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드마인드> 클로제와 세콰이어 나무에게 배운다
육상수 칼럼니스트
ssyouk@woodplanet.co.kr | 2025-02-11 22:17:09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이라는 시에 등장하는 구절입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 뼘이라고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미국 서부해안에는 세콰이어(sequoia) 나무의 자생지입니다. 성장요건이 좋지 않습니다. 연간 강수량이 2500mm 이상 되는 다습지대이며, 강풍이 자주 불어 생육에 지장을 불러 옵니다. 그래서 400년을 두고 천천히 자라 80m에 이르나 결코 저 혼자 웃자라는 법은 없습니다. 또 뿌리가 얕아서 바람에 꺾일 것 같은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나 쉽사리 날아가지 않습니다. 이유는 혼자 자라지 않고 꼭 여럿이 숲을 이루고, 얕은 뿌리지만 서로 단단하게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란 세콰이어는 최대 2200년 된 수령도 있었다하니 그 강인한 생명력의 비결이 주목받는 것은 당연한 일로 보입니다.
여러분은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서 최다골 기록을 갱신한 클라제 선수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는 19살에 이르러 독일 7부리그 블라우바흐 축구팀에서 아마추어 선수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의 직업은 목수였습니다. 부모의 권유를 거역할 수 없었던 클로제는 주간에는 목수로 살고, 야간에는 훈련장에서 연습벌레로 사는 힘든 생활을 22살 때까지 이어갑니다. 그리고 36살에 이르러 월드컵 통산 16골, 최다승 16승, 최다경기 출장 11경기라는 세계 축구사에 길이 남을 전설이 되었습니다.
사실 클로제는 폴란드 이민자 부모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피는 폴란드의 것입니다. 폴란드와 독일의 관계를 설명하자면 한국과 일본의 관계와 다름없습니다. 그런 그가 독일 국가대표팀으로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우승까지 이끌었다는 점은 많은 부분을 시사합니다. 독일 축구는 세계 최고의 팀워크를 완성했으며, 뢰브 감독은 최대한 많은 선수가 경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며 이들의 조화를 응원했습니다. 클로제는 언론과의 인터뷰 기회가 생길 때마다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나는 독일인도, 폴란드 인도 아니다. 나는 축구를 사랑하는 유럽인일 뿐이다."
조직이란 이런 것입니다. 남들이 불행한 사회에서 나 혼자 행복할 수는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클로제처럼, 세콰이어 나무처럼 공동의 어깨에 어깨를 걸고 진보하는 세상, 세콰이어는 엄청난 비바람을 맞으며 성장한 덕분인지 습기와 햇빛 외부노출에 가장 잘 견디는 수종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 우드플래닛.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