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채를 이어 하나의 생활공간으로 만들다...현대한옥의 모델하우스, 통인동 주택

편집부

woodplanet@naver.com | 2024-03-12 13:06:43

 

60년간 운영되고 있는 대오서점 부근. 폭 2m가 채 되지 않은 좁다란 골목길을 성인보폭으로 스무 걸음쯤 걷다보면 통인동 집에 다다르게 된다. 1940년대, 20평 남짓의 땅에 14평 규모로 지어진 전형적인 도심한옥이다. 벨을 눌렀다. 대문이 열리자 눈에 들어오는 공간은 마당이 아닌, 서양식의 현관!

한옥 대문에서 마당 없이 곧바로 현관과 실내로 이동하는 구조로 뒤바뀌었다. 오른쪽은 세 식구의 신발을 거뜬히 보관할 수 있는 커다란 신발장이 있다. 정면의 긴 유리창 너머로 마당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왼쪽 공간으로 딸의 방과 화장실이 서로 마주하며 배치돼 있고, 오른쪽으로 완전히 오픈된 구조의 거실과 주방이 위치해 있다.  

 


거실 끄트머리에 위치한 주방은 특히 다른 공간과 비교해 높이가 매우 낮은데, 아궁이가 있던 원래의 부엌 또한 그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전통한옥과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이전의 ‘방에서 떨어진 부엌’이 아닌 ‘방과 더 밀접한 부엌’으로 바뀌었다. 주방에서 다시 왼쪽으로 유난히 빛이 밝게 들어오는 하나의 출입구가 보인다. 그곳에 안방이 있었다. 즉 집의 구조는 마당을 가운데 두고 두 채로 나눠져 있던 ㄷ자형의 한옥이 하나로 이어진 것이다. 구조적으로 전통한옥의 기법을 따르면서 실내생활이 가능하도록 변화를 줬다.  

 


의장 부문에 있어서도 2014년의 한옥으로 변화시키고자 한 노력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화방벽은 좁은 골목길에서 위압감을 주지 않도록 수평적으로 재료를 분할하고 사고석, 청고벽돌, 와편 구성으로 분절감을 줬다. 마당과 접하면서 집의 전면으로서 역할하고 있는 창호는 소재와 컬러, 면 분할을 통해 현대적이면서도 예스러운 전통의 이미지를 드리웠다. 내부는 일반 PVC 시스템 창호를 써서 경제성도 살폈다. 아울러 오픈된 거실과 주방의 천장은 완전히 노출해서 보와 서까래 등 한옥의 목구조가 그대로 드러나도록 했다. 목구조는 매끈하게 마감된 주방가구와 수납장 그리고 벽 마감과 대조를 이루며 자연스러우면서도 깨끗한 이미지를 남긴다.

 

 

건축주가 어릴 적 일곱 식구와 살았던 집

건축주는 이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오랫동안 전세를 놓다가 이번에 대수선하면서 다시 들어가 살게 됐다. 내부구성은 완전히 바뀌었지만 같은 집에 시간 차이를 두고 다시 살게 되는 독특한 경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김성준 씨는 “구조가 많이 바뀌어 낯선 감도 없지 않아 있으나, 상당히 만족스럽다”며, “이제 다시 동네 곳곳을 누비던 어린 시절에 그랬듯 이 집에 익숙해지는 일만 남았다”고 소감을 밝힌다. 또 동네의 어르신들에 의하면 소설 <얄개전>으로 유명한 조흔파 선생이 거주하기도 했다.

 


이번 통인동 집은 박지민 건축가과 김한승 건축가의 협업으로 완성됐다. 그들은 통인동 집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미를 부여했다. 주로 인테리어와 가구디자인을 전담한 박지민 소장은 “한옥의 맥을 잇자면 살아도 편리한 모습으로 바뀌어나가야 하는데, 이번 통인동 집은 이에 대한 모델하우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고 말했다. 건축을 전담한 김한승 소장은 “어떤 집이든 20~30년이 지나면 사회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게 되는데,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변화에 대한 대응이 이번 한옥에서도 필요했다”고 언급했다. 연방면적이 서촌의 여느 한옥에 비해 넉넉해서 방과 복도로 분리된 공간을 계획해보려 했지만, 최종 안목치수(아파트 전용면적을 계산할 때 눈으로 보이는 벽체 안쪽을 기준으로 하는 것)가 부족해 포기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그러나 한옥의 정취에 매우 신선한 구조로서 현대주택 이상의 편리함을 올려놓은 점은 충분히 현대한옥의 좋은 예시가 될 만하다.  

 


박지민 : 건축설계, 환경설치 및 가구를 제작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Lifeinstallo의 대표이다. 일상과 감응, 기억을 간직하는 공간, 삶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의 집을 연구하고 있다. 도시와 환경이라는 맥락 안에서 사회적 혹은 문화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형태화된 건축을 추구한다.

김한승 : 서울대 조소과 그리고 무사시노 건축과를 졸업했다. 이후 씨즈아틀리에를 설립하고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건축, 가구, 조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각 장르를 융합한 그만의 독특한 시선을 갖고 있다. 그 시선을 그 집에 사는 사람 혹은 그 가구를 쓰는 사람의 색과 다시금 융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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