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의 추억

김수정 기자

woodeditor2@woodplanet.co.kr | 2024-03-18 13:49:08

10년 전쯤 얘기다. 스무 살에 집을 떠나 서울에 온 나는 낮이건 밤이건 영역을 넓히는 수캐마냥 하릴없이 걷곤 했다. 서울 지리를 익힌다는 핑계로 갖게 된 취미였다. 어느 밤에는 걸어서 광화문에 가보기로 했다. 서울역을 지나 큰 도로를 건너 한참을 걸었지만 이순신 장군상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더 멀 수도 있겠다 싶어 돌아온 길을 되짚어 가려는데 문득 익숙한 풍경이 나타났다. 

 

 

숭례문이었다. 낯선 도시에서 익숙한 것을 만나니 어둠 속에서 불빛을 만난 양 반가웠다. 생각보다 크고 아름다운 모습은 자못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날로 길을 익힌 나는 기숙사에서 숭례문을 지나 광화문까지 이어지는 그 길을 매일 운동 삼아 걷곤 했다. 매일 봐도 숭례문은 든든하고 또 애틋했다. 믿을 수 없는 뉴스를 듣게 된 건 어느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꿈처럼 숭례문이 불타고 있었다. ‘아무렴 저게 다 타버리겠어’ 하는 심정으로 지켜봤지만 불에 탄 지붕은 단발마도 없이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고 숭례문은 거짓말처럼 복원됐다. 당당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예전 그대로지만 속사정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단청이 벗겨졌다느니 소나무가 갈라졌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들려오더니 급기야 소나무를 바꿔치기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기둥이 갈라졌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듯하다. 그러나 다른 의혹들과 별개로 ‘나무가 갈라졌으니 부실공사’라고 보는 시각은 조금 억울한 면이 있다. 나무는 갈라짐이 숙명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습기를 머금고 있어서 온도와 습도에 따라 조금씩 갈라지고 뒤틀린다. 경복궁 근정전과 월정사 극락전, 심지어 700여 년을 버틴 부석사 무량수전의 나무 기둥도 조금씩은 갈라져 있다. 갈라짐은 어쩔 수 없지만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바로 잘 말리는 것이다. 

 

기둥감으로 쓰이는 굵은 목재를 속까지 말리려면 적어도 5년에서 1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목질이 금강석처럼 단단하다는 금강송이라도 제대로 말리지 않고 쓰면 갈라짐을 피할 수 없는데 숭례문에 쓰인 금강송은 불과 3년 정도만 건조된 뒤 기둥으로 쓰였다고 한다. 짧은 공사 기간을 탓할 수 있겠지만 공기를 맞춰야 했다면 자연건조 대신 인공건조를 했어야 했다.

건조 문제와 별개로 북미산 더글라스 퍼가 우리 소나무보다 품질이 좋으니 그걸 쓰자는 주장도 들려온다. 숭례문은 건축물이기 앞서 하나의 상징물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비록 품질이 뒤처진다 해도 이 땅에서 자란 소나무를 쓰는 게 의미가 있을 거란 생각이다. 문화재 순혈주의라고 해도 그 정도는 고집하고 싶다. 다만 기술적인 측면에서 재래의 방식만을 고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늘의 기술이 더 나은 것이라면 취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길 잃은 여자애가 서울 지리에 도가 트는 동안 숭례문은 험한 일을 너무 많이 겪었다. 막막한 밤이고 밝은 낮이고 나에게 환한 등대 같았던 숭례문이 이제 안쓰럽게만 보일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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