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가구, 북유럽의 가구
편집부
woodplanet@naver.com | 2025-04-21 16:23:41
어느 때보다 북유럽 가구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사용자를 배려하면서도 친환경적이어서 심플하면서도 감성적인 공간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취향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한국 목가구는 순박한 디자인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심성이 더해져 중국이나 일본 등과 구분되는 한국만의 독창적인 가구 양식을 만들어냈다. 두 가구 모두 주변 사물과 잘 어울리면서 탁월한 존재감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조선 가구와 북유럽 가구가 탄생한 배경과 그에 담긴 철학, 미적 표현방식을 살펴보자.
자연과 삶의 철학이 녹아 있는 북유럽 가구
북유럽 가구의 특징은 따뜻함과 우아함으로, 재료와 형태를 자연에서 차용했기 때문이다. 혹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나무와 패브릭, 동물의 털이나 가죽 등의 천연재료를 사용해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으로 가구들을 배치했다. 북유럽에서는 나무가 다른 자원에 비해 풍부한 편인데 특히 스웨덴과 핀란드의 자작나무와 소나무, 덴마크산 너도밤나무로 제작한 의자와 테이블, 캐비닛 등이 현대 북유럽 스타일의 가구들을 대표한다.
이 가구들은 왕실이나 귀족의 화려한 취향을 따라 탄생된 유럽의 다른 가구들과 달리 일반 시민을 위한 인본주의와 기능주의가 결합, 누구나 우수한 디자인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북유럽 가구 전통의 토대가 되었다. 북유럽은 수공예가 발달해서 장인 정신이 깃든 가구를 생산할 수 있었으며 산업혁명의 신기술과 결합해 소비자의 실용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검소하고 실용성을 띤 가운데 일반인의 일상생활 속에서 다듬어진 북유럽 가구는 1950년대 이후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현대가구의 전형을 이루게 된 북유럽 가구
북유럽 가구는 현대가구사의 흐름에 두 가지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첫째, 현대가구의 표본을 탄생시켰다는 점이다. 1920년대는 북유럽 디자인이 싹트기 시작한 시기로 가구 장인들은 길드 조직을 형성해 가구 제작기술을 전수하는 과정에서 훌륭한 제자들을 육성해냈다. 그러한 가운데 유명 건축가, 디자이너들과 협업하여 현대가구의 표본이 되는 기본 모델들을 많이 만들어 냈다. 대표적인 디자이너로는 덴마크의 카레 클린트(Kaare Klint) 와 한스 베그너(Hans J. Wegner)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재료가 가진 성질을 충분히 활용해 전통을 재해석하는 모습을 보여 시대를 초월한 독창적인 아름다운 가구를 창조했다.
둘째, 합판 곡목 기술을 통해 ‘우아한 기능주의’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이다. 핀란드의 건축가 알바 알토(Alvar Aalto)는 합판 곡목 기술로 북유럽의 자연을 우아한 곡선으로 형상화하여 기능주의에 접목해 내었다. 인체에 적합한 기능을 가지면서도 우아한 선의 아름다움을 지닐 수 있게 한 곡목기술은 대단한 혁신이었다. 이러한 알바 알토의 성공은 높은 수준의 가구를 일반인들도 누릴 수 있게 해 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소박한 대중의 삶이 묻어나는 조선 목가구
조선 목가구는 일상용품들을 주제로 다루며 서민의 생활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조선의 자연환경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광활하지도 험준하지도 않은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산맥이 가로막은 관계로 주변에서 구하기 쉽고 여러모로 옹골찬 성질을 지닌 소나무로 목조주택을 짓게 되었다. 겨울을 나기 위한 방편으로 구들을 깔아 만든 온돌로 인해 낮은 벽면과 창호로 만들어진 여백이 나오게 되었고 평좌식이라는 생활문화를 낳게 된다.
한국의 가구는 나무의 자연미를 살리고 윗면과 아랫면이 수직으로 내려오는 직선 구조로 이루어져 여타 생활용품들과도 조화가 이루어지는 소박하고 독특한 아름다움을 창조하게 되었다. 서양의 입식가구로 구성된 실내공간과는 달리 벽면에는 낮고 아담한 규모의 장이나 농, 사방탁자, 문갑 등을 배치하여 옷이나 책 등을 보관하고 서안, 연상, 소반 등을 온기가 모이는 방한가운데 배치해 이동성을 좋게 만들었다. 집을 짓고 남은 소나무나 주변에서 구하기가 용이하며 쉽게 비틀어지지 않는 오동나무, 가래나무, 은행나무 등의 판재를 사용하여 각종 가구와 생활용품을 만들어내었다.
또한 사계절을 거치다 보니 무늬는 좋으나 뒤틀림이 심한 느티나무, 물푸레나무, 단풍나무, 먹감나무 등의 귀한 재료는 반드시 필요한 곳에 사용하기 위해 독특한 기법을 개발하여 활용하였다. 무늬가 좋은 판재를 2~3mm 가량 얇게 켠 후 수축 팽창이 적은 잘 마른 오동나무나 소나무 판재를 뒤쪽에 엇갈려 붙인 얇은 부판을 만들고 기둥과 쇠목, 동자 등 힘을 받는 골재에 끼워놓기 위해 쥐벽칸, 머름칸의 면분할 방법을 창안했다. 그리고 그 면 분할 방법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의 비례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
조선목가구의 독자적인 조형양식 ‘사방탁자와 소반’
전통 목가구의 생명은 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와 나무만을 결합하는 짜맞춤에 있다. 이 결합 방법은 수십 가지가 존재하며 목수의 아이디어에 따라 얼마든지 더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 조선 목가구가 단순하면서도 튼튼하고 아름다운 이유이다. 가구 고유의 구조에 따라 결구 방법을 달리 하기 때문에 다양한 미적 표현이 가능하고 각 부재 사이의 균형을 잡고 외부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정교한 기술로 인해 견고함까지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짜맞춤의 결정체가 사방탁자이다. 조선시대의 유교사상은 생활공간을 안방과 사랑방으로 철저히 분리해 사랑방의 주인인 선비들은 자신들의 철학을 가구에 담아 절제비와 비례미가 응축된 사방탁자를 탄생시키게 된다. 넓은 층널을 가는 기둥만으로 연결하여 사방이 탁트인 쾌적함이 조선 가구의 독창적인 양식이다.
20세기에는 의자가 서양가구의 아이콘이라면 조선시대에는 소반이다. 좌식 문화에 뿌리를 둔 가구로서 중국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고유한 문화유산이다. 소반은 많은 장인의 손길을 거쳐 인체에 편리한 구조와 견실한 짜임새가 가미되어 점차 한국을 대표하는 가구로 다듬어진 것이었다. 의자도 그러하겠지만 소반 역시 서민부터 상류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삶의 애환과 역사가 담겨있다. 소반에는 불필요한 구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모든 디자인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게 되어있어 ‘작은 건축’이라 불리기도 한다.
생활정서에 바탕을 둔 미감
지금까지 한국의 생활공간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북유럽 가구 및 생활용품들이 폭넓은 지지를 받게 된 배경 및 한국의 전통 가구와의 공통점과 차별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비록 조선 가구와 북유럽 가구가 상이한 환경을 배경으로 탄생했으나 두 가구가 가진 철학은 상당히 유사하다. 우선 두 가구 모두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서민들의 삶 속에서 만들고 다듬어져 소박하고 기능적인 충실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충분히 아름답다. 또한 주변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자신들의 전통에 접목시켜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진 스타일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한편 조선 목가구가 갖는 차별적인 특징은 한국의 생활정서에 바탕을 둔 미감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자연목의 뒤틀림 방지 구조로부터 출발한 쥐벽칸, 머름칸 등의 분할이 보여주는 독창적 비례니, 다양한 금구 장식에서 표현되는 길상 사상 등은 한국인의 정서를 잘 담아내고 있다. 한국 전통가옥의 구조 및 기능과 미를 갖춘 조선 목가구는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는데 손색이 없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문화적인 고유성을 살리는 가운데 시대 요구를 수용하여 재창작해 낸다면 북유럽 가구 못지않은 한국 가구의 세계화도 가능하지 않을까.
글 정은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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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미 | 상명대학교 공예학부와 대학원을 마치고 이탈리아 밀라노 도무스 아카데미대학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귀국 후에는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자연과 전통을 소재로 국내외에서 6번의 개인전을 선보였으며 현재는 상명대학교 가구조형전공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정은미의 목조형가구 여행기>와 <나무로 쓰는 가구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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