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의 데크, 생활공간으로 거듭나다... 전망 좋은 집 <일우재>
한옥 리모델링
'하루가 넉넉하고, 햇살이 넉넉하라’는 의미의 일우재(日優財)
강진희 기자
woodeditor2@woodplanet.co.kr | 2024-08-23 21:26:26
안국역에서 하차한 후 한참을 위로 올라가야 한다.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길을 여러 개 지나 드디어 당도한 집, ‘일우재’. 꼭대기까지 오르내리는 수고로움이 헛되지 않을 만큼의 멋진 풍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집 아래로는 검은 기와지붕들이, 저 멀리로는 광장동의 아차산이 보일 정도로 전망이 매우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일우재는 1927년 대지면적 25평에 건축면적 15평 규모(1고주 4량)로 지어졌다. 김장권 소장은 5년 전에도 이 집을 리모델링했었다. 하루 종일 볕이 풍부하게 들어 ‘하루가 넉넉하고, 햇살이 넉넉하라’는 의미에서 일우재(日優財)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때는 전통한옥에 입식주방과 욕실 등 약간의 현대식 생활을 더하는 정도에서 수선됐다. 5년 전만해도 ‘전통의 재해석’은 사회적 이슈였다. ‘한국적 디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외형’을 본뜨는 게 아닌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늘 결론이 모아졌다. 처음에는 소극적이고 다소 미완의 상태에서 현대화가 진행됐다. 전통 그 자체에 관심을 두던 때였다. 그렇게 한옥은 한걸음씩 천천히 우리 곁에 다가왔다.
두 번씩이나 같은 집을 수리할 수 있게 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주인이 바뀌면서다. 물론 집 주인은 전에도 이 집을 리모델링했던 건축가가 김장권 소장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의뢰했다. 이번에는 자녀 둘을 둔 젊은 부부가 이사를 왔다. 부부는 단열에 각별히 신경써줄 것을 부탁했고, 추후 아이들의 성장에 따른 유연한 공간 활용 그리고 안방에서의 편리한 동선 등을 요청했다. ㄴ자 구조는 그대로 두고 동선을 바꾸거나 기능을 보강하는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단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엌과 대청마루에 설치됐던 기존 한식도어를 철거하고 기와지붕색의 시스템 창호를 달았다. 또 주방과 거실 외의 방 천장은 복잡한 기와공사 대신 단열재를 덧대는 목작업으로 해결했다. 주방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작은 아이방이 있고, 오른쪽으로 안방, 거실, 큰 아이방이 순서대로 이어진다. 주방과 작은 아이방 사이는 슬라이딩 칠판도어를 설치해서 공간을 확장시켰다. 주방과 안방 사이는 통유리를 넣어 답답함을 해소했다. 특히 안방은 다락형 침실을 배치하고 화장실 및 전실을 추가해 생활의 편의성을 높였다. 마당은 데크를 설치해서 높이를 대청과 맞췄다. 이로써 원활한 동선확보와 함께 마당에서의 차경도 극대화할 수 있었다.
같은 건축가에 의해 두 번씩 리모델링된 집
북촌의 여느 집처럼, 이 집 또한 학자가 꽤 많이 배출됐다. 일제강점기 민족주의자가 살았다. 저 멀리 아차산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민족의 과업을 결심하지 않았을까. 또 서울대 교수가 나오기도 하고, 자식들이 모두 성공한 집안이 나오기도 했다. 벌써 북촌에서만 200여 채에 가까운 한옥을 개보수하고 있는 한옥 전문가 김장권 소장은 “1927년도에 지어진 집이 2013년에도 유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일우재가 갖는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한옥은 시대성을 담는 게 가장 중요한데, 단열이나 보안, 가족 구성원 등 사회변화에 발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집을 두 번씩이나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이는 건축가 자신만의 행운은 아닐 것이다. 마치 환자라면 전문 주치의가 있는 것처럼, 정밀한 데이터와 농익은 연륜을 통해 관리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촌한옥 리모델링은 현행 건축법 상 한정적인 부분이 많다.
기존 건축물 내에서 내부에 변화만을 주는 정도의 수준이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공사가 끝나면,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과거의 경험이 쌓여져서 현재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지금의 작업이 가장 베스트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것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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