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의 이해-2> 한국 현대공예의 구조적 이해

칼럼 / 최범 / 2021-09-29 16: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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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공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사적 수준과 한국사적 수준에서의 접근이 병행
- 공예의 예술화(fine art-ification)와 산업화(industrialization) 변용
- 공예의 근대화와 문화적 타자화
- 현대공예가 회복하는 데는 '공예라는 차원' 그 자체가 해법
▲ 2021 청주공예비엔날레 초대국가관  전경


한국 현대공예의 보편성과 특수성

한국 현대공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공예라는 말이 연루되어 있는 여러 겹의 의미 구조를 헤치고 들여다보는 작업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공예는 전근대의 수공업적 생산방식의 산물이다. 그런데 공예는 근대의 산업화 과정에서 커다란 변용을 겪는다. 따라서 현대공예에 대한 이해는 이러한 공예의 역사적 변용을 참조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현대공예 이해의 첫걸음이 공예에 대한 통시적 접근이어야 함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현대공예의 경우에는 이러한 통시적 접근이 이중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한국 현대공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사적 수준과 한국사적 수준에서의 접근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한국 현대공예는 넓은 의미에서는 세계사적 수준에서의 변용의 일환이겠지만, 그러나 그와 함께, 아니 그 이상으로 한국사적 수준에서의 변용이라는 특수성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는 단지 세계사와 한국사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원론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그 둘 사이의 상호작용과 차이를 들여다보는 것이 한국 현대공예 이해에서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국 현대공예의 특수성이라면 특수성이다. 그러나 특수성이라는 것 자체가 보편성을 전제하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인 만큼, 한국 현대공예의 특수성은 현대공예의 보편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리고 특수성이란, 그러한 보편성이 특정한 조건에 투사되어 반복되는 가운데 발생하는 차이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다시 말하면 한국 현대공예의 특수성은 현대공예의 세계사적 보편성이 한국 공예에서 반복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차이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현대공예는 현대공예가 갖는 보편성의 반복의 한 형태이면서, 또 그러한 반복 가운데에서 발생한 특수성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2021 청주공예비엔날레 초대관 '물야나Mulyana_심연속으로_2021'

 

 

한국의 근대화와 공예의 변용

한국 현대공예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는 서구의 공예가 근대화 과정에서 겪은 두 가지의 변용이 이 땅에서 동시에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미술화(fine art-ification)와 산업화(industrialization)이다. 미술화란 미술의 등장으로 인해 공예가 미술의 구심력으로 빨려들어 가는 것을 말하고, 산업화란 기계생산의 대두로 인해 공예가 생산의 위기를 초래한 것을 말한다. 전자는 공예를 굴절시켰고 후자는 공예를 도태시켰다. 이 둘은 공예가 역사에서 맞은 가장 큰 변화이자 위기였다. 그러니까 현대공예는 이러한 역사적 변화를 겪으면서 한편으로는 도태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변용되면서 살아남은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현대공예에는 이러한 공예사의 변화가 무늬처럼 아로새겨져 있다. 이러한 무늬를 읽어내지 않고서 현대공예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고급문화로서의 미술은 르네상스기에 처음 등장하지만, 일단 그렇게 등장한 미술은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선사시대의 동굴벽화까지 자신의 영역으로 포섭해버린다. 이리하여 미술사(art history)라는 학문이 성립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르네상스 이전과 이후의 조형예술이 동일하다는 말은 아니다. 미술사란 말할 것도 없이, 이질적이고 단절적인 역사 속의 조형예술‘들’을 근대학문의 논리로 가지런히 엮어낸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구 미술의 관점에서 보면 선사미술은 미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동양의 전통미술도 미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미술사라는 학문은 이것들을 모두 하나의 실로 꿰어 아름다운(?) 목걸이로 만든다. 미술사(학)은 울퉁불퉁한 미술의 역사를 평평하게 만든 것일 뿐이다.

한국 근대에 등장한 미술이란 바로 이 서구 미술사에서 말하는 미술을 가리킨다. 물론 동양에도 오래 전부터 문인화와 같은, 서구의 인문학으로서의 미술에 견줄 만한 고급문화로서의 미술이 있었지만, 이는 한국 현대공예와 어떤 의미에서도 아무런 관계를 갖지 못했다. 한국 현대공예에 영향을 미친 것은 근대기에 유입된 서구 미술이었다. 그리고 서구의 경우 미술에 의한 공예의 변용보다 디자인에 의한 공예의 변용이 더욱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역시 한국 현대공예에는 해당되지 않는 내용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 현대공예는 전통공예와 현대 디자인의 연결고리가 되지 못했다.

한국 현대 디자인은 해방 이후 주로 미국을 통해서 유입되었고 1960년대의 경제 개발 이후 본격화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통공예는 민속공예와 관광기념품으로의 길을 걸었을 뿐 현대 디자인의 젖줄이 되지 못했다.1) 다시 말해서 한국의 전통공예와 현대 디자인 사이에는 조손(祖孫)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서구와 달리, 현대 디자인을 산생한 역사적·사회적 조건인 산업화는 한국 공예의 근대적 변용에 거의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것은 비주체적인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공예가 서구 디자인처럼 산업화의 충격과 마주한 것이 아니라 비켜갔기 때문인데, 비록 그 양상은 정반대지만 이것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산업화가 한국 공예에 미친 진정한 영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주석 1)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김종균, <한국의 디자인>, 안그라픽스, 2013


이러한 사실이 다시 말해주는 것은 한국 공예의 근대적 변용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미술밖에 없었다는 것이 된다. 산업화의 충격으로부터는 비켜가는 대신에 거의 전적으로 미술의 영향 하에 들어간 한국 공예, 과연 그러한 구도에서 근대적 변용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공예의 미술화’이다. 이것은 간단히 말하면 공예가 기물(器物)에서 미술품으로, 공예가가 장인에서 미술가로 바뀐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오랫동안 공예가 가져왔던 현실적 기능(생활상의 실용)을 근대화 과정에서 상실되는 대신에 미술이라는 새로운 체제 안으로 포섭된 결과이다.2) 최공호에 따르면 이러한 과정은 한성미술품제작소(1908년)에서 시작되어 조선미술전람회 공예부(1932년)에 이르러 정착된다.3)

· 주석 2최공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국 근대공예의 흐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제작 활동의 목표가 실용에서 미술공예로 바뀌어간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현대 공예사의 이해>, 재원, 1996. 12쪽

· 주석 3) 최공호, <한국 현대 공예사의 이해>, 19쪽



▲ 2021 청주공예비엔날레 '언어 주제 전시관'

공예의 미술화가 의미하는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먼저 인식의 차원에서 공예를 과거의 생활용품이 아닌 미술품으로 보게 되었다.(한성미술품제작소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따라서 공예의 경험 역시 일상생활 감각을 넘어선 예술 감상에 가까워졌다. 공예가 역시 이전의 미천한 신분인 장인을 벗어나 엘리트로서의 미술가가 되었다. 이처럼 공예의 미술화는 공예 인식과 경험, 공예가의 위상 등 공예 전반에 걸쳐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는 당연히 공예품의 형태에도 영향을 끼쳤지만 설사 공예품이 여전히 전통적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제 그것은 더 이상 이전의 의미에서의 그것이 아니다. 아울러 과거부터 있어왔던 공예의 완상적 기능4) 역시 근대의 미술 감상이라는 행태로 대체되었다고 할 수 있다.

· 주석 4) 전통공예의 완상적 기능과 현대공예의 감상적 기능은 비슷한듯하지만 그래도 구별해야 할 것 같다. 완상이든 감상이든 모두 실제적 기능이 아니라 관조적 기능이라는 점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차이에도 유념할 필요가 있는데, 완상이 개별적 경험의 형태라면 감상은 공개적 응시의 형태이고 완상이 생활 속의 행위라면 감상은 어디까지나 근대적 문화 제도 속의 행위라는 사실이다. 아무튼 전체적으로 볼 때 완상이란 전통 귀족문화의 틀 내에 놓이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근대 시민사회의 양태인 감상과는 구별되어야 할 것 같다.


아무튼 이것은 누천년의 한국 공예사에서 가히 일대 사건이자 혁명적 변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역시 근대라는 시기가 한국사에서 갖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아무튼 공예의 이러한 변용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전통적인 기능을 상실했다는 점에서는 일탈과 쇠락이요 새로운 면모와 역할을 얻었다는 점에서는 발전이다. 이 역시 한국 근대와 공예사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준별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먼저 비판적 관점을 살펴보자. 공예의 미술화를 생활 속의 쓸모 있는 기물이라는 공예의 전통적인 위상으로부터 벗어난 일탈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공예의 미술화는 공예의 상승이기는커녕 타락이다. 이것은 마치 서구 근대에서 예술의 사회적 소외에 대한 비판을 떠올리게 한다. 전통적으로 공동체 속에서 일정한 역할(주로 정치와 종교)을 담당하던 미술이 근대에 오면서 이른바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사회로부터 분리된 것에 대한 비판 말이다. 이러한 예술의 극단적인 형태가 이른바 ‘예술을 위한 예술’이다. 물론 이러한 예술의 자율성을 달리 보는 관점도 있다. 그것은 삶으로부터의 분리일 수도 있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예술이 기존의 권력에 봉사하는 구조로부터 해방됨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역시 기존의 삶의 구조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서 근대미술의 자율성에 대한 판단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면 공예의 미술화에 대해서도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관점처럼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일까. 이는 미술과는 다른 공예의 장르적 성격 때문에 까다로운 질문이 될 수밖에 없다. 어디까지나 실용조형일 수밖에 없는 공예에서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것까지 인정하기는 힘들겠지만, 조금 다른 측면, 그러니까 공예의 문화적 위상 제고와 공예가의 사회적 지위 상승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분명 긍정적인 지점이 있다. 이런 측면에 주목한다면 공예의 미술화는 바람직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예의 미술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과는 별도로 한국 공예에서 근대공예운동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은 매우 아쉬운 점이다. 근대공예운동이란 윌리엄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이나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운동’처럼 근대화 과정에서 공예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찾으려고 한 시도들을 가리킨다. 근대공예운동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평가가 가능하지만,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이라는 19세기적인 조형예술의 차별적 위계구조를 혁파하고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공예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자 한 움직임이었다는 점에서 주체적인 문화운동으로서 그 의의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비주체적인 근대화 과정의 일부일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현대공예에서 서구와 일본의 근대공예운동 같은 사례를 기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 2021 청주공예비엔날레 '생명 주제 전시관'


공예의 근대화와 문화적 타자화

한국 공예의 근대화란 곧 ‘문화적 타자화’이기도 했다. 이는 미술에 의한 타자화와 산업에 의한 주변화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의 타자화인데, 그것은 근대를 식민지로 경험(‘식민지 근대화’)한 한국의 경우 전통공예의 가치 또한 제국에 의해 부여되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비주체적인 근대화는 자신의 전통을 근대적인 가치로 적극적으로 전환시켜내지 못한 가운데 식민 모국인 일본에 의해 재발견되고 평가되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아냐기 무네요시의 ‘민예(民藝)’ 개념이다. 야나기는 동아시아의 전통공예를 ‘귀족적 공예’와 ‘민중적 공예’로 구분하고, 이중에서 근대 일본 또는 동아시아가 계승해야 할 것은 ‘민중적 공예’라고 보았다. ‘민중적 공예’를 줄인 말이 민예인데, 민화(民畵)와 마찬가지로 야나기가 만든 말이었다.

야나기는 이러한 민예의 대표적인 사례를 조선 공예에서 발견하는데, 그가 발전시킨 민예론이 여기에 바탕 함은 물론이다. 이처럼 야나기에 의해 발견되고 평가된 조선 공예는 이후 한국 문화와 미학의 기본 틀을 이루게 된다. 한국 공예의 근대화가 문화적 타자화라는 것은 바로 이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조선 공예의 생산자는 분명 조선인이었지만, 그 가치를 인정하고 거기에 일정한 미학적 의미를 부여한 것은 일본인인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일본은 조선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조선 미술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행했는데, 세키노 다다시 등 일련의 관학자에 의한 연구가 그렇다.5) 나아가 아사카와 다쿠미 같은 민간인에 의한 조선 공예의 조사와 연구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6)

· 주석 5) 대표적인 성과는 <조선고적도보>(1931)와 <조선미술사>(1932)이다.

· 주석 6) 아사카와 다쿠미의 <조선의 소반>(1929)과 <조선도자명고>(1931)


이러한 문화적 타자화는 이후 한국 문화론에서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즉 근대 한국 문화의 정체성이 일본이라는 타자에 의해 규정된 것에 대한 복잡한 반응이다. 하지만 근대는 원래 제국과 식민지로 이루어져 있고, 이러한 구조 자체는 세계사적으로 매우 일반적인 것이다. 따라서 제국에 의해 규정된 식민지 공예의 정체성이라는 문제 역시 결코 단순하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역사를 본다는 것은 이러한 구조까지 생각하면서 최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접근을 해야 한다.

아무튼 이러한 논란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론인데, 이것이 조선 공예에 대한 발견이자 동시에 타자화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야나기의 민예론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나 감정적인 부정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여기에서도 한국의 근대화가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경로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가 필요한 것이다. 한국 공예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 역시도 그래야 한다. 비주체적인 근대화는 공예를 근대 산업과 디자인의 주체로 삼기보다는 전통 문화재 아니면 관광기념품화 했다. 식민지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의 전통공예는 미술화와 함께 문화적 타자화라는 이중적인 과정을 경험했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근대 산업화로부터는 분리된 이중적인 소외라고 할 수도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공예가 겪은 변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한국 현대공예 이해의 전제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 2021 청주공예비엔날레 '초대국가관 전경'

 


한국 현대공예의 과제

결론적으로 공예의 미술화는 근대기의 한국 공예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유일한 가능성이었고 현실태였다고도 할 수 있다.7) 이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비판적으로 볼 수 있다. 아니 그래야 한다. 하지만 일단 한국 현대공예의 역사를 객관적이면서도 비판적으로, 비판적이면서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하면 그 한계를 극복하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무비판적인 긍정도, 객관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원론적인 비판도 둘 다 바람직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 주석 7) 물론 한국 근대공예에는 미술화 경향에만 포함되지 않는 흐름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흐름들은 한국 근대공예의 주류를 이루지 못했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한국 현대공예는 자신의 본래(?) 자리를 잃고 미술의 구심력과 자장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는 다시 말하면 서구 근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공예-미술-디자인이라는 조형예술의 삼중구조가 이 땅에서는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공예가 사실상 미술에 흡수되어버림으로써, 조형예술의 모태이자 나중에는 미술과 디자인과는 구별되는 제3의 존재로서의 독자성을, 또는 미술과 디자인 사이에서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했어야 할 자리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 현대공예의 이러한 상황을 서구 근대 조형예술의 구조에 대입하여 재단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한국 근대의 특수성을 감안하는 것과는 별개로, 오늘날 우리가 조형예술을 보는 관점과 기준 자체가 서구 근대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될 일이다. 특수성을 인정한다는 것이 반드시 보편성을 부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특수성이야말로 보편성을 전제 하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볼 때 한국 현대공예의 과제는 바로 그것, 근대기의 한국 공예가 잃어버린 자리, 그것을 되찾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니까 미술, 디자인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할 근대 조형예술의 체계 내에서의 제3의 자리 말이다. 그리고 그럴 때만이 공예는 근대화 과정에서 상실한 위상을 회복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와 미래를 극복하고 말 그대로 현재 공예가 처한 상황을 직시하는 것이 긴요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오늘날 공예는 지나치게 과거에 사로잡혀 있거나 아니면 미래에 막연한 기대를 걸고 있다.

먼저 공예는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 이것은 공예의 오랜 역사에 비추어볼 때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고 또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예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것과 거기에 얽매이는 것은 다르다. 자랑스러운 과거 못지않게 달라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과거가 현재를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내가 말하는 공예의 제 자리 찾기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거니와 제 자리는 어디까지나 지금 여기 현실 속에서 찾아야 한다.

공예의 미래에 대한 기대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기대는 주로 인류 문명의 변화와 역사의 반복 속에서 공예가 다시 미래 문명의 씨앗이 될 것이라는 논리에 근거한다. 이른바 ‘오래된 미래’ 가설이 그러한데, 분명 현대 산업 문명이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한 생태학적인 미래 설계와 상상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과업이 다시 공예를 문명의 주인공으로 불러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소박하다 못해 좀 터무니없기까지 하다. 공예에 대한 문명론적 상상력은 분명 필요한 것이지만, 이로부터 바로 낙관적인 공예론을 끄집어내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할 것이다.

역사는 분명 반복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일하게 반복되지는 않는다. 모든 반복은 차이를 발생시키게 마련이며,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반복 못지않게 거기에 포함된 차이를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맹목적인 공예의 미래학(?) 역시 공예의 현실과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무튼 이런 점에서 묘하게도 공예의 과거에 대한 예찬과 미래에 대한 기대는 서로 닮아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정확히 공예의 현재를 빠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예의 현재란 거듭 말했듯이, 근대 조형예술의 체계 내에서의 현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거나 부정하는 어떠한 관찰도 공예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공예의 현재에 대한 알리바이로 작용할 뿐이다. 사실 이것은 공예의 패배주의이다. 공예의 진로는 공허한 위로나 한갓된 기대가 아니라 철저히 현실을 직시하는 데에 달려 있다. 저런 양극적인 허상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공예의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도 없다.

따라서 현대공예의 제 자리 찾기는 어디까지나 근대 조형예술의 체계 내에서의 자기 역할과 위상 확보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지, 조형예술의 원류로서의 유구한 전통 과시나 ‘손의 예찬’과 같은 낭만적 감상주의 또는 ‘오래된 미래’ 같은 낙관적 미래주의에 빠지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결코 공예가 처한 현실과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현대공예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역사주의(전통문화!)와 낭만주의(손의 예찬!)와 미래주의(오래된 미래!)이다. 그 대신에 역사 속에서 조형예술의 구조가 변화해온 과정을 객관적으로 직시하면서 그 속에서 치열하게 자기 역할을 찾아가야 한다. 아무튼 지난 시기 공예의 주변화는 미술과 디자인의 도전이라는 외부적 영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공예 자신의 위상 확보 실패로 인한 것이기도 하다.

이제 조형예술 간의 위계나 중심성-주변성을 넘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야 하고, 이런 상황에서 공예의 매개적 기능은 더욱 요청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미술과 디자인 사이의 공예, 미술과 디자인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는 것, 이것은 물론 조형예술 장르 간의 경계성과 중첩성을 인정하면서도 고유성을 확보하는 것, 근대 조형예술의 창백한 위계질서를 내면화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자신의 위상과 역할을 똑바로 수행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든 외부적으로든 공예에 씌워진 온갖 이데올로기와 알리바이로부터 먼저 벗어나야 한다.

한국 현대공예가 잃어버린 것은 단순히 전통이나 제작 기술, 사회적 기능이 아니다. 그것은 ‘공예라는 차원’ 그 자체이다. 따라서 한국 현대공예가 회복해야 하는 것도 바로 ‘공예라는 차원’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공예, 미술, 디자인이라는 세 개의 발을 가진 솥(鼎)의 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공예의 실존은 단절된 고독 속에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미술, 디자인과 함께 하는 근대 조형예술의 체계 속에 놓여 있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현대공예의 방향 역시 이러한 구조 내에서 설정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이 현대공예의 실존이고 실천이다.

 

최 범 / 디자인 평론가

 

최범 : 지난 30년간 공예, 디자인, 미술 등 여러 시각예술 분야에 걸쳐 평론활동을 펴왔다. 전문매체와 일간지 등에 다양한 글을 기고해왔으며, 지금까지 7권의 공예와 디자인 평론집 그리고 2종의 디자인 교양서를 출판한 바 있다.

※ 이 글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주관한 <2021 시각예술 비평가-매체 매칭 지원사업 - '다시, 바로, 함께, 한국미술'> 프로젝트에 의해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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