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비커 스토어... 낡은 가구의 설레는 재구성

그들은 버려진 가구들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안전과 함께 창의를 두루 생각한 결과, 전만큼 튼튼하고 전보다 세련된 가구가 완성됐다.

이인혜 기자

woodeditor3@woodplanet.co.kr | 2025-02-15 21:51:25

 

리사이클링이 말 그대로 재활용이라면, 업사이클링은 기존의 재활용에 창의적 발상을 얹어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이다. 그건 소비 혹은 낭비 지향적인 현실에 대한 치열한 반성에서 시작되는 일이며, 버려진 대상을 지혜로운 시야로 다시 관찰하면서 새로운 쓸모를 찾아준 뒤 쓸모 이상의 가치를 불어넣는 일이다.

그렇게 양심적이고 사려 깊은 생각에서 비롯되는 작업은 세상을 조금 더 살 만한 곳으로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실행이 좀 버겁다. 따뜻한 마음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더 많은 기준과 원칙을 기반으로 진행되는 엄격한 일이다. 고가구를 재구성해 인테리어 요소로 활용한, 공간설계 전문 그룹 레트로민트의 한남동 비커 스토어 또한 그런 고민과 고충을 안고 시작된 프로젝트다.

유행과 반 유행



비커 스토어는 전형적인 의류 매장이지만, 하루 걸러 바뀌는 화려하고 다양한 옷보다 긴 세월을 견뎌낸 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배치된 수납장과 옷장을 비롯해 의자, 테이블, 그밖에 벽면을 채우는 각종 인테리어 요소들은 최소 30년에서 70년 연식의 낡은 가구를 해체한 뒤 새로 만든 것이다. 이는 대기업 클라이언트로부터 나무와 재활용이라는 콘셉트를 의뢰받은 후 시작된 작업이다.

공간 설계를 맡은 레트로민트는 지난 6년간 백화점부터 일반 매장까지 수많은 의류 전문 리테일 숍 작업을 진행해왔던 숙련된 기업이다. 박성찬 대표는 과거 쌈지에서 VMD(Visual Merchandiser)로 일한 경력이 있고, 박대표와 함께 비커 스토어 프로젝트를 진행한 김영일 디자이너 역시 쌈지에서 이력과 동시에 감각을 쌓아왔다. 게다가 박대표의 오랜 취미는 각종 빈티지 아이템 수집이다.
패션, 그리고 나무와 재활용을 축으로 하는 건축주의 주문 내용은 키치와 빈티지라는 두 디자이너의 오랜 전문 분야를 제대로 파고든 미션이었다. 그리고 고가구를 분해해 새로운 가구를 만드는 것으로 공간 구성의 전반적인 방향을 잡았다. 6개월간 여기 매진하는 과정이 그리 수월하진 않았지만 결국 값진 땀의 작업이었다고 그들은 이야기한다.

도면 없는 작업



그러나 일단 가구를 찾는 과정부터가 만만치 않았다. 일제강점기부터 내려온 가구 정도는 되어야 내구성이 제대로 보장되는데, 국내 시장을 둘러보니 애초부터 부실한 나무로 부실하게 만들어진 초라한 수명의 가구가 너무 많았다.

결국 해외로 눈을 돌려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컨테이너 박스로 고가구를 들여왔다.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지 세월을 살펴볼 수 있는 고령의 가구들이 대량으로 쏟아졌다. 지나치게 말짱한 데다 훌륭해서 부수기 마음 아픈 가구들은 나중을 위해 좀 아껴두고, 다리와 손잡이 등 연약한 부분이 파손된 가구부터 먼저 분리해 재구성에 들어갔다.

원활한 작업을 위해 200평짜리 창고를 빌렸고,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해 열 명가량의 인력이 투입됐다. 공간의 설계도 가구의 재구성도 도면 없이 진행됐기에 더없이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었지만, 그러다 아이디어가 소진되거나 기술적인 부분이 의심스러울 때면 해외 디자이너에게 파손된 가구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면서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장롱은 소파가 됐고 책장의 일부는 테이블로 변했다. 가구 제작이 불가능한 나뭇조각들은 모자이크 형태로 계단으로 갔다. 낡은 문짝을 외벽에 이어 붙이는 것으로 환영(welcome)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고, 외국인이 많이 드나드는 지역의 특성을 반영해 자개장을 개조하기도 했다.

모든 가구는 영원하다



가구는 결국 사람의 삶과 직결된 집기다. 그래서 재구성에 있어서 디자인팀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디자인 이전에 가구의 구조적인 설계였다. 안전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용하는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튼튼한 가구를 만들어야 했고, 동시에 화재, 방염, 해충으로부터 자유로운 가구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나무와 나무를 엮는 일에 있어서 내구성이 의심된다 싶은 부분은 금속 프레임을 덧대는 것으로 추가 작업을 진행했다. 만든 뒤에 여러 차례 긁어 보고 흔들어 봤고, 모서리를 살펴보고 다듬는 일은 모든 제작의 필수 작업이었다.

그렇게 성의 있게 만들었지만 김영일 디자이너는 자신의 손을 떠난 가구에 굳이 집착하지 않는다. “재활용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근본적으로 지속 가능한 것이고, 시간과 시대가 필요를 정해주는 거죠. 특정 시간대의 기대를 통해 다시 새로운 용도가 생기는 거예요.”

 


이 같은 작업을 레트로민트는 사회적 디자인의 일환이라고 여긴다. 동시에 시대적 과제라고 생각한다. 자원은 유한하다. 그러니 제한된 재료 안에서 제품의 잠재적인 속성을 파악하는 동시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전과 다른 시각에서 재해석해 새로운 가치의 의미를 담아내는 것이 현대 디자이너의 기본 소임이라는 것이다.

레트로민트의 작업은 끝났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그들이 재구성한 테이블을 누군가 다시 해체한다면, 기둥은 스탠딩 옷걸이가 될 수 있고 상판은 장의 일부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 서랍장과 조명의 한 부분이 만나 의자가 되고, 문틀과 책상다리가 만나 테이블이 될 수 있다. 해석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촉각이 살아있는 한 가구는 영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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