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로 가족을 만드는 사람... 분수를 알고 한가로운 마음으로 살다

강진희

| 2025-11-30 23:29:39

 

개명 신청은 매년 늘어난다. 작명소를 찾는 사람도 여전히 많다. 많은 이들의 이름에 대한 집착은 단지 미학적 관점을 넘어 작명이 사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려한 터이다. ‘이름대로 산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작명에 따른 운명론은 차치한다 해도 자꾸 불리는 이름의 뜻은 자꾸 되새김질 하게 되고, 그러니 이름붙임은 신중하게 된다.

자그마한 저수지와 야트막한 산을 둔 전북 정읍시 소성면에는 자한재(自閑齋)라 이름붙인 유명한 집이 있다. 자한재는 집주인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백운경 작가가 직접 짓고, 한학자(漢學者)에게 작명 받은 나무집으로 ‘자신의 분수를 알고 살면 마음이 한가롭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러한 거창한 이름의 집 주인은 실제로 어떠한 사람일지, 집 이름에 어울리는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했다. 

 

 

 

백운경 작가는 원래 광고쟁이였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유명한 광고 회사를 다닌 지 십년이 되던 해, 그는 입사했던 때의 다짐대로 직장에서 나왔고, 서울을 떠났다.

“고향이 충남 부여예요. 학창시절 내내 시골 생활을 했었고 서울 생활을 하면서도 언제나 시골이 그리웠습니다. 직장에 처음 들어가면서 십 년만 열심히 일하고, 내 일을 찾아야겠다고 맘먹었었죠. 특히 그만둔 해엔 차장진급도 했던 터라 회사에서나 지인들도 모두 말리더라고요. 다행히 가족들은 절 믿어주었습니다. 아내가 교사인데, 마침 정읍 부근으로 발령을 받게 되어서 함께 내려오게 되었지요.” 

 

처음 온 지역이라 낯설 법도 하건만 그는 한눈에 정읍을 사랑하게 되었다. 깨끗한 자연, 넓은 작업 공간, 느긋한 생활 방식은 그가 서울생활을 하는 기간 내내 그리던 것이었다. 가족 간의 관계도 더욱 공고해졌다. 어린 시절부터 흙을 밟고 나무를 만지던 그의 아들은 도시 아이들보다 훨씬 정서적으로 평온해졌다. 부근에 다른 유흥거리가 없기에 자연히 가족들의 대화도 늘어났고 깊어졌다.

 

 

귀촌 후에는 사보나 신문, 단행본 등의 일러스트 등의 외주작업을 했다. 손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컴퓨터 작업을 하기도, 나무 돌 지점토 등의 다양한 재료로 작품을 만들어 사진을 찍기도 했다. 광고제작을 했던 만큼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작품들을 정리하다가 정체성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다양한 작업을 하면서 저만의 색이 없어지는 게 아닐까 싶어졌어요. ‘백운경’ 했을 때 떠오르는 어떤 색깔이 없다는 느낌이었어요. 정체성이 없는 거죠. 그러면서 작업 활동을 멈추고 좀 방황을 했습니다.”

방황하던 중 그는 가족들을 위한 집을 짓기 시작했다. 마련한 집터에 있던 오래된 오두막을 헐고 집 지을 나무를 찾던 중 좋은 목재와 목수를 한 번에 만나는 행운도 찾아왔다. 집 중앙에 높게 솟은 500년 된 금강송은 자한재를 예정에 없던 2층집으로 만들어 주었고, 이 금강송으로 인해 자한재는 특별한 매력을 획득했다. 그가 처음 지은 집 자한재는 어느새 정읍의 명물이 되었고, 덕분에 방송출연도 했다. 손수 집을 지은 2년간의 경험은 단순히 삶의 보금자리를 마련한 데 그치지 않았다. 백 작가는 미처 몰랐던 나무의 매력에 풍덩 빠져들었다. 자한재의 완공과 함께 백 작가의 정체성도 완성되었다.

이후 그는 나무 작품에 매진했다. 다양한 수종과 다양한 무늬의 나무들은 볼수록 매력적이었다. 그 결과가 <나무가족>이다.

  

 

“나무의 결과 질감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작품에서는 색감이 큰 역할을 한다고 믿습니다. 제가 디자이너 출신이라 더 그럴 지도요. 특히 나무가족은 가족 모두를 위한 작품이라 다양한 색상이 아이들의 정서발달에도 도움을 주지 않을까 생각해요.”

가족이라는 주제를 잡고 시작하지 않은 만큼, 앞으로의 주제도 정해놓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 이야기는 계속 해나갈 것 같다. 나무야 말로 가족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무의 따스한 색감, 부드럽고 매끈한 촉감, 맑고 깊은 향내는 그 자체로 자연이자 가족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만 봐도 그렇잖아요.”

그래도 새로운 계획은 없느냐고 묻자, 백운경 작가는 가족 일러스트레이션을 가구에 접목시키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살짝 털어놓는다. 그래, ‘나무가족’이 둘러싸고 있는 의자 위에 앉는 느낌은 분명 따스할 것 같다. 自閑齋에 살고 있는 그는 아무래도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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