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건축은 거만하고 독선적이다”... 살아있는 전설, 건축가 ‘페터 춤토르’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는 말했다. “건축이 거만해졌다. 독선과 횡포를 일삼는다. 건축에는 항상 모성애적 특성이 있다. 늘 보호해 준다. 훈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해심이 많고 도움을 준다. 내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믿을 수 없을 만큼의 기쁨을 준다.”
유재형 기자
woodeditor@woodplanet.co.kr | 2022-09-12 23:23:23
페터 춤토르에게 가는 길은 가깝고도 멀다. 건축가가 가지는 최고의 대중적 영예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하고도 은둔자로 불리는 그의 작품은 예술적 성취라는 바탕 위에 선 거대한 생각을 말해주고 있다. 취재 차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에 대한 질의를 이어가는 중 30대 후반의 한 젊은 건축가가 그와 연관한 일화를 소개했다.
“그때가 건축사사무소에 막 신입으로 들어왔을 때였을 겁니다. 선배의 말만 듣고, 피터 춤토로 작품집을 구하려 시내 대형서점에 나갔어요. 서점 여직원에게 물으니 이미 오래전 절판되어 찾을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어요. 이거 낭패다 싶어 해외 인터넷 서점을 무작정 뒤지기 시작했어요. 기껏해야 20~30만 원 하겠지 생각했는데 아마존(Amazon.com) 사이트에서 확인한 거래가는 무려 2500달러에 달했습니다. 말문이 박혔죠. 무슨 대단한 고서적도 아닌 것이 웬만한 월급쟁이 한 달 치에 육박하다니. 그런데 더 큰 낭패감은 책이 배송되고 난 후 처음 그의 작품을 접했을 때였습니다. 소박하지만 단단하고 묵직한 것이 겸손하면서도 배짱이 넘치는 작품으로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한 마디로 ‘넘사벽’, 자신만만했던 나에게 페터 춤토르는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니 더 열심히 할 수 밖에요(웃음).”
“공감할 수 없는 건물을 짓지 않는다”
춤토르는 법정 스님의 유언이 그러했듯이 더는 작품집을 찍지 않겠다며 절판을 선언했다. 이후 그의 유명세를 좇아 책 가격은 무려 10배 이상 뛰었고, 이 일은 그의 작품을 교재로 삼길 원했던 전 세계 건축학도의 원성을 사기에 충분했다. 스스로 세상과 등진 ‘알프스 산맥의 은자’가 되기로 작정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사람들은 수도사, 사도, 마법사, 신비로운 사람, 정신적 지도자 따위의 또 다른 별칭을 붙이며 그의 성격을 단정했다.
그러나 건축평론가 한노 라우테르베르크와의 대화에서 페터 춤토르는 “어리둥절해하며 지켜볼 뿐이다”라며 자신에 대한 평가가 왜곡된 것임을 지적했다. “하루에도 몇 차례 학생이나 동료 건축가, 잡지사 기자, 고객들로부터 크고 작은 의뢰나 청탁을 받습니다. 조용히 일을 하고자 대부분 거절한 것이 일종의 전설을 만들어낸 셈이죠. 나를 세상과 단절한 채 TV도 없이 금욕의 생활을 즐기는 영적인 부류로 오해한 것 같습니다.”
그에게 타협을 모르는 투사라는 이미지를 심어 준 계기는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 건립 중단 사건이었다. 베를린시에서 나치 시절의 기록을 전시할 박물관을 춤토르에게 의뢰했다. 건축 부서 담당자는 부족한 예산은 나중에 승인 날 것이니 먼저 건축에 착수하라고 했으나 약속과는 달리 지원은 끊겼고, 그만 춤토르는 현장을 떠나 버렸다.
하지만, 예산은 겉보기일 뿐 속사정은 따로 있었다. 의뢰인과의 의견 충돌이었다. 춤토르는 “역사적 현장을 기록하는 건축물은 당시의 일을 기억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고요하고 평화로워야 한다.”라고 여겼다. 이른바 배후에 깔린 중용의 의미를 뜻한다. “역사적 상징성을 배제한 건물을 지으면 의미의 진공상태가 만들어지고 건물은 그 자체로 상징성을 부여받는다.”
베를린 시는 춤토르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직접적으로 상처가 드러나는 건물을 원했다. 그래서 쉬운 방식으로 역사적 교훈을 드러내거나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의 등고선’이라는 테러의 토포그래피 의미 그대로 화나는 건물을 짓고 싶어 했다.
그는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창문틀과 난간 마무리 등 세목 하나하나까지 살핀다. 건축주의 취지에 공감할 수 없는 작업은 절대 맡지 않는다.”라고 말할 정도로 주관이 분명한 건축가였다. 까다로운 성격으로 비칠 수 있으나 건축가의 자존심을 강조했기에 이 일은 그를 응원하는 시민과 건축가들에 의해 전설로 남았다.
자존심의 영역은 건축가의 책임감을 포함하고 있다. 그는 평소 “건축주의 간섭이나 건축 규제는 변명에 불과하며, 모든 것은 건축가의 책임이다”라고 말한 대목에서도 훌륭한 건축가가 지녀야 할 덕목을 드러냈다. 이 일이 있은 후 콘크리트 골자마저 2004년 철거되었다. 베를린 시는 다시 한 번 현상 공모를 내걸었으며, 2006년 우르술라 빌름스(Ursula Wilms)의 디자인이 채택됐다.
존재를 외면하지 않는 ‘포용의 건축’
페터 춤토르는 할델슈타인이라는 스위스 산간 마을에서 자신이 설계한 다른 건물들처럼 간소한 구조의 목조건축을 짓고 생활한다. 1943년생인 춤토르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평생 가구 목수의 길을 걷기를 희망했으나, 1979년 건축스튜디오를 설립하고 건축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발스에 있는 온천 단지는 알프스 산 중턱에 숨어 있는 데 편마암을 켜로 쌓아 건물을 완공시켰다. 완공된 지 2년 만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인구 1000명의 소도시가 유명 휴양지가 되는 데 크게 공헌했다. 또한, 브레겐츠 미술관과 쾰른의 콜롬바 미술관 등의 대표적 작품을 완성했다.
2009년에 이르러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며 당대 최고의 건축가였던 필립 존슨, 루이스 바라간, 리처드 마이어, 프랭크 게리, 알바로 시자, 안도 다다오, 렌조 피아노, 노먼 포스터, 렘 쿨하스, 자하 하디드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유명세에서 뒤졌던 춤토르의 수상은 당시 이변으로 받아들여졌다. 30년 넘게 작업을 하면서 추종자가 생기긴 했지만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건축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수상은 국적과 인종, 종교, 사상을 떠나 혁신과 철학적 사고 바탕에 이바지한 건축가에게 프리츠커상이 수여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김주연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건축대학 교수는 페터 춤토르의 작품세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건축의 본질적인 가치를 연구해온 춤토르는 ‘형태와 의미의 낭비’에 대항하여 ‘매우 강인하며 시대를 초월하는 존재감을 지닌 건축’을 완성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건축의 엄격한 사고를 시적인 차원, 영적인 차원’으로 결합시켰다. 지역성과 물질성에 민감한 건축가의 접근법은 우리 건축 문화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춤토르의 대표작인 <클라우스 형제 예배당(Bruder Klaus Chapel)>(2006)은 새로운 감각적 경험의 세계를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한 농부의 제안을 받아들여 스위스의 성인을 기념하는 건물 내부는 112개의 나무 텐트를 거푸집으로 세운 후 콘크리트를 부어 만들었다. 3주간 불로 내부의 나무 거푸집을 제거해내고 탄생한 검고 거친 공간은 어둡고 고요하면서도 원시성을 내재한 성소로 탄생했다.
이 과정에서 생긴 나뭇결과 탄내, 거무스름한 옹이와 껍질 흔적이 그대로 남긴 새로운 건축 스타일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방문객들은 원시적이지만 강렬한 존재감, 빛이 빚어내는 현상으로 건축 자체의 의미와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되며, 중세의 은둔자들이 침묵 속에서 기도를 올렸던 성소의 분위기를 체험하게 된다. <딸과 떠나는 건축기행> 시리즈로 유명한 이용재 건축평론가는 이곳을 방문해 “자연환경과 재료의 특성을 그대로 살리는 게 건축이다.”라는 전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의 저서 를 살펴보면, 춤토르 건축의 특징인 ‘체감’에 대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특정적 시각인 ‘View’에 집착하지 않으며 그 장소의 특성과 그곳에서의 느낌과 경험, 이면의 의미를 중시하는 그의 건축세계는 “어떤 곳에 지어지는 건물은 하나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라는 관점에서 볼 때 철학자 하이데거가 주장한 ‘존재적 건축’과도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예순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건축계의 중심이 된 춤토르는 LA 카운티미술관 개축 작업을 이어갔다. 미국 뉴욕 프랫인스티튜트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공부한 그는 “현대 건축이 거만하고 독선적이다”라고 비판하고, 오랫동안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서 소규모 스튜디오 작업을 고집해왔다. 대서양을 건너 미국 외출 나선 춤토르가 선보일 작가적 자존심은 어떤 결말을 맺을지 세계 최대 건축 시장 미국은 긴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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