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스토리 : 파일 톨(Pfeil Tool)... 쇠를 다듬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인혜 기자
woodeditor3@woodplanet.co.kr | 2024-04-22 15:25:47
높은 천장의 작업실 안에 가득한 울림. 소리는 메아리를 부르고 메아리는 뜨거운 공기를 타고 멀리 퍼져나간다. 뭉툭한 쇳덩이를 쉼 없이 내리친다. 망치를 쥔 손에 힘이 실린다. 쇳덩이를 내리칠 때마다 핏줄이 서고 팔의 근육이 꿈틀거린다. 이러한 과정을 수 없이 반복했을 그들의 손과 팔에는 시커먼 기름때가 문신처럼 새겨져있다.
벼리고 벼리다
철이 인간 문명의 발전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철제 도구의 보급은 수렵과 채집을 하던 유목 생활에서 경작을 하는 정착 생활로 삶을 변화시켰다. 이후 산업혁명을 이끄는 주축이 되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형성하는 거창한 업적도 있지만, 사실 철은 우리와 가장 친숙한 금속이다.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도구에 철이 사용되지 않은 곳이 없지 않은가.
기술의 발전은 철을 제련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주었다. 과거 사람의 손으로만 이루어지던 공정은 현재 많은 부분 기계가 담당하고 있다. 기계화는 신속함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현대 사회에서 꼭 필요한 요소이지만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는 잃는 것이 삶의 이치 아니던가. 대량 생산은 가능해졌지만 손으로 만들어낸 것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섬세함은 잃을 수밖에 없었다.
수제 수공구를 만드는 회사 파일(Pfeil)은 이런 흐름에서 조금은 빗겨서 있다. 일단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공구를 만드는 회사인데 반해 규모는 굉장히 소박하다. 파일의 직원은 고작 서른 명 남짓. 이것도 견습생이 포함된 인원이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전문성과 기술력은 열 사람과 견주어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일 당 백이랄까.
빠르게 회전하는 벨트 위로 불꽃이 튄다. 그는 일차 공정이 끝난 쇠막대를 벼리고 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무딘 날을 날렵하게 깎아낸다. 까맣게 때가 낀 그의 손에서 그간의 시간과 연륜이 느껴진다.
아버지의 아버지에서부터 아버지의 아들까지
파일은 1902년 스위스의 작은 도시 랑엔탈(Langenthal)에 세워졌다. 시작은 전문가를 위한 컷팅 도구와 외과용 수술 도구였다. 1402년, 본격적으로 나무를 깎는 조각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만든 질 좋은 수공구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번져나갔다. 전 세계의 나무 조각 전문가, 목공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파일의 수공구는 오랜 시간 쌓인 노하우의 집결체다. 3대에 걸쳐 축적한 기술은 그들의 가장 큰 강점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머물지 않고 스위스의 한 목조각 기술대학과 제휴하여 새로운 기술을 제품에 적용하고 있다.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그들만의 기술력을 가졌다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가려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나무 조각 공구, 목조각칼, 드로우 나이프, 바이올린 제작에 필요한 공구까지 파일에서 만드는 수공구의 종류는 600개가 넘는다. 백년이 넘는 시간동안 아버지의 아버지가, 아버지가, 그리고 지금은 그의 아들이 만들어낸 시간의 결과물이고 기술의 집약체이다. 한 자루의 조각칼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오늘도 그들의 작업실은 사방으로 튀는 불꽃으로 뜨겁고, 쇠 벼리는 날카로운 소리로 가득하다. 지난 백 년의 시간이 그러했듯 새롭게 기록될 역사의 결과물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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