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정기용과 등나무

건축 / 전상희 기자 / 2021-08-24 16: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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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하는 건축가>
‘지구를 살리는가, 삶의 질을 높이는가,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이 될 수 있는가

 

무주에는 등나무와 등꽃으로 유명한 곳이 있다. 무주공설운동장. 다른 이름은 무주등나무운동장이다. 건축가 고 정기용이 진행한 무주 프로젝트의 하나다. 행사 때마다 군수와 주최 측은 천막이 쳐진 본부석에 앉아 있고 주민들은 땡볕을 그대로 받으며 관중석에 앉아야 한다. 그러니 자연스레 군 차원의 행사에서 주민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무주 프로젝트를 맡으며 설계하는 시간보다 사람 만나러 다닌 시간이 더 많았던 그는 늘 건축보다 사람을 향했다. 그때 운동장 주변의 등나무들이 건축가의 눈에 띄었다. 그리고 등나무의 순을 잡아 사람들에게로 인도했다. 등나무 넝쿨이 참 고맙게도 잘 자라 그 어떤 것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멋들어진 자연 그대로의 천막을 완성해주었다.

등나무운동장과 그를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인생 마지막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에서다. 스크린 속에서 그는 공공도시 프로젝트를 공부하러 온 다른 지역 공무원들에게 자랑스레 등나무운동장을 소개한다. 자기의 의도대로, 아니 의도보다 더 잘 자라준 등나무에게 고마워했다.

 

 

▲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 포스터

 

하지만 이내 그 옆에 커다란 규모의 건물이 들어선 걸 보고 분노했다. 사람과 환경, 그리고 자연을 모두 생각하며 만들어놓은 바로 그 옆에 등나무들이 제대로 빛을 보지도 못할 만큼 높은 건물이 들어섰던 것이다. 아무런 고려도, 배려도 없이. 그는 단순히 자신의 프로젝트가 가려졌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우리 사회가 건축을,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 한계에 또 다시 부딪쳐 분노했던 것이다.

언제나 건축을 하기 전 늘 ‘지구를 살리는가, 삶의 질을 높이는가,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이 될 수 있는가’를 고민했던 그이다. 이런 고민 없이 단순히 개발과 경제의 논리로 세워지는 건물을 보며 그는 늘 마음 아파하고 동시대인으로 반성했다. 그리고 그러지 말 것을 당당히 자신의 건축들로 주장했다.

건축은 근사한 형태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직하는 일이라고 말해온, 또 그렇게 살아온 그는 등나무와 참 잘 어울린다. 묵묵히 그러면서도 존재감 있게 자신이 있는 곳에 뿌리를 박고 가야할 곳을 향해 올라가는 모습이. 그리고 버거운 세상 속에서 애쓰고 돌아온 이들을 넉넉한 그늘로 위로하는 모습이 말이다.

그는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생각과 건축, 그리고 그의 이야기들은 한국 건축에, 아니 한국 사회에 등나무가 되어 줄 것이다. 이제 곧 등꽃이 피어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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