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가구 디자이너 정우진 "그것만으로 충분한 넓이 ‘반쪽 의자(Half Chair)"
FDA ASAHIKAWA, 4년마다 월드컵이 열리듯 3년에 한번 열리는 세계적 권위의 가구 디자인 공모전인 이 대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본상 최고의 영예인 Gold Leaf(금잎상)를 수상한 정우진 가구 디자이너. 핀율과 조지 나카시마가 그러하듯 건축 전공에서 가구 디자인으로 꿈을 이식한 후 핀란드 유학 중 'Half Chair'를 선보이며 세계의 주목을 받은 젊은 작가이다.
육상수 칼럼니스트
ssyouk@woodplanet.co.kr | 2025-01-30 21:33:03
자발적 불편, 보통 의자의 절반에 불과한 좌판을 충분한 것으로 여기는 스케일에 디자인계가 감동했다. FDA(국제가구공모전) ASAHIKAWA(아사히카와)는 특정 기업의 후원이 아닌 일본 아사히카와 공방 전체가 주는 상이라는 점에서 공정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정우진 작가는 이 대회를 준비하며 스무 번의 시제품 제작과 수종 변경 끝에 물푸레나무(애쉬) 소재의 인체공학적 반쪽 의자를 완성했다.
그랑프리 수상 이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넘치는 자신감”을 짊어졌을 뿐. 생각의 크기가 자랐지만 변한 것이 없다는 정우진 작가의 일상도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간결하나 편안한 것을 찾는 북유럽 가구 디자인의 가치에 반한 그곳 유학생의 고집스러운 집념이 아사히카와 출신 장인들의 손을 거쳐 전 세계 출시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너무 엄격한 자세를 요구한다는 일본 기업의 수정 요구가 있어 좌판의 높이를 5cm가량 키웠습니다. 그것만으로 제 기능을 다했기에 특별한 디자인 수정은 없었습니다.”
FDA ASAHIKAWA는 날로 쇠퇴하는 목재산업을 일으키고자 홋카이도 아사히카와 공방들이 결합해 재정한 공모전이다. 공방의 선택을 받은 수상작들은 시제품 제작 단계를 거치면서 세계 시장 공략 가능성을 실험하게 된다. 이 때문에 신인 디자이너들은 적당한 부와 명성을 함께 실현할 대상으로 FDA ASAHIKAWA를 고집하고 있다.
이 대회는 창시자인 미노루 마다하라 씨의 목표였던 지역 경제 활성 효과와 함께 가장 공정한 신인 등용문이라는 평가를 얻게 되었다. 공모전과 지역 목재산업의 연계 방안은 가구 선진국 북유럽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한 일이다. 일본 홋카이도의 작은 지방이지만 공모전을 통해 독일과 밀라노에도 지사가 있을 만큼 홍보에도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잇따른 국내 대형 공모전에서의 부정 사례로 큰 홍역을 치른 우리로서는 무척 부러운 경우이다.
정진우 작가는 “공정성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해당 산업을 키우는 가장 큰 무기가 되고 있다"라고 평가하면서 “설상 우리나라가 이와 유사한 공모전을 가진다고 해도 수상작을 생산할 퀄리티와 외국 작품을 편견 없이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는지부터 살펴봐야 할 것”이라며 성찰을 요구했다.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이 있다. 디자인 선진국이라는 명성은 사회구성원이 공동으로 이룩한 산물이라는 점에서 아사히카와의 사례는 충분히 검토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하다. 의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지나치게 편한 것은 싫다’는 외국인 젊은 작가의 발상을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는가. 정우진 의자의 또 다른 이름은 ‘자세를 바르게 고치는 의자’이다.
Q. 가구 디자이너의 꿈은 어떻게 키웠나요?
전기전자공학도(중앙대)였습니다. 그런데 공부하다 보니 제 적성이 아닌 거예요. 그래서 2학년 때 건축과로 전과를 했어요. 밤을 새우며 건축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졸업 후 IMF가 터져서 취업할 곳이 없으니 반기는 곳은 군대뿐이 없더군요. 당시 맡은 보직이 공군 내 목공소에서 시설물을 유지 보수하는 일이었습니다. 가구를 만드는 곳이라기보다는 사물함이나 총기함 등을 보수하는 일이었죠. 목공소 내에도 보일러 병사나 목공 병사 등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다행히 저는 나무를 만지는 쪽이었어요. 나무를 만지니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때 생각했죠. 아, 운명이구나. 이걸로 밥벌이를 해야겠다고 다짐했죠.
Q. 본격적으로 디자인 수업을 받게 된 것은 언제인가요?
교육 받을 곳이 마땅찮아서 가구회사인 한샘에 입사했죠. 원래 건축과 출신들은 디자인, 빌드, 공예 등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들어가서 1년간 부딪히고 보니 디자인 전공자들과 격차가 보이더군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디자인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제품 디자인을 공부하고 찾은 곳이 스웨덴의 공예학교였습니다. 무작정 떠나고 본 거죠. 스웨덴 예테보리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교환학생으로 있은 핀란드 알토대학교에서 4년간 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Q. 북유럽의 디자인 교육 환경은 어떠한가요?
무엇보다 핀란드에서 만난 학교와 공방은 목재의 양과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었습니다. 사회복지 제도가 훌륭한 나라답게 핀란드는 전액 학비가 무료였어요. 당시 스웨덴도 외국 유학생 학비 면제 제도가 있었어요. 제가 머문 핀란드는 스웨덴보다 기회가 많은 국가였어요. 공방에 대한 지원 제도도 좋아 욕심이 나는 건 다 만들었죠. 그중 하나가 ‘반쪽 의자’였습니다. 공모전 수상 이후 줄곧 핀란드에 머무르게 되었죠.
Q.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에서의 유학 생활은 어떠했나요?
총 8년이란 기간을 북유럽 국가에서 체류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입장에 따라 조심해야 할 것이 많은데 그곳 국가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가르치는 교수 입장이라도 권위적이지 않는 것이 한국과는 분위기가 달랐어요. 동네 솜씨 좋은 목수 아저씨를 대하는 것처럼 편했어요. 그런데 이들 3개국의 제작 시스템은 조금씩 차이가 있어요. 핀란드는 디자인과 목수(캐비닛 메이커)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어요. 협업의 가치를 통해 디자인 강국으로 발돋음한 경우죠. 그러나 덴마크는 분업이 철저하게 지켜지진 않아요. 디자이너가 목수가 되고, 목수가 디자인을 하는 경우도 있죠. 디자인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제작에 필요한 시간이 단축된다는 장점이 있겠죠. 스웨덴은 핀란드와 덴마크 중간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Q. 북유럽의 목공 문화는 어떠한가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목공이 일상화되어있습니다. 차별이나 편견 없이 여자들도 망치질하고 흙 만지고 드릴질 하는 것이 익숙하다고 봐요. 교육도 학생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배우는 환경입니다. 공방 선생님이 조언을 하긴 하지만 자기가 주도적으로 만들고 배우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Q. 가구를 만든 재료, 나무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제가 북유럽에서 배울 때 교수님이 플라스틱을 좀 혐오하는 사람이었어요. 천연재료, 천연 나무를 사용하는 것을 주로 했고요. 나무 중에서는 자작나무 수종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독일에는 너도밤나무(비취)가 많아요. 집성목은 의도적으로 쓰는 경우 아니면 거의 쓰지 않아요. 나무 수종은 특별히 선호하는 것은 없습니다. 나무는 사람과 닮았다고 생각해요. 인종마다 피부색이 다르고 성격이 차이나 듯 나무도 그러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람과 참 유사하죠.
Q. 북유럽 국가별 가구 디자인의 차이가 있나요?
스웨덴은 기능 중심, 덴마크는 미적인 부분을 강조를 하죠.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슷한 부분도 있어요. 덴마크 같은 경우는 조그만 회사들도 많지만 큰 회사들도 많은데, 자체 디자이너도 있긴 하지만 다른 유럽 회사들처럼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외주를 많이 받아요. 그래서 큰 회사와 작은 공방들이 상생하는 구조예요. 핀란드는 덴마크보다 좀 더 가구 디자인이 자유롭다고 보시면 돼요.
Q. 가구 디자이너로서 작가의 철학을 무엇입니까?
덴마크 등에서 공부하면서 많이 들었던 말이 “너는 사고방식이 우리랑 다르다”였습니다. 사람마다 다 개성이 있는데 그 개성이 용인되는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도 북유럽에서도 유독 “유별나다”, “넌 특이하다"라는 말을 워낙 많이 들어서. 종종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에 대해서, 혼란도 있었지만 그게 제 정체성을 찾는 여정이라고 생각해요. 전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가구 만들 때도 아무래도 그게 표현되는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가구 디자이너로서의 지향점은?
먼 타국에서 공부한다고 해서 한국적인 것을 넣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아무래도 ‘반쪽 의자’라는 게 제 포인트인 것 같아요. 그 작품에 디자이너로서의 색깔이 들어있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그쪽 교수님들은 의자가 편해야 되는데 왜 불편하게 만드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의자는 꼭 둘이 앉아야 하나?’ ‘하나로 잘라버릴까?’라는 의문에서 그렇게 했어요. 당신들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의문을 품게 만드는 것에서 전략을 찾았죠.
Q. ‘반쪽 의자’를 떠올리게 된 계기는?
특별한 계기는 없지만, 음 종이에 연필로 그려보고 써보고 하다가 생각하게 된 거죠. 주로 구상 과정에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게 됐죠. 주변 사람들 중 첼리스트가 있어 보여줬는데, 그는 악기와 하나가 되는 의자를 좋다고 답했어요. 그때 확신을 갖게 되었죠. 2005년 즈음인가 어머니께서 신문스크랩 기사를 보여주셨는데 사진 속 가구가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큰 관심이 없을 때였습니다. 6년 뒤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그 기사를 다시 찾아보니 놀랍게도 참가 신청서를 낸 FDA ASAHIKAWA의 수상작이었던 거죠. 아마 심사위원이 생각하는 디자인 방법론에 제 작품이 들어맞았던 것 같아요. 소박함, 진정성, 과장의 유무 정도가 심사 기준에 들어맞아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현재는 상품화를 목적으로 ‘반쪽 의자’ 두 번째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Q. 건축을 배운 것이 가구 제작에 도움이 되나요?
건축을 통해 구조를 공부했으니 하중을 분산하는 계산에는 큰 도움이 됩니다.
Q. 핀란드 가구 디자인 전공자들의 진로는 열려있나요?
대기업에 취업하려는 열망은 있지만, 뭐 대기업은 핀란드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개인 공방을 열거나 아르텍 같은 유명한 가구 회사에 입사해 디자이너 밑에서 배우면서 일하기를 원하죠.
Q. 덴마크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서의 작업실을 열게 된 배경은?
아무래도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외국에서 회사 생활을 하기보다는 내 작업을 해야겠다는 열망이 찾아왔죠. 과거에 다녔던 한샘과 연락을 하면서 내가 만든 가구를 회사를 통해 제작 후 판매하는 일도 의미 있다고 느껴졌어요. 하지만 오너가 생각하는 방향, 예를 들어 영업을 중시한다면 개인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방향과 맞지 않아 갈등을 겪을 수도 있겠죠. 아무래도 회사 생활이란 것이 의도하지 않아도 획일화되는 부분이 있겠죠. 사실 한국에서 칭하는 ‘아트 가구’ 개념은 저에게 생소해요. 실용 가구에 반하는 개념인 것 같은데 꼭 그런 가구를 고집할 생각은 없어요. 한국에서 먹고살겠다고 결심한 이상 이케아와 경쟁에서도 살아남아야죠.
Q. 우드플래닛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우드플래닛을 통해서 작가들 사이의 소통, 작가와 독자의 소통, 가구 디자이너와 독자와의 소통들이 잘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목수와의 대화라는 컨셉도 참 좋은 것 같아요. 특히 제가 원하는 부분은 작가들 사이의 ‘소통’이 가능했으면 해요. 젊은 작가들 소개나 그들 사이의 소통도 잘 이루어지면 좋겠네요. 반려동물 프로젝트에 이번에 저도 참여하는데, 그 행사 중에 또 저와 마음이 통하는 건축가분들도 만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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