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카메라 ONDU... 사각의 프레임 밖으로
김은지 기자
woodeditor4@woodplanet.co.kr | 2026-09-26 23:03:51
#1
겨울의 시침과 봄의 분침이 서로 맞물리던 날, 여행을 떠났다. 바람의 결이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고, 길을 나서는 보폭은 평소보다 컸다. 떠나는 것이 목적이었던 이번 여행을 위해 챙긴 거라곤 핀홀 카메라와 살짝 무게감이 느껴지는 배낭뿐. 출발 전 단단히 묶은 운동화 끈이 오전 내내 풀리지 않아 여행이 순탄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처음 다다른 곳은 인적이 드문 강가였다. 유속이 빠른 강물에 정오의 햇살이 자잘하게 부서졌다. 친구들은 이번 여행에 대해 별다른 이유를 묻지 않았다. 다들 가볍게 말했으며, 또 말에 담긴 진심보다 더 쉽게 증발할 것 같은 웃음만이 돌아왔을 뿐이었다. 그때 다시 한 번 다짐했는지도 모른다. 여행이 아닌 여정이 되어도 괜찮다고. 저마다의 뒷모습을 배경으로 들꽃과 풀이 바람에 자꾸만 길어지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따금 그늘이 드리워진 강물은 허공을 헤매는 시선을 오롯이 받아주었다. 강물의 물결은 다시금 정적인 풍경처럼 느껴진다.
여행이 늘 새로운 출발이나 도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호기심이나 설렘이 없어도, 여행은 여행이다.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고, 그 어떤 것도 궁금해 하지 않은 채로 떠난 여행은 그냥 떠나왔다는 사실만으로 일상의 속도를 무시할 수 있었다.
#2
지난 여름의 햇살을 어떻게 견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더위를 많이 타기 때문에 손수건을 갖고 다녔다. 피부가 익다 못해 녹아내릴 것 같을 때마다 커피숍에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시원한 음료를 넘기는 순간만큼은 이번 여름은 꽤 견딜만하다고 잠시 자위할 수 있었다.
귓전을 때리던 매미 소리마저 잦아들었다. 무더위가 끝났음에도 자꾸 카페를 찾았다. 미처 해소하지 못한 갈증이 있는지 자꾸만 얼음이 가득 든 음료를 시켰다. 하지만 여행을 나선 순간부터는 물을 찾지 않았다. 문득 공기가 달다고 생각했다.
#3
연인과 떠났던 휴양지, 친구와 함께 놀러 갔던 별장을 떠올렸다. 모두 들뜬 마음으로 여행용 가방에 많은 옷가지와 전자기기 충전기를 챙겨 넣었다. 여행을 떠났지만 여전히 손에는 휴대전화가 들려 있었다.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다가도 자신의 일부를 어딘가에 두고 온 사람처럼 휴대전화를 자꾸만 확인했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여행은 ‘남는 것’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진 곳에 가고, 재밌는 시간을 보내는 게 여행의 목적이었다. 일상에서는 쉽게 허락되지 않던 것들을 한꺼번에 몰아치우듯이 시간을 보냈다. 여행이 끝나면 몰아 쓴 일기장을 뒤적이는 심정으로 우울한 일상을 떫게 넘겼다.
#4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서서히 서로 붉게 녹아들고 있는 하늘과 강물. 기다리지 않아도 저녁은 찾아온다. 카메라를 꺼내 들고 풍경을 바라봤다. 따로 셔터를 누르거나 화면으로 색감을 확인하지 않았다. 그냥 처음 본 느낌을 안고, 조리개를 열었다가 닫는 순간까지 하늘을 응시했다.
막연한 기다림은 지루함보단 두려움에 가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작 어떤 일을 기약 없이 기다려본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기다림은 가혹한 일이었다. 이번 여행은 일종의 기다림이 될지도 모른다. 자꾸만 낮아지는 하늘은 분명한 색감으로 빠르게 지나갔고, 스쳐 가는 이들의 얼굴은 잔상으로 맺히기도 전에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발걸음을 옮겼다. 평범한 평일의 낮 풍경이 생경했다. 미묘하게 놓쳐버렸던 것들을 떠올리다가 다시 올려다본 하늘. 하늘은 어디서나 하늘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이 낯선 도시의 골목을 조금씩 더 깊게 파고든다. 골목골목을 헤집으며 들어가도 불러 세우는 사람 하나 없다. 아무도 배낭을 메고 여기저기 서성이는 이방인을 뚫어지게 쳐다보지 않는다. 그동안 너무 많은 시선을 달고 있었는지 한산한 거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편하게 느껴진다. 이번 여행에서는 기다리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5
자신도 모르게 맺어진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염증을 다시금 생각나게 만드는, 조금은 부담스러운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그동안 놓쳤던 것들을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분주하게 돌아가던 내 안의 시간은 조금 느슨한 시곗바늘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겨울과 봄이 한데 뒤섞이는 데서 오는 미묘한 냄새까지도. 생각해보면 이런 것들은 다시 일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지나가도록 잠시 견디는 방법을 배웠다. 사물의 검은 이름들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자신을 기다리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사각의 프레임은 이 모든 여정을 기록할 것이다. 그것도 아주 느리게 또 늘 함께 해왔었지만 때때로 놓치고 있던 것들에 대해서. 이제 여행이 막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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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DU는 렌즈 없이 사진 촬영이 가능한 나무로 만든 핀홀 카메라다. 핀홀카메라는 0.2㎜ 정도의 구멍으로 빛이 들어갈 수 있도록 잠시 셔터를 열었다가 닫으면 필름지에 상이 맺히면서 촬영된다.
ONDU의 제작자인 엘비스 할릴로빅(Elvis Halilovic)은 디지털 카메라와 달리 예상치 못한 결과야말로 핀홀 카메라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ONDU 핀홀 카메라의 가장 기본형인 135 Pocket과 Panoramic은 35㎜ 필름을 사용할 수있다. ONDU 핀홀 카메라의종류는 총 10가지로, 크기에 따라서 사용할 수 있는 필름의 종류도 달라진다.
ONDU는 다른 카메라와 달리 담고 싶은 풍경을 직접 두 눈에 담도록 허락한다. 그렇게 마주한 풍경은 핀홀 카메라만의 새로운 색감과 분위기로 당신을 물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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