력 또한 탁월했다. 이는 한국의 공예가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그들은 제품의 콘셉트 전달을 위한 정보와 디자인 그래픽 수준은 매우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몇몇 공방은 상하이를 포함해 중국의 거점 도시에 직매장을 가진 기업의 형태도 유지하고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의 대부분은 20대라는 사실이었다.
글로벌 디자인, 수준 높은 제작 인프라, 자본, 시장 등 모든 산업적 요소가 융숭한 특수성이 중국의 가구를 높은 반열에 올려놓았겠지만, 그들의 외적인 요소만을 부러워하기에는 열악한 우리의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중국의 자본과 산업은 남의 형편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생존의 본능에 따라 어떤 경우와 어떤 장소에도 구애받지 않고 침투해 온다. 우리끼리 아옹다옹할 일이 아니었다.
이태리 밀라노 전시의 80%가 주목해야 할 대상이라면 상하이는 단지 20%뿐이다. 하지만 이 20%가 산업적으로 밀라노의 규모를 능가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전시에 참여 중인 한국인 가구 디자이너는 “중국 가구회사 조직원들의 성실성, 근면성, 디자인과 제작 능력에 소비자를 응대하는 서비스 마인드가 기민하고 정확해 이미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아직까지는 제품과 인테리어의 마감 능력이나 사회 시스템의 과도기적 현상에 따른 문화적 이해 수준이 여전히 성숙하지는 못했지만, 이것 또한 시간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공예가는 혼자의 공간, 혼자의 개념, 혼자의 시간을 다루는 직업으로 단정하고, 세상과 무관한 수련을 위한 자기만족에 있음을 주장한다고 과연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혹은 아티스트로 대접받으면 이 험한 자본 전장에서 벗어나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한 해에 개인전을 연 공예가, 목수가 손꼽을 정도니 그것도 아닌 거 같다. 산업의 역군도 작가도 아니면 우리의 수제 공예는 지금 어디쯤에 서 있는지 되묻고 싶다. 고결한 공예를 함부로 산업과 연계해 그 고유성을 훼손했다면 양해를 구한다.
글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국의 공방에서 제작하는 수제 가구가 이미 중국에서 흘러넘치고 값 또한 저렴하다는 매우 ‘단순한 사실’이다. 함께 참관한 공예가들조차 현장에서 확인한 이 엄연한 사실을 어찌해야 할지를 모를 때 밀려오는 이 갑갑한 상황이 단순한 우려가 아니라 ‘팩트’임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중국의 공장형 가구가 아닌 수제 가구마저 한국에 상륙한다면 우리의 시장은 큰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이미 대개의 상품은 메이드 인 차이나인 것처럼.
전시장을 나올 때 일행 중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전시장보다 2배나 더 큰 전시장이 곧 완성된 대요”
중국에서는 ‘공예’란 말을 쓰지 않고 가구로 통칭한다는 것과 디자인 중심으로 시장에 접근한다는 것도 눈여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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