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쉴 곳은 나의 집뿐이리... 오스트리아 세인트요한 인 티롤 비센호프

회색 기운의 공간이 주는 자연 오감
모든 가구는 수제 제작

오예슬 기자

woodeditor3@woodplanet.co.kr | 2023-09-19 19:30:10

 

오스트리아 세인트요한 인 티롤(St. Johann in Tirol)에 자리한 비센호프(Wiesenhof)는 집 그 이상의 집이다. 집이라면 응당 그래야하듯 쉼이 있는 곳…. 건축주는 쉴 곳을 원했다. 비센호프를 둘러싼 천혜의 자연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평화와 사색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집이길 원했다.

비센호프를 보고 나니 존 르 카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문득 떠오른다. 영국 비밀 정보요원들의 인간적인 고독과 내밀을 그린 영화는 회색에 가까운 갈색의 분위기가 8할을 지배한다. 다소 을씨년스러운 영국의 풍경과 트렌치코트 깃을 여민 단단함이 줄곧 변주된다.


회색에 가까운 갈색의 분위기는 비센호프에서도 읽힌다. 살짝 낀 안개가 세상의 모든 색을 지운 풍경이 그려진다. 하지만 스산한 것은 아니다. 평화와 사색이 깃들 정도의 적당한 적막함이 있을 뿐이다. 사방이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속세에서 들려오는 잡음도 없을뿐더러 세상에 지쳐 쏟아내는 넋두리와 한숨도 비센호프는 모두 받아낸다. 귀에 크게 들려오는 건 자연과 사람이 함께 호흡하는 숨소리뿐이다. 말없이 묵묵한 집이 탄생한 배경은 이렇다. 

 


세계의 산맥을 병풍으로 두른 집


알프스에 위치한 이 ‘피난처’는 공간적 개방성과 닫힌 지역성이 공존한다. 설계 규제에 따르면 본래 용적을 넘어서 재건축하거나 증축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디자인에 상당한 제한이 따랐다. 공간끼리 맞물리는 실내 룸과 야외 공간, 다채로운 공간 구조에 대한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디자인적 제한을 보충, 여유가 넘치는 주거 공간이자 레저 공간으로 완성했다.


고글 아키텍트(Gogl Architekten)는 비센호프가 지닌 지리적 강점을 세심하게 고려했다. 북쪽으로는 빌더 카이저(Wilder Kaiser)와 차머 카이저(Zahmer Kaiser) 산맥을 뒤로 하고 남쪽으로는 키츠뷜러 혼(Kitzbühler Horn) 산맥이, 동쪽으로는 로페러 슈타인베어겐(Loferer Steinbergen) 산맥과 농가의 흔적이 둘러져 있다. 비센호프는 이렇듯 압도적인 경관과 여러 방향으로 소통하고 있으며 그 어디를 보더라도 그림이 된다. 또한 세계적인 겨울 여행지가 코앞에 있는 셈이니 스키를 타러 가는 게 동네 마실 가는 정도.


고풍스러운 재료를 활용하는 계획은 주변 농가주택의 분위기를 옮기려고 한 다분히 의식적인 결정이었다. 농가주택의 경우 박공지붕을 한 형태가 대부분인데, 비센호프는 기존의 박공주택을 모던하게 풀어냈을 뿐 아니라 훨씬 개방적이다. 때문에 자연의 신선한 공기가 실내를 쾌적하게 만든다. 신선하고 상쾌한 공기 덕분에 공간의 분위기가 맑고 가볍다. 

 

 

 

 

‘비센호프다움’을 잃지 않다


문턱이 없어 드나듦이 자유로운 입구는 실내의 여러 공간을 하나로 묶어낸다. 도식적인 공간의 분할이 없이 용도에 맞도록 인테리어를 다르게 해 그 변화가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인테리어는 다르지만 분위기의 톤이 일정해 어느 곳에서나 ‘비센호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자연석 벽이 돋보이는 현관, 스토브와 원목 가구로 꾸민 거실, 이동식 욕조가 있는 개방형 욕실, 파사드 사이로 햇살이 가득한 세면실이 끊임없이 물 흐르듯 이어진다.


출입이 자유로운 입구는 실내와 야외라는 구분마저 지우고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한다. 테라스에 설치한 난간 또한 투명한 소재를 써 안과 밖을 시각적으로 통합시켰다. 이는 경치를 바라보는 시야를 가리지 않고 온전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도우며 정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이끈다. 물론 스토브 앞에 앉아 실내에서 즐겨도 충분하다.


건축가와 건축주의 생태의식은 손에 손을 잡고 더욱 커져나갔다. 둘은 한마디로 죽이 착착 맞았다. 그들의 관심은 건축에 사용된 재료의 물성으로 이어졌다. 가장 원시적이고 자연적인 물성을 지닌 건 나무. 나무를 사용해 비센호프에 걸맞는 가구를 디자인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가구 모두 각자의 콘셉트에 따라 디자인, 제작되었으며 건축주의 필요와 공간적 요구 사항을 적극 반영했다. 가장 돋보이는 가구는 다리 없이 벽에다 고정시킨 거실 소파와 소파 겸 서랍장이다. 스토브 앞에 놓은 별도의 의자를 제외하고는 큰 가구를 모두 벽 쪽으로 붙이거나 아예 고정시켜 버렸다. 덕분에 공간이 훨씬 더 넓어 보이며 더불어 동선의 반경도 함께 넓어졌다.  

 

 

 

 

결론은 집을 짓는 생각


인테리어에는 오크, 철, 자연석, 린넨, 삼베를 사용했다. 특히 오크가 많이 보이는데 가구에는 오크 고재, 벽 마감에는 오크 플로어링이 사용되었다. 비센호프에 사용된 오크는 원래 오크가 이렇게 적적한 색이었나 싶을 정도로 채도가 낮은데, 함께 사용된 재료들 또한 산뜻한 색감보다는 수수한 질감을 자랑하는 것들이다. 각 재료가 가지고 있는 성질이 서로 닮아 있고 곳곳에 적당히 사용되어 넘치는 것 없이 절제된 느낌을 준다. 시각보다는 촉각, 매끈함보다는 투박함을 선택했다.


정원으로 눈을 돌려보자. 자연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아 그 자리에서 나고 자란 식물로 정원을 꾸몄다. 원래 농지로 쓰였던 정원이 기존 자연환경과 위화감 없이 어울릴 수 있도록 한 조경이다. ‘꾸몄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원을 다듬은 손길엔 꾸밈이 없다.


고글 아키텍트와 건축주는 생태의식을 공유하며 깊이 교감했다. 진정한 평화는 자연의 평화에서 온다는 생각으로 자연이 노여워하지 않을 만큼의 변화를 추구했다. 마침내 안과 밖에서 모두 평화가 찾아왔다. 진정으로 바라던 내 쉴 곳이 바로 나의 집이 된 것이다. 비센호프를 보니 역시 집 짓는 사람의 생각이 결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이 곧 건축이 되면 누구하나 행복 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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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개요
프로젝트명: 하우스 비센호프
위치: 오스트리아 세인트요한 인 티롤
용도: 개인주택
시공 기간: 2년
대지 면적: 2,280㎡(약 690평)
연면적: 413㎡(약 125평)
건축 면적: 275㎡(약 84평)
프로젝트팀: Regine Egg-Mitter, Hildegard Platzer-Rieder
조명 설계: Akzente Lichtsysteme
시공 LP-Bau GmbH
HVAC Brunnschmid GmbH
소목 Tischlerei Hofer KG
계단 Treppenfüchse Gmb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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