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오래된 미래: 2225년 미래에서 온 초대장>...감각과 존재를 되묻는 '건축적 미래'에 대한 사유

김한슬 리포터

woodplanet@naver.com | 2025-06-25 22:41:36

진짜 새로운 것은 가장 오래된 것 속에 잠들어 있다. 이 자명한 문장이 이번 전시의 중심에 조용히 놓여 있다. 전시 《오래된 미래 – 2225년에서 온 초대장》은 이탈리아 브랜드 Matteo Brioni의 'Raw Earth'를 매개로 삼아, 인간 존재의 원초적 감각과 미래의 건축을 묻는다. 그러나 이 전시가 말하는 '미래'는 기술 발전의 시간 선을 따라 나아가는 미래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오래된 감각을 통해 다시 짓는 미래다.

인간은 흙 위에 삶을 짓고, 음식을 재배하고, 집을 세우며 문명을 일구어왔다. 흙은 늘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었지만, 동시에 문명이 진보할수록 가장 빠르게 잊혀진 재료였다. 이제 흙은 과거의 소재가 아니라, 감각의 기원으로 다시 소환된다. 흙이라는 가장 오래된 재료로 부터 감각적 미래의 존재 방식을 상상하고 질문하며, “당신은 어떤 감정으로 미래를 짓고 있습니까?”에 대한 응답을 따라 들어가 본다.  

 

▲ 신원동 작가의 달항아리


전시는 크게 네 개의 층위로 감각의 여정을 설계한다. 1층은 흙의 본질을 체험하는 공간이다. 거대한 건축물 안에서 관객은 흙의 본질을 느끼며 태초의 숨을 쉬어본다. 공간 속에 자리 잡은 신원동 작가의 달항아리는 덜어낼 만큼 덜어낸 비움의 형태로, 흙이 지닌 순수한 숨결을 환기시킨다. 달항아리는 시간이 빚은 숨결을 머금으며, 관람자를 가장 원초적인 공간으로 초대한다.

 

▲ 레오킴의 흙 작업


2층에 들어서면 레오킴 작가의 반복적인 쌓기 작업이 기다린다. 흙을 반복해 쌓아가는 행위는 시간의 흐름, 자연의 리듬, 감각의 층위를 한 겹씩 드러낸다. 이는 기억과 감각이 공존하는 미완의 지층을 표현하며, 금속 반사면 위에 비친 그 쌓기의 흔적은 단순한 조형이 아닌, 생성 중인 사유의 층이다. 형태는 아직 완결되지 않았고, 미래 역시 결정된 정답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로서 관람객들은 흙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통한 흙의 기억이 어디서 비롯되고 어디로 향하는지를 사유하게 된다. 

 

▲ 정우원 작가의 미러 작업
3층으로 올라가면 정우원 작가의 감각적 실험이 전면으로 확장된다. 빛, 진동, 미러를 활용한 그의 설치는 관람자의 몸짓과 호흡에 반응하며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숨을 쉰다. 12개의 미러들은 우리가 느껴보지 못한 차원의 문을 열어, 익숙한 물질이 낯선 방식으로 변형되고, 감각의 경계가 무너짐을 경험하게 한다. 시각을 넘어 청각, 촉각까지 확장된 이 공간은 건축이 단순히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라, 감정과 존재의 호흡일 수 있음을 상상하게 만든다. 느껴보지 못한 감각의 미래를 마주하며 다음 층으로 발을 옮긴다.

그리고 마지막 4층, 우리는 긴 테이블 위에 놓인 흙 앞에 조용히 앉는다. 인간이 아무 도구도, 언어도 없이 손으로 세계를 이해하던 시간으로 돌아가 처음의 순간을 떠올린다. 신원동 작가의 깨진 접시, 레오킴 작가의 소나무, 정우원 작가의 스틸 얼라이브(Still Alive)가 테이블 위에 놓여있고, 관객은 조용한 테이블에서 흙이 이제껏 가지고 온 기억들을 마주하며 인간과 자연, 과거와 미래의 감각이 다시 피어나는 원초의 순간을 느낀다.

이번 전시는 결국 답한다. 오래된 감정으로 미래를 지어야 한다고. 흙은 단지 과거를 소환하는 재료가 아니며, 이미 존재하는 또 다른 미래의 시작점이다. 이 전시가 흙을 통해 말하는 미래란, 수직으로 치닫는 발전의 시간 선위가 아니라, 우리가 잊고 살아온 감각의 깊은 층위 안에 잠들어 있는 가능성이다. 이 조용한 감각 실험은 바로 그 가능성을 깨우는 작은 초대장이다.

흙을 맛보라, 자연을 맛보라, 과거를 맛보고 미래를 음미하라. 그렇게 감각적 미래를 건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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