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단지 자연을 느낄 공간이 필요할 뿐, 트리하우스
트리하우스의 가치와 의미
자연 건축의 선물
자연의 디자인
오예슬 기자
woodeditor3@woodplanet.co.kr | 2022-11-08 22:58:58
자신만의 작은 실험실을 좋아했던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어른이 되어 트리하우스를 짓는 건축가가 되었다. 트리하우스 전문 업체인 독일 바움라움 건축스튜디오 대표 안드레아스 웨닝. 그는 트리하우스가 나무에 건네는 대화 그 자체여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과 나누는 대화도 디자인이다
오랫동안 트리하우스를 짓고 싶다는 열망을 품어 온 베닝에게 어느 날 기회가 찾아왔다. 독일 브레멘에서 30㎞ 떨어진 바슘이라는 지역에 사는 한 마구간 주인이 트리하우스를 지어달라고 요청해 왔던 것이다. 두 그루의 너도밤나무 사이에 지어진 이 트리하우스는 배와 오두막 중간 형태를 지닌 재미있는 모양으로 설계되었다.
테라스는 마치 배의 갑판을 떠올리게 한다. 마침내 베닝은 들뜬 마구간 주인의 기대에 십분 부응하는 다용도 트리하우스를 완성했다. 친구들과 아이들이 긴장을 풀고 편히 쉴 수 있는 안락한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이때가 2002년이었고, 바움라움은 그 후 1년 뒤 세워졌다. 현재 바움라움에는 베닝을 포함해 10여 명 정도가 근무하고 있다. 이중 2명이 트리하우스 설계를, 4~8명이 건축을 담당한다. 이 단출한 인원이 꾸려가는 바움라움의 일상은 일반 건축사무소와 별반 다를 게 없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고, 건축 현장에 나가 작업을 수행한다. 하지만 나무 위의 집, 자연 속에 집을 짓는 게 그들의 주된 업무인 만큼 일반 건축소와 다른 점은 분명 있을 것이다.
“자연환경과 건축가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를 표현하고자 한다. 둘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화야말로 건축에 있어서 디자인의 새로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베닝은 건축가와 자연 간의 대화를 디자인의 한 요소로 생각한다. 그는 이 대화를 트리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이 누리는 삶의 즐거움과 나무 사이에서 움트는 어떤 느낌으로 정의한다. 때문에 트리하우스가 세워질 주변 환경을 조사하고 파악하는 것이 바움라움의 첫 번째 작업 단계이다.
그 후 사전 디자인을 하고, 구조 공학자가 트리하우스 설계 구조를 점검한다. 나무 전문가의 나무 점검 과정도 빠질 수 없다. 이러한 작업을 마치면 고객 상담을 통해 고객이 원하는 것을 트리하우스 콘셉트에 녹여낸다. 베닝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바로 고객과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것이다.
트리하우스는 모던한 공간
바움라움의 사업은 현재 순조로운 편이다.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바움라움을 찾는 고객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트리하우스가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트리하우스는 그저 아이들을 위한 작은 놀이터일 뿐이고, 어른들은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지루한 공간이라 여긴다. 하지만 베닝에게 트리하우스는 너무도 모던한 공간이다.
“트리하우스는 특정 목적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휴식과 명상의 공간이 될 수도 있고, 만남의 장소도 될 수 있다. 또 아이들에겐 놀이터가 되고, 호텔과 오락 시설로 이용할 수 있어서 비즈니스 사업으로도 손색이 없다.”
베닝이 짓는 트리하우스는 전기와 수도 시설, 창고까지 갖춘 완전체의 공간이다. 특히 어른을 위한 생활공간형 트리하우스라면 집의 전체적인 구조와 디테일, 건축 재료, 주변 환경에 맞는 지역적 디자인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어린이를 위한 집이라면 안전에 각별히 신경 쓴다. 아이들의 놀이를 방해할 수 있는 쓸 데 없는 공간을 줄이고, 지속적인 유지가 필요한 재료도 피해야 한다.
한마디로 땅 위에 짓는 집만큼 손이 많이 간다는 얘기다. 특히 트리하우스는 힘의 균형과 집이 올라갈 나무의 구조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인공적인 건물인 트리하우스에서 자연과의 긴장감을 생성하는 지점을 찾는 것이다. 완성된 트리하우스를 트럭으로 옮겨 테라스로 올리는 그 순간까지도 베닝은 자연과 기분 좋은 긴장 관계를 유지한다.
땅과 하늘을 매개하는 공간
베닝에게 나무는 커다란 빛에 비견된다. 강하고 크며 아름답고 때로는 오래된 그 무엇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래된 상처를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풀어내며, 계절 따라 변화하는 모습은 그 어떤 초목보다 뚜렷하다고 말한다.
“트리하우스는 땅에 있는 것도 아니고,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닌 땅과 하늘 사이에 있는 공간이다. 이 사이의 공간에서 우리는 계절과 동식물의 변화를 직접,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할 수 있다.”
그는 나무가 지닌 건강함과 미래의 성장 가능성, 역동적인 움직임이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트리하우스를 지을 때 나무가 손상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 어떤 부지에서도 나무를 베지 않고 항상 나무 전문가와 동행해 나무의 건강을 살핀다.
트리하우스를 나무에 고정할 때 볼트나 못을 사용하지 않고 섬유 벨트나 로프를 쓴다. 그는 “비록 트리하우스가 지구 환경을 살리는 큰 역할을 하지는 못하지만, 언제나 자연을 존중하고 보호하려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바움라움에서 짓는 트리하우스의 주재료는 나무이다. 작업에 적합한 나무를 콕 집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종류의 나무를 사용한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무는 좋지 않다. 또 빨리 자란 나무도 트리하우스의 재료로 맞지 않다. 트리하우스에 쓰이기 적합한 나무는 본래 성질이 외부로부터 오는 힘에 강한 낙엽송이나 오크, 삼나무, 열처리 목재, 코팅 목재를 사용한다.
금속이나 합성 재료, 섬유도 좋은 재료인데 트리하우스가 약간 무거울 경우엔 트리하우스 하단을 받치기 위해 금속 기둥(stilt)을 쓰기도 한다. 나무는 그에게 특별히 이점을 주지도 제한을 주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나무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은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트리하우스의 한계를 뛰어넘길 좋아한다. 한 브라질 고객을 위해선 인터넷은 물론 최신식 비디오·오디오 시스템을 갖춘 트리하우스를 선보였고, 아이들과 송어 낚시를 하길 원하는 오스트리아 고객을 위해선 트리하우스 밑 작은 개울에서 낚시를 할 수 있도록 특별 테라스를 설치했다. 골프광인 고객을 위해 골프를 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일도 있다.
“제한이 있다면 오직 까다로운 건축법과 비용이다. 이것만 아니라면 뭐든지 지을 수 있다.”
자연에 대한 로맨틱한 욕망
베닝은 트리하우스를 갖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로맨틱한 욕망으로 이해한다. 인간과 자연이 지극히 가까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트리하우스는 낭만의 공간, 고요의 공간, 집중의 공간, 가족과 친구가 함께하는 안락한 공간이 될 수 있다. 너무나 산업화된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트리하우스는 한 템포 쉬어갈 수 있는 공간임을 그는 역설한다. 그가 트리하우스에 입문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당부하는 것도 한결같다.
“우선 몸의 힘을 빼고 당신의 모든 감각 기관을 깨워라. 그리고 한 템포 쉬어갔으면 한다.”
그는 트리하우스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간과하지 않는다. 트리하우스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는 모던한 상품임을 강조하지만 한 가지 전제가 있다. ‘자연을 바탕으로 한’ 상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속가능성을 표방하는 사회 움직임에 발맞춰 지속 가능한 건축 재료를 사용하고 땅을 분별력 있게 이용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더 나아가서는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연을 바탕으로 한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싶다는 그다. 점차 많은 사람들이 자연이 주는 건강함과 균형, 활발한 리듬, 그리고 아름다움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한 만큼 온전히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트리하우스를 계속 짓는 것이 그의 꿈이다.
현재 그는 숙박용 트리하우스 호텔과 트리하우스 리조트 작업에 한창이다. 이 외에도 이탈리아의 뷰티 스파와 전시회 콘셉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 다양한 지역을 위해 트리하우스를 짓는 그가 개인적으로 함께 일하고 싶은 고객은 누구이고, 작업해 보고 싶은 지역은 어디일까?
“캘리포니아에 레드우드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 또는 남다른 취향과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아랍 왕이라면 좋겠다. 정글이 있는 열대 지역에 트리하우스를 짓고 싶기도 하다.”
이 정도의 야망을 가진 건축가라면 지금까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디자인을 실험해 볼 수도 있을 텐데 그의 생각은 확고하다.
“바움라움은 자연과 도시를 넘나들면서 작은 공간을 만들어가는 디자인 스튜디오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수면 아래나 얼음 혹은 사막 위, 초고층 건물 지붕 위에 트리하우스를 짓는 것은 우리 철학과 맞지 않다.”
그에게 트리하우스 건축이란 자신에게 선물하는 충만한 경험이자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거창한 트리하우스는 바움라움에, 그리고 베닝에게도 어울리지 않는다. 바움라움의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서 말하고 있듯 그가 하는 일은 “나무 위에 작은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모험과 한 박자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의 철학은 소박하지만, 어린이와 어른에게 낙원을 보여주고자 하는 그의 꿈은 결코 소박하지 않다.
안드레아스 베닝(Andreas Wenning) 2003년 독일 브레멘에 바움라움(Baumraum) 건축스튜디오를 설립한 후 트리하우스를 전문적으로 짓고 있다. 원래 캐비닛 전문 제작자였던 그는 6년 동안 독일과 호주의 여러 회사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았다. 현재 바움라움에는 10여 명의 직원이 트리하우스 설계와 건축을 맡아 진행하고 있으며, 건축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외에도 구조공학자 및 나무 전문가와 협업하여 트리하우스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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