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속에 숨어있는 다섯 가지 개성... 내촌하우스 883+816
숲속의 나무집
자연과 집의 완전하 합체
목조주택의 교과서
지근화 기자
woodeditor1@woodplanet.co.kr | 2023-05-07 15:34:36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한참 들어가니 길이 끝나는 곳에 호젓하게 서 있는 집 한 채가 보인다. 아니다, 다시 보니 한 채가 아니라 다섯 채다. 2010년에 시공한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백우산 자락의 내촌하우스 883+816은 목조주택의 대표적 건축으로 고간의 내밀한 아름다움을 다시 더듬어 보았다.
비슷하지만 다른 집
백우산 골짜기에 아늑하게 안겨 있는 ‘내촌하우스 883+816’은 이곳에 들어서 있는 집들의 번지수에서 프로젝트명을 빌려 왔다. 내촌하우스 다섯 채는 1차선 도로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세 채(883-1, 883-2, 883-3)가 순서대로 도열해 있으며, 나머지 두 채(816-1, 816-2)는 조금 떨어진 왼쪽 계곡 쪽에 자리했다.
내촌하우스는 전체 천 평의 땅을 다섯 건축주가 나눠 필지를 확보한 후 본격적인 디자인 설계 작업이 시작됐고, 설계는 내촌목공소 이정섭 목수와 이화여대 건축학과 이윤희 교수가 함께 진행했다. 구역별로 지어지는 집들은 건축주들의 요구 사항과 지형적 특성을 고려해, 이정섭 목수와 이윤희 교수의 철학을 바탕으로 면밀히 디자인되었다.
전통 건축물에 바탕을 둔 이정섭 목수의 디자인과 서구적인 건축물에 영향을 받은 이윤희 교수의 디자인은 자칫 상충될 우려도 없지 않았다. 이윤희 교수는 방의 크기를 최소화하고 그 외 퍼블릭 공간에서 이뤄지는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했지만, 이정섭 목수는 한옥식 구조를 표현하는 데 무게중심을 뒀다.
그런데 공간을 사용하고 구성하는 방식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절묘한 콜라보레이션은 의외로 전통적인 색채와 모던한 색채가 어우러지는 특색 있는 집들을 만들어냈다. 각 집의 대략적인 구조와 스케일은 이미 정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두 사람은 마감재를 다양하게 사용해 물성에 최대한 변화를 주자는 데 합의했다. 그래서 내촌하우스에는 콘크리트 블록, 슬레이트석, 목재 사이딩, 유리 등 다양한 소재가 적절하게 사용됐다.
살림집과 세컨드 하우스가 혼합돼 있는 내촌하우스는 각 집을 관통하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자연과 교감하기 위한 장치로 크고 작은 창을 많이 냈다. 창을 통해 해가 뜨고 지고, 안개가 내리고 걷히며,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다 정적 속에 멈춰서는 모든 풍경이 시시각각 전달된다. 천변만화한 자연의 변화가 일상 속에 스며든다는 건, 도시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일이다. 또한 내촌하우스는 외장에 쓰인 마감재를 내부 마감재로 동일하게 이용해, 외부와 내부에 통일된 질서를 부여했다. 이렇게 해서 내촌하우스는 전체적으로 비슷한 흐름 속에 놓여 있으면서도 저마다 다른 개성을 얻을 수 있었다.
▮ 816-2 다섯 번째 집
내촌하우스로 들어가는 1차선 도로의 입구에서 사람들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816-2번지이다. 도로에서도 우렁찬 계곡물 소리가 들려, 이 집의 정체성이 무엇과 연관돼 있는지 바로 알아챌 수 있다. 백우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이 계곡은 1급수일 정도로 물이 맑은 데다가 사시사철 수량이 풍부해 겨울에도 큰소리를 내며 흐른다.
이 집은 도로면에서 볼 때엔 단층집처럼 보이지만, 계곡에서는 두 층이 다 보이는 이층집이다. 지형을 그대로 살려 지은 것이다. 2층은 삼나무 사이딩으로 마감했고, 1층은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했다. 아래층의 노출 콘크리트에는 비정형 사선이 큼직하게 교차돼 외관에 표정을 부여한다. 계곡 쪽으로 내려와 보면 커다란 통유리창 안으로 거실이 보이는데, 거실 바닥 역시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했으며 에폭시로 마감했다. 바닥 역시 건물 외벽과 통일성을 주기 위해 사선을 교차시켜 문양을 냈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계곡물을 즐기기 위해 기단 바로 아래에 넓게 설치한 데크가 아닐까 싶다. 초야에 묻혀 자연을 즐기는 은자처럼 거주자의 청각적 감성이 극대화될 수 있는, 소리를 통해 상상력이 증폭되는 집이다.
▮ 816-1 네 번째 집
이곳은 816-2와 비슷한 형식을 지녔다. 1층은 콘크리트로, 2층은 목재로 외장을 마감했다는 점에서 동일한 구조다. 1층 출입구의 위치를 비롯해, 거실의 통유리창 밑에 툇마루 같은 데크를 설치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러나 약간의 변주를 통해 816-2와는 다른 개성을 살려냈다. 우선 1층 콘크리트 벽면에 빗살무늬 문양을 놓았다. 그리고 2층에는 건축주의 요청에 따라 넓은 테라스를 조성했다.
테라스는 개방된 공간임에도 지붕을 이고 난간을 둘러 무척 아늑한 느낌을 준다. 외부 시선의 방해 없이 자연을 즐기고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것이다. 또한 이 테라스에서는 높은 곳에서 계곡을 내려다보며 즐길 수 있는 조망, 즉 부감경(仰觀景)을 체험할 수 있다. 816-2가 비교적 수평적인 위치에서 자연과 교감하는 수평경인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2층 테라스에서 길가 쪽으로는 작은 게이트가 하나 마련돼, 계곡 반대편 산자락과도 소통할 수 있는 구조가 되었다.
▮ 883-3와 883-2 세 번째와 두 번째 집
816-1과 대각선 방향에 서 있는 883-3은 외부를 슬레이트석으로 마감해 자연미를 물씬 풍긴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이 집 역시 건물 외장과 연관성을 갖기 위해 실내 벽체에도 동일한 슬레이트석을 사용했다. 이곳의 가장 큰 구조적 특징은 요리를 즐기는 건축주의 요구에 따라, 방을 하나만 마련하고 공간 대부분을 주방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자작나무로 만든 기다란 테이블에 씽크볼과 가스레인지를 설치하고, 테이블 주변에 여러 개의 의자를 놓은 점이 이색적이다.
용마루가 정동향인 883-2는 전통적이면서도 약간 장중한 느낌이 들도록 설계됐다. 외장은 절반을 콘크리트 블록으로, 나머지 절반은 삼나무 사이딩으로 마감했다. 내촌하우스 다섯 채 가운데 동서양의 상반된 특성이 가장 절묘하게 결합돼 있는 집이 바로 이곳이다. 전체적인 구조는 한옥 형식을 바탕으로 했으나, 공간 분할은 서양적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 집은 각 공간마다 확실한 경계를 주었고, 문이 아닌 ‘게이트’ 개념으로 각 공간을 이동할 수 있게끔 설계했다. 물론 이는 각 공간의 기능을 최대한 존중하기 위해서다.
▮ 883-1 첫 번째 집
내촌하우스에서 가장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883-1은 층고를 4.6m로 높이고 다락방을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다락방은 수납공간 등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바닥 높이보다 2단을 낮춘 오목공간도 눈에 띈다. 이 오목공간은 물리적인 구획 없이도 하나의 공간을 기능이 다른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목공간은 온돌이 깔려있어 이 집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기도 한데 거실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바로 보이는 식탁 테이블과 오목공간은 이 집이 개방된 커뮤니케이션을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개의 방과 화장실은 벽체 너머로 비밀스럽게 숨어있다.
건축주 이종호 씨와 조혜식 씨 부부는 이 집의 가장 큰 매력을 일하기에 좋은 동선으로 꼽는다. 30년 넘게 전북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아 온 이종호 씨 부부는 그동안 줄곧 아파트에서만 살았다. 내촌하우스로 입주한 것은 2010년. “햇빛이 잘 들어 겨울에도 따뜻하고, 통풍이 좋아 여름에는 시원하다”며 자랑도 덧붙였다.
밖에 나서면 자연이 다 내 것이고, 무엇을 하든 지청구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얼마나 큰 은혜인가. 그러고 보니 안주인 조혜식 씨의 이름이 은혜 혜(惠)자에 심을 식(植)자였다. 이 집은 뒷산을 오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높은 산과 하늘을 우러러보니 앙망경(仰望景)이라…. 그러고 보면 내촌하우스 다섯 채는 집집이 저마다 다른 조망의 시선을 갖고 있다. 이 또한 내촌하우스 883+816의 매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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