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가옥 오브제가 빗은 럭셔리 레스토랑... 파크하얏트 부산 다이닝룸(Dining Room)

디자인 / 유재형 기자 / 2025-03-17 11:23:23
전통가옥 부엌으로 셰프들이 들락거린다. 옆으로 늙은 호박이 마음껏 배를 불렸고 정갈한 테이블 위에 에스까르고 한 접시가 놓였다. 토기와 오래된 서적 너머로 요트가 그림처럼 흘러간다. 이곳은 파크하얏트 부산 다이닝룸이다.

 

 

해운대가 하얏트를 품었다. 이만한 곳을 찾기 어렵다는 결론은 바다의 에너지를 만끽하기에 충분한 크기의 창과 파크하얏트라는 이름의 품격이 보충하고 있다. 파크하얏트 부산은 햐얏트 최상위 브랜드로 서울 강남에 이어 국내에서는 두번째로 마린시티 내에 문을 열었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단 한 곳 뿐이 없는 이 프리미엄 호텔에서 근무한다는 직원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하얏트이기에 가능한 일들


 

 


공간은 퇴화하기 마련이다. 최신의 디자인도 시간이 지날 수록 낡은 것이 된다. 사람이 그러하듯 아름다운 외모를 유지하려면 적극적인 투자와 관리가 필요하다. 인테리어 영역에서도 이 법칙은 유효하다. 시간이 지날 수록 가치가 입증되는 목재는 안티에이징 화장품 격이다.

여기에 독창적인 디자인을 통해 애초부터 비교대상을 지움으로써 퇴보의 원인을 제거하는 일, 오래되어도 감히 낡은 것이라 말할 수 없는 디자인을 완성하려는 투자와 관리가 엿보인다. 파크하얏트 부산은 소위 산업화 과정에서 퇴화한 유물들을 이곳에 끌어들였다. 철골과 콘크리트가 저지른 전통미에 대한 압박이 이곳에서 화해와 조화의 마당이 된다. 이 조차 외국계 브랜드 파크하얏트이기에 가능했다는 역설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전통적 요소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느 한국인 이상으로 예의바르다. 단절과 퇴화의 과정을 겪은 당사자 국민이 아니라는 점은 이것들을 건축적 오브제로 끌어들이는 데 걱정을 지운듯 보인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유대계 폴란드인 건축가 다니엘 이베스킨드(Daniel Libeskind)가 건물 골격을 완성하고, 수퍼노말 디자인을 추구하는 일본 인테리어 디자인그룹 슈퍼포테이토가 그 속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역할은 무엇일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들이 차용했을 뿐 하얏트 부산에서 만나게 될 모든 것은 한국인의 삶, 우리의 자연이 빚어낸 것들이다.


공간은 유기체이다


 

 


부둣길을 지나 광안대교를 넘어서면 바다를 배경으로 솟은 파크하얏트 부산의 외관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해운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에서 만나는 마천루 속에 이 건물은 바다와 가장 인접한 고층빌딩이다. 자연이 최고의 배경인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이 뷰가 돋보이는 곳이다. 바다는 호텔이 자랑하는 최고의 인테리어이다.

파크하얏트 로비는 상층부인 30층에 있다. 이곳에서 바다가 가장 넓게 보이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동백섬을 품은 광안리 앞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번 호에 소개할 나무 공간은 '다이닝룸(Dining Room)'이다. 30층 로비층과 31층 리빙룸, 32층 다이닝룸은 층을 달리하고 있지만 하나의 유기적 컨셉으로 디자인되었다. 이중 다이닝룸은 파크하얏트 부산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레스토랑이다.

건물의 최상부인 세개의 층이 하나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개를 화강암 덩어리이다. 화강암이 벽면을 타고 세개 층을 거슬러 오르는 동안 우리는 원목 계단을 밟았다. 바로 옆 엘리베이터를 두고 계단을 오르는 이유는 하나다. 나무이기 때문이다. 층계 하나하나를 밟을 때마다 '나무는 이렇게 쓰는 것이다'는 소리가 탁탁 울린다.

다이닝룸의 첫 인상은 벽면을 채운 무언가에서 전해지는 기운이 범상치 않다는 것. 통유리로 너머 전경으로 눈이 가기전 이 익숙하고도 낯선 분위기의 인테리어가 시선을 붙들고 섰다. 한국적 요소들이 현대적 공간에 녹아든 결과다. 전통적 소품 하나 하나를 예술작품으로 승화키켰다는 하얏트 측의 설명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전세계 하얏트 체인의 단골 파트너인 슈퍼포테이토에게 전달된 과제는 'residential comfort'(집과 같은 편안함) 이었다. 건축가 다니엘 이베스킨드가 해운대 앞 바다의 역동적 파도를 닮은 유려한 곡선형의 유리 건축물을 완성했다면, 슈퍼포테이토는 '우리 집' 보다 더 편안한 공간을 완성하고자 고분분투했다. 이중 최고의 난제가 '집과 같은' 분위기를 묘사할 한국적 집의 요소를 찾아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공간 안에 든 집


 

 


다이닝룸 섹터는 크게 세 곳의 오픈 키친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퇴가 있는 구조로 작은 면적이 분할된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공간분할은 한국적 건축 요소인 채 나눔에서 힌트를 얻었다. 안채에서 문을 들어올리면 공간이 확장되듯 다이닝룸은 독립적이면서도 연속된 공간을 연출했다. 고심 끝에 이들의 결론은 민가의 인테리어 요소를 끌어들이고 채 나눔의 경계로 삼았다.

여기에는 흙만으로 지은 토담집도, 벌목한 나무의 굵은 밑동을 쌇아올린 귀틀집도 보인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사랑채가 그러할 뿐 이 공간의 근원은 보와 도리로 구성한 한옥이다.

프랑스산 오크목을 깐 통로를 따라 노송이 날렵한 선을 이룬다. 이 선은 키친과 문객이 머무는 객장을 구분한다. 곧 통로는 툇마루이고 라운지는 방이된다. 어찌보면 이 손님이 오가는 복도는 회랑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벽면에는 여염집에서 볼 수 있는 인테리어 요소가 가득하다. 반닺이가 놓였고, 전통갓이 벽에 걸렸다. 한 쪽에는 가야 토기가 가지런히 정렬되었고, 중앙에는 체리우드 식탁이 놓였다. 이 정렬방식이 조화롭다. 한국적인 요소 중간중간에 현대적 디자인이 개입해 완충제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 방으로 들어서면 제례에 쓰이는 제기와 기와조각이 겹겹이 쌓인 채 큰 면을 이룬다. 납작한 기와를 길이모쌓기 형태로 쌓아올린 것이 무령왕릉 현실 내부를 떠올리게 한다. 공간 가장 깊숙한 곳은 흥이 돋은 주막 분위기가 산다. 시골 장터에서 봄 직한 물건들이 내외부를 꾸미고 있다.


우리집 보다 더 편안한 곳


 

 


소재만 보면 너무나 소박한 나머지 럭셔리프리미엄을 표방한 호텔 내부의 것인가 싶겠지만 창마다 넘치는 바다와 조화를 생각한다면 소박한 것만큼 화려한 것도 없다. 한 선비가 제 방문을 열었을 때 마침 펼쳐지는 작은 정원과 얕은 산은 소박함이 주는 무게이다. 파크하얏트 부산은 제 속으로 바다를 끌어들인 부담을 간결한 선과 면으로 풀어헤치고 있다. 면을 채운 제기와 키, 고서적 등은 이곳이 선비의 공간이면서도 생활의 공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선조로 부터 물려받은 집, 이곳은 편안한 우리 집이다.

그러나 낯선 공간이기도 하다. 익숙한 느낌이나 유리막을 통하고 조명을 타면 그 느낌을 달라진다. 한 번도 최신 인테리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이 전통의 것에게서 전해지는 충격의 정체는 무엇일까. 소쿠리, 베틀, 붓과 주병이 주는 이물감은 우리 것이지만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아름다움이 모습을 드러났기 때문이리라.

수퍼포테이토 스튜디오의 전문성은 여기에서 드러난다. 천연목재와 철근, 화강암, 벽돌 등 자연의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현대적 공간과 자연스럽게 결구시키는 능력. 어찌보면 이 이물감의 정체는 외국인의 손을 빌어 우리 전통 디자인의 가능성을 엿보았다는 아쉬움일 수도 있겠다.

통로에서 ㄱ자형으로 꺽어지면 유리 와인셀러가 등장한다. 그리고 스시바 공간이 시작된다. 이곳은 와인스테이션과 함께 별도 그룹석을 이룬다. 전통가구와 자물통을 엮어 디스플레이한 유리 벽이 울타리 역할을 한다. 소규모 파티를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단체손님이 많은 부산의 특성을 반영한 나눔의 의미로 보인다.

이곳은 수직적 흐름이 우세한 곳이라 수평적 동태의 간섭이 심한 곳이다. 그래서 평면 면적을 넓지 않다. 다이닝룸의 통로는 여타 호텔에 비해 좁은 편에 속한다. 객장 전체 좌석수도 93석에 불과하다. 그래서 앞서 밝힌 것처럼 통로를 분명히할 필요가 있었다. 이 때문에 소나무 프레임과 바닥 오크목재의 역할은 분명하다. 보는 3곳의 섹터를 연속적으로 연결하고 오크 바닥이 동선을 잡아준다. 그런 의미에서 공간의 지배자는 나무이다.

이들이 한국적 디자인 요소를 반영하려고 노력한 부분은 30층에서 부터 이어지는 계단 울타리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철제 난간마다 전통문양이 새겨져 있다. 또한 유리 엘리베이터를 보호하는 철제 박스에서도 동일한 문양은 반복된다.


'진짜'가 주는 감동


 

 

 

다이닝룸의 하루는 삼식세끼 준비로 분주하다. 노련한 셰프가 숯불에 구운 육류와 해산물 요리를 선보이고, 스시바에서 앉은 손님들 앞에서 스시, 사시미, 마키롤을 선보인다. 오픈 키친 한 곳에는 장독이 놓였고 늙은호박과 견과류가 제자리를 찾아 놓였다. 무엇을 보여주려는지 의도는 선명하다. 이곳은 잔칫집이다.

그러고 보니 슈퍼포테이토가 즐겨사용하는 수변 이미지가 빠졌다. 이들이 디자인한 하얏트리젠시 인천에서도 보았고, 노보텔엠베서더 강남의 레스토랑 슌미에서도 보았던 물의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다. 슈퍼포테이토에게 있어 물은 적당한 습도를 유지하기위한 공간에 대한 배려이기도, 원목 사용에 대한 자신감 표현이기도 했다. 하지만 바다를 낀 이곳에서 수변 공간은 사족에 불과하다. 대신 황토를 끌어들여 한국적 소재로 차용했다. 공간의 지배자 격인 소나무 곁에 마땅히 있어야할 물성으로 황토를 끌어들였다고 볼 수 있다.

분명 빌딩 내부를 시골처럼 꾸며놓고 무슨 민속적인 분위기라 자랑하는 이제껏 디스플레이와는 격이 다른 모습이다. 가서보면 억지로 만들고자 애는 썼는데 도무지 걸맞지 않았던 유사한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진짜' 만의 끌어들인다는 컨셉에 있다. 스기모토 다카시(Takashi Sugimoto)를 필두로 한 수퍼포테이토 디자인그룹은 줄곧 내추럴한 편안함을 찾는 디자인을 추구해 왔다. 그래서 나무도 진짜 원목, 돌도 원석 을 고집해 왔다.  

 

 

 


한국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찾고자 노력한 이들은 여염집 세간에서 그 답을 찾았다. 대다수 물건이 주변에서 만나는 나무로 만든 이것들은 장식의 의미를 넘어 진정성을 전한다. 이 진품들은 공간을 장식하고 분할하는 파티션 역할을 맡았지만 절대 공간(Space) 속으로 개입하지 않도록 염격하게 통제되고 있다.

가공하지 않는 거대한 대리석 벽채는 우리가 가장 편안한 입지조건으로 꼽는 배산임수 풍수지리를 반영하고 있다. 바다를 배경으로 원목이 수식하는 대리석과 조화로운 공간은, 어느 빌딩 속으로 들어와 앉았다는 느낌 보다는 전망좋은 정자에 앉아 산해진미를 맛보는 풍류를 전한다.

국제도시 부산, 그것도 한국에서 가장 다이나믹한 공간으로 여겨지는 해운대에 자리한 파크하얏트 부산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숙제를 안긴 곳이다. 전통의 쓰임에 대한 고민 중 그 하나를 해결한 다이닝룸의 인테리어는 여러가지 핑계로 활용을 게을리한 우리들에게 반성과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이곳 호텔 관계자 역시 '럭셔리를 재정의한 것'으로 공간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하고 있다.

6성급 호텔의 구성 요소로 쓰이기에 충분한 이것들은 대체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한국 디자이너들이 외국의 유행을 찾는 동안 우리 삶의 모습에서 '럭셔리'한 일면을 발견했다. 슈퍼포테이토 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이 디자인그룹을 이끄는 스기모토 다카시는 말한다. "디자인은 사람을 모으는 힘에 있다" 한국인을 집결할 원초적 디자인을 찾는 것에서 고민은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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