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신의 협업이 만든 나무 공간... 가평군 설악면 <생명의빛> 예배당
유재형 기자
woodeditor@woodplanet.co.kr | 2025-02-11 21:03:08
직사각형 건물에 십자가가 박힌 고깔 지붕은 쓴, 우리에게 익숙한 교회의 모습은 여기에 없다. 건축가 신형철은 자연 숲속에 나무를 심고, 수조를 파고, 뼈대를 세워 강대상을 놓았다. “모두 신께서 한 일이다.” 생명의빛 예배당은 섭리와 인연이 작용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침묵과 묵상기도를 통해 신과 소통하기에 이만한 장소가 또 있을까. 영혼의 내면을 돌아보고자 전국 각지에서 찾는 순례객들은 오직 나무의 힘만으로 버티고 선 공간 아래에서 찬송하며 소망을 염원한다.
설곡리에 울몽 작가가 살았네
생명의빛 예수마을 선교센터 건축은 해외 파송 선교사들이 은퇴 이후 정착할 터전이 없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한 남서울은혜교회 측이 이들의 국내 정착을 돕고자 마련한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생명의빛 예배당은 총 4109㎡(1243평) 규모의 선교센터 내 3층 330㎡(100평) 면적에 300석 규모로 마련되었으며 2015년 5월 말 완공식을 가졌다.
3층이라고 하지만 경사면을 타고 있기에 언덕 주차장에서는 곧바로 진출입이 가능한 구조다. 우선 1층 선교센터 출입문을 들어선다. 예배당으로 오르기 전 1층에서 꼭 만나야 할 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좌측 소예배실으로 쓰이는 장소에는 프랑스 조각의 거장 장 파트리스 울몽(Jean Patrice Oulmont)의 작품이 감춰진 듯 놓여 있다. 누가 의도한 것인가, 아니면 그의 작품이 별 볼일 없다 싶어 움푹 들어간 공간 한 쪽에 처박아뒀단 말인가. 알고 보니 당대 최고의 프랑스 조각가로 일컫는 울몽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는 반감은, 오해였다.
홍송 통원목에 새겨진 텍스처 조각은 재면 상태를 그대로 노출하면서도 조각칼의 움직임대로 수직 요동치며 3층 예배당을 지향하고 있었다. 이곳에 놓여야 할 이유는 설계도를 확인하고 수긍할 수 있었다. 울몽의 조각이 높인 자리는 3층 중앙 예배당 중앙 수조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며 (생명의) 빛의 연속성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쓰인다. 이 거장의 참여는 우연이다. 우연히 홍정길 원로목사를 만나 이곳 예배당을 짓게 된 사연에 감동해 한국을 찾았다. 울몽은 40일간 가평에 머물며 '물과 돌 사이로 흐르는 빛'을 주제로 조각품을 남겼다.
‘러시아 홍송’ 한국행 배에 오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서 내리면 감동에도 등급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수백 그루 아름드리 홍송은 하늘과 땅의 모든 기운을 응축한 채 공중 정원을 펼친다. 땅에는 물(수조)가 있고 다시 동심을 따라 풀푸레나무를 집성한 7개의 긴 의자가 놓였다. 1층 울몽의 작품이 자리한 위치가 이 수조 아래이다. 울몽의 작품은 이 거대한 나무 공간에 바치는 오마주 격이다.
울뭉이 상상한 감동은 이 공간을 마주한 방문객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무는 서정적인 감정을 자극한다. 이 원시적인 감성은 오래 되새길수록 깊은 맛이 나기에 한동안 우리는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원구형의 천정은 높고, 빛은 깊숙이 떨어진다. 그 한없는 부피를 담아낸 물은 세례의 의미와 동시에 천지창조가 묘사한 ‘심연을 덮은 영이 물 위를 감도는’ 대목을 묘사한다. 원구형 지붕의 중심과 수조의 정중앙, 그리고 울몽의 작품의 머리에 십자가 놓였다. 살펴보니 십자가 제작 방식이 무척 독특하다. 물 위에 심어진 금속성 십자가는 일일이 용접봉으로 모양을 만들어 마치 탄화목을 보는 듯 재미있다.
이제 폴리카보네이트(polycarbonate)에서 한 번 걸러진 빛이 돔 천청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장면을 지켜볼 차례다. 원구 형은 우주를 상징하고 성경적 의미인 궁창을 묘사한다. 혼돈스러운 만물을 정렬해야 할 빛의 탄생, 천지창조 첫째 날이 기록이다.
예배당 기둥은 홍송 193개, 천정에 홍송 641개가 사용되었다. 이제는 통목으로 구할 수 없는 러시아산 재목이다. 집 나간 자식을 생각해 평생을 기도한 어머니를 잊지 못해 예배당을 짓기로 서원한 JK건설 이장균 사장. 그가 평생 모은 홍송을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에서 한국으로 실어 보내던 날 러시아는 가공품을 제외한 홍송의 전면 수출 금지 조치를 발표했다.
이장균 사장은 러시아 나오도까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성장했지만 어머니에 대한 타는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러시아에서 우연히 홍정길 목사를 만나 조건 없는 기부를 약속했다. 따지고 보면 굳이 성경을 언급할 필요도 없다. 예배당이 건축될 때까지 사연을 듣고 이 공간은 인연으로 지어졌다 볼 수 있다. 그 숱한 인연이 생명의빛 예배당으로 농축되었다는 사실은 비기독교인에게도 신기하게 들린다.
빛의 공간을 창조한 신형철 건축가
여기 또 하나의 기도가 있다. 프랑스에서 자란 한 소년이 가족과 함께 여행을 시작했다. 유명한 롱샹성당에 이르러 그 아름답고 성스러운 건축물에 감동받아 기도를 올렸다. “저도 이런 예배당을 짓고 싶습니다.” 23년 후 눈물의 기도를 올렸던 소년은 건축가가 되었다. 그리고 가평 땅에 예배당을 짓겠다는 홍 목사의 계획에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가 바로 신형철 국립 베르사유대학 건축과 교수이다. 결국 이 둘의 첫 만남도 예비된 우연이었다. 신 교수는 2008년부터 생명의빛 예배당 설계에 착수했다. 유럽에서 자란 그이지만 사실 목재 건축은 첫 시도였다. 이미 홍 목사가 이장균 사장에게서 목재 기증을 약속받은 터라 목재 활용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였다. “나무가 주어진 상황에서 설계에 들어간 터라 제약이 많았습니다. 하중을 견디기 위해 더 강화된 구조재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철골 부재나 트러스는 더 효율적으로 거대한 공간과 건축물을 지지한다는 기본에서 설계에 들어갔습니다.”
신 교수는 우선 한국을 방문했다. 가평 현장에 도착하자 수북이 쌓인 834개의 목재가 먼저 눈에 늘어왔다. 그런데 나무가 누운 채 비를 맞은 모습에서 도저히 활력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무를 수직으로 일으켜 부활의 이미지를 담는 것에서 디자인은 골격을 채워갔다.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문제는 하중이었다. 천정 구조물 자체 무게와 91톤에 이르는 목재 하중을 견뎌 낼 튼튼한 구조물이 필요했다. 우선 프레임 설계는 독일 업체에 맡겼다. 독일 업체는 4개월 후 결과물을 보내왔다. 이를 시공할 국내 업체를 찾는 것도 문제였다. 후보군을 선정하고 몇 번을 검증한 끝에 철골구조물 시공사로 (주)케이돔을 선택했다.
다시 목재 가공은 로하스 한옥에 맡겨졌다. 우선 원구(元口)와 말구(末口)의 직경 차를 최소화하고자 가공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굽은 것과 휜 목재를 억지로 맞추려 들기보다는 형체가 지닌 자연미를 살리는데 초점을 맞췄다. 디자인 완성 후 프레임과 결구하는 깎고 다듬고 홈파기 작업이 진행되었다. 생명의빛 교회 홍송들은 눕혀서 짓는 방식이 아니라 전체가 세워지는 설계라 말 그대로 난공사였다.
7개월여의 목재 가공 끝에 1m20cm 기둥 193개가 세워졌고, 천정에서 떨어지는 홍송 부재 641개가 매달렸다. 천정 부재는 보통 150∼200년생이고, 프레임을 떠받치는 기둥 중에는 수령이 1000∼1200년생도 있다. 이들을 길이로 풀면 2300여m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동서남북 4곳의 출입구에 세워질 기둥은 러시아 홍송만으로는 높이와 넓이가 부족했다. 둘레 길이만 4m 이상 되는 대형 통목이 필요했던 것이다. 신 교수와 두 명의 특임 집사는 4개월간 전국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600∼700년생 캐나다산 홍송(무절) 여덟 본을 찾아냈다. 가공 후 남은 목재를 활용해 제작한 강대상 단면을 살피면 나이테가 0.5mm 간격으로 600여 개가 새겨진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찾아낸 홍송들은 큰 구에 작은 구들이 연결되는 방식으로 결구되며 기둥 위에 올려진 격자 돔 프레임과 맞물렸다. 자세히 살피면 홍송 부재는 열십자 형태로 홈을 파 격자형 프레임에 끼어 맞추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현장에서 목재 가공을 담당한 로하스 한옥의 이연성 대표는 홍송의 특징상 깎기가 쉬웠고, 가공 후 단단해지는 물성이 있어 숙성 건조 과정을 거치면서도 큰 변형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몇 차례 러시아산 홍송의 물성을 경험한 자신감 덕에 작업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타 업체에 의해 홍송을 공장에서 가공 후 규격화해 제작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자연 그대로 가 좋다는 교회 건축위원회의 의견에 따라 7개월여의 작업 끝에 완성품이 나왔다.
홍 목사의 ‘인연’으로 완성한 예배당
3층에는 예배당 외에 갤러리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는 도불화가 신성희와 건축가 신형철의 전시회 전이 열리고 있다. 신성희 작가가 프랑스로 건너갈 시 6살이었던 신형철은 대학교수가 되었고, 4살이었던 신혜리는 에스모드 의상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 후 디자이너가 되었다. 신 교수는 그곳에서 프랑스인 건축가 아내를 만나 일가를 이뤘다. 결혼 이후에도 아들 내외와 신혜리는 ‘신스Shin's’라는 이름으로 공동 작업하며 신성희 작가 특유의 ‘공간’ 개념이 들어간 독특한 아이디어를 매개로 프랑스 건축계와 패션계에 신선한 충격을 일으켰다.
신 교수는 이곳 ‘공간’을 빛을 통해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곳으로 단정했다. 그래서 빛의 형상을 극대화하고자 프레임과 목재가 드러나지 않은 채 하늘과 직접 통하는 12개의 공간을 설계했다. 이것은 구약에 등장하는 인류의 상징적 12지파이기도, 예수의 12제자를 나타내기도 한다. 상부는 유리로 마감했다.
신 교수는 1층 공간은 설곡리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도록 유리로 외벽을 마감했다. 숙소와 세미나실이 있는 2층은 유리로 시공 후 단열을 고려해 폴리카보네이트로 한 번 더 감싼 형태다. 3층 예배당은 순결한 이미지를 강조하고자 외벽은 유리로, 다시 내부는 폴리카보네이트로 처리했다. 유리와 폴리카보네이트 사이로 공기층이 순환하고, 3층 돔 상부는 개폐가 가능해 더운 공기가 외부로 배출되도록 설계했다.
신 교수는 예배당 곳곳에 재미있는 장치를 숨겨놓았다. 공간을 감싼 홍송 기둥과 짝을 이루며 수직으로 곧게 뻗은 40개의 금속 파이프는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을 연상케 한다. 이곳에서 지열을 통한 냉난방열이 뿜어져 나온다. 또 26개의 조명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예배당 중심부 수조 주위에는 음향 증폭기가 있다. 천청을 타고 내려온 빛이 수면에 반사되면서 사람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소리로 표현해 감동을 극대화했다.
신형철 교수와 전영석 관리 집사의 설명은 일치한다. 이곳은 혼돈의 바닥에서 시작해 천지를 창조한 조물주의 섭리가 그대로 작용한 곳이라는 것이다. 우연히 헐값에 땅을 구했고, 러시아의 나무 기부자를 만났고, 예배당 짓기를 서원한 신 교수를 만났고, 이 이야기에 탄복한 울몽 작가의 재능기부가 따랐다. 또 모두가 손사래 치던 난공사를 일임한 케이돔 임영철 대표를 만났다는 사실은 인간사의 그저 단순한 ‘인연’이 아닌 신의 ‘섭리’가 따랐기에 가능했다고 이들은 증거하고 있다.
생명의빛 예배당은 건축가의 창조적 시선과 기부 형식의 협업을 통한 종교적 의미, 목재 구조의 독특한 구성이 탁월한 건축미감을 자랑한다. 사실 이 예배당이 독립된 작은 건축물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그러나 한국 땅에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원목의 힘을 보여주는 독창적인 조형미를 가졌다는 평가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문이 들었다. ‘상업 건물이었다면 이러한 시도가 가능했을까’, 하는 물음.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는 게 동행한 건축사의 의견이었다. 세상의 법칙과 계산만으로 불가능한 무엇이 존재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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