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공지붕의 무한한 변신...<하소쿠시 주택>
작은 대지 위에 지어지는 집은 언제나 고민이 많다. 한줌의 햇볕을 조금이나마 더 끌어당기기 위해 ‘하소쿠시 주택(羽束師の家)‘이 떠올린 아이디어는 ‘박공지붕’이다.
송은정 기자
woodeditor2@woodplanet.co.kr | 2024-11-25 17:28:45
목조주택의 스테레오 타입인 스타코 마감의 흰색 외벽과 박공지붕이 어김없이 재현된 일본 교토의 하소쿠시 주택은 내부로 들어서기 전까지는 그 진가를 알아채기 어렵다. 집의 이름이 이미 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과는 별개로 ‘다람쥐집’이라는 귀여운 애칭을 붙이고 싶은 까닭은 독특한 실내 구조 탓일 테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삼각형 지붕이 바로 그 매력의 주인공이다.
옹골찬 나무성벽을 세우다
실내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삼나무 패널로 꼼꼼히 마감한 벽면이 한눈에 들어온다. 폭이 좁고 긴 대지의 특성에 맞추어 1층은 다이닝룸을 가운데 두고서 삼등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거실과 다이닝룸, 주방의 순서로 이어지는 공간은 앞서 언급한 삼나무 벽면에 의해 명확하게 분리된다.
이때 삼나무 벽면은 2층 높이의 천장까지 수직으로 뻗쳐 있어 마치 옹골찬 성벽을 연상케 한다. 거친 돌덩이 대신 보들보들한 감촉의 원목이 성벽을 지탱하고 있어 돌벽의 냉랭한 기운은 온데 없고 포근함이 먼저 앞선다. 집을 든든히 받쳐주는 듯한 안도감 역시 여전하다.
하지만 제아무리 포근한 나무 성벽일지라도 물샐 틈 없이 막혀 있는 구조였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졌을 터다. 다이닝룸을 중심으로 마주보고 있는 두 삼나무 벽면에는 무려 7개의 개구부가 뚫려 있어 갑갑함이 상쇄됐다. 박공지붕이 얹어진 집 모양을 본뜬 개구부는 그 앙증맞음에 슬금슬금 웃음이 날 지경. 크기와 높이마저 모두 제각각인 이것은 주방과 거실, 현관으로 통하는 입구이거나, 고개를 쏙 내밀 수 있는 창 구실을 한다. 커다란 나무 기둥 여기저기에 구멍을 파고 사는 다람쥐의 집이 떠오르는 건 유치한 상상일까. 어쨌거나 여기 하소쿠시 주택에 사는 건축주 부부의 어린 아들에게만큼은 흥미진진한 공간임에 틀림없다.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같은 박공지붕 스타일이 집안 곳곳에서 발견됨을 알 수 있다. 가령 주방에서 화장실로 향하는 통로의 상단 역시 단순한 직사각형으로 마무리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현관에서 주방, 화장실로 이어지는 일직선의 동선을 따라 세 개의 박공지붕 개구부가 겹겹이 쌓이도록 정교하게 설계한 셈이다. 입구로 쓰이는 개구부마다 별도의 문을 달지 않은 것 역시 인상적이다. 덕분에 개별 공간은 제 따로 놀지 않고 유기적인 흐름을 갖는다.
빛과 바람을 담는 공간
하소쿠시 주택은 일본의 대부분의 집이 공통적으로 품고 있는 고민에서 마찬가지로 시작됐다. 이는 좁은 대지에 주택이 다닥다닥 줄지어 세워지면서 발생하는 문제들로, 설계 디자인의 제약이라든지 그늘진 환경 등이 손에 꼽히는 골칫거리다.
설계를 맡은 알츠디자인오피스(ALTS DESIGN OFFICE)는 다이닝룸이 자리한 집의 중심부를 텅 비움으로써 가능한 한 많은 빛과 바람을 내부로 담아내고자 했다. 반복되는 박공지붕 개구부는 자연바람이 집안을 순환하도록 돕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건물의 오른쪽 측벽은 전면이 불투명 유리로 마감되어 있어 프라이버시와 넉넉한 햇살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다.
이와 같은 구조는 비단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가족이 다함께 모이는 다이닝룸은 개방형 계단을 비롯해 1층과 2층 어느 공간에서나 보이도록 개방되어 있다. 이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세 구성원 사이에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소쿠시 주택은 어른과 아이 어느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은 채 열악한 대지 조건과 주변 환경을 재치 있는 설계로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사진제공 ALTS DESIGN OF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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