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헌문편에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이란 구절이 나온다. 풀이하면 옛날에는 자기수양의 방편으로 앎을 추구했는데 요즘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학문, 즉 위인지학(爲人之學)을 한다는 비판이다. 이 구절은 조선 선비들이 이상적 삶의 지표로 삼았던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자기를 닦는 것은 곧 조선 선비들이 진리를 추구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선비들에게는 학문을 닦는 것도 수기치인의 한 방편이었다. 옛 선비가 그랬듯 스스로를 닦는 마음으로 책을 만드는 이가 있다. 지난 20여 년간 자신을 거쳐 간 수많은 조선 목가구를 살펴 그 특징들을 꼼꼼히 기록하고, 손 그림으로 옮기고, 그 속에 담긴 뜻을 헤아려 책으로 펴낸 동인방 정대영 대표가 바로 그다.
제작기법 중심의 분류
가구를 분류하는 방식은 사용 공간에 따른 사용자 중심의 구분이 일반적이다. Edward Lucie Smith는 「Furniture History」에서 ‘앉는 것’ ‘올려놓는 것’ ‘자거나 기대는 것’ ‘수납하는 것’의 4가지 기능으로 나눠 가구를 분류했는데 이 역시 사용자 중심에서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조선가구 형태와 구성」은 이런 분류법에 따르지 않고 제작 측면에서 조선 목가구를 바라본다. 기둥을 뜻하는 골주 중심의 가구와 기둥을 세우지 않고 널빤지가 기둥이면서 면의 역할을 하는 널 중심의 가구로 분류하면 조선 목가구라는 매력적인 기물의 세계는 새로운 의미망을 펼쳐 보인다. 이 독창적인 분류법을 통해 조선 목가구를 바라보고 그 내용을 책으로 펴낸이는 바로 동인방 정대영 대표다. 정대영 대표가 제작기법으로 가구를 분류한 것은 그 속에 조선시대 목수와 선비들이 가구의 쓰임을 궁구했던 원리가 담겨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조선의 실내가구는 충분한 내구성을 갖출 수 있는 적정치에 도달하면 절대로 과하게 쓰지 않는 전통이 있었어요. 이런 전통이 얇은 두께의 널을 사용하거나 가는 골주를 쓴 실내가구가 나온 까닭이었지요. 즉 쓰임에 따라 얇은 재료로도 충분한 기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에 실내 공간에 최적화된 가구의 형태가 나온 겁니다. 면 판자가 두꺼우면 골격도 굵어야 하고 높이와 크기도 커야 나름의 균형을 갖게 되는데 이는 실내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형태입니다.”
조선의 목가구는 재료에 따라 적용 방법이 각기 다르게 발달된 균형감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 정대영 대표의 견해다. 가령 골주를 사용하는 장에는 대략 0.9cm(±0.3cm)의 널이 쓰이는데 골주와 함께 사용되면서 얇아서 내구성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골주가 사용되지 않는 반닫이 등의 궤에 사용되는 널은 평균 두께가 2.5cm(±0.5cm)로 상대적으로 두꺼웠다. 이는 골주 없이 널이 단독으로 기둥과 면판의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다. 정대영 대표의 분류에 따르면 골주 중심의 조선 목가구는 사개 마감(뒤주, 찬장, 책장, 탁자장)과 상판 마감(장, 관복장, 제례가구)으로 나뉘고, 널 중심의 가구는 두꺼운 널(궤), 얇은 널(함, 농, 서안, 기타)로 구분된다. 이러한 분류는 새로운 각도에서 조선 가구를 바라볼 기회를 제공한다.
삶의 흔적을 책으로 남기다
정대영 대표에게 책을 만드는 일은 숭고한 행위다. 앞서 말했듯 위인지학(爲人之學)의 뽐냄이 아니라는 뜻이다.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3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자료조사에서 연구, 탁본, 그림, 그리고 글까지 정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다. 그렇게 고생을 해서 책을 내서 학계나 사회에서 큰 명망을 쌓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돌아오는 것은 오해와 몰이해, 그리고 무시였다. 그렇다고 책을 만들어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그가 세상의 홀대로 인해 겪은 좌절을 딛고, 또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 줄기차게 책을 만드는 연유는 책을 쓰는 행위 자체가 높은 곳만 바라보며 교만하게 살다가 절망하고 실의에 빠져 허비했던 젊은 날을 반성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수기치인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실한 크리스천이기도 한 정대영 대표는 책을 쓰고 직접 발행하는 행위를 통해서 신을 만난다. 그런데 이 역시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 진심을 쏟아 세상을 살아가는 흔적을 책을 통해 기록한다는 의미다. 역시 수기치인의 마음이고 정신이다. 책 일곱 권을 펴내는 동안 겪었던 고초와 실망, 좌절이 결코 적지 않았음에도 이 일을 중단하지 않고 해낼 수 있었던 근기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대영 대표는 군 전역 직후인 1973년 무렵 점원 생활을 시작으로 고가구계에 몸을 담았다. 점원의 신분으로 고가구를 알아가면서 점점 그 매력에 깊게 빠졌다. 고가구를 단순한 상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대하면서 그 안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새기기 시작했다. 점원으로 일하던 1976년 무렵부터 장석 탁본을 시작할 정도였으니 그가 조선가구에 쏟은 관심과 애정이 가히 짐작된다.
정 대표가 짓고 펴낸 「조선시대의 못」은 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결코 세상에 나올 수 없었던 책이었다. 정 대표는 상극처럼 보이지만 기막힌 어울림으로 가구와 한 몸을 이룬 못에서 당대의 문화를 읽었다. 그런 깨달음을 더욱 파고들어 탄생한 책이 「조선시대의 못」이었다. 가구의 결구를 돕는 못에서 당대의 문화와 가구나 철 기술의 발달사까지 헤아리는 안목은 결국 지극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조선의 나전」은 조선의 나전 발달을 중국의 영향으로 보는 일반적인 통념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했기에 쓴 책이다. 정대영 대표가 이처럼 전 인생을 통해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한 땀 한 땀 정리하고 기록해서 책이라는 형태에 담아 전하는 데에는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좋은 자료를 정리하겠다는 사명감도 작용한다.
조선가구 연구의 새로운 지평
| ▲ 정대영 '동인방' 대표 |
그저 흔한 골동품상 정도로 알고 있던 이들도 정대영 대표와 얘기를 나누어보면 조선 목가구에 통달한 그의 식견에 금새 감탄하게 된다. 1993년 그가 처음 지은 「한국의 궤」는 사료적 가치가 있는 수많은 조선 목가구의 정보가 담겨 있어 지금도 찾는 사람이 많다. 「조선가구 형태와 구성」에 소개되는 조선 목가구들은 정 대표가 고가구 연구 과정에서 후대에 남겨 그 가치를 전해야 한다고 판단할 만큼 귀한 것들만 따로 간추린 것이다. 단순하면서도 불편함이 없도록 하고 과한 치장을 배제하고도 미감을 압축하여 풀어냈던 제작자의 측면에서 가구를 바라본 통찰력은 아마도 고미술품 콜렉터로서의 현실적 감각과 고가구를 연구하고 해석하는 학자적 엄격함을 겸비하고 평생을 살아온 그의 독특한 이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조선시대의 서안에서 조선시대의 선비정신을 본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비례로 치밀하게 짜인 만듦새에서 조선 목수들의 수준 높은 기예를 본다. 오늘날까지 전하는 조선시대의 가구에는 선비의 정신이 담겨 있고, 좋은 기물을 만들고자 노력했던 조선 목수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런 가구들은 애용되고 귀하게 대접받으며 만들 당시보다 더욱 풍성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게 된다.
“조선가구의 가장 큰 특징은 가구를 구성하는 아주 사소한 부분이라고 할지라도, 그 속에 깊게 배어 있는 정신력의 존재입니다. 이러한 정신력은 재료 자체에도 있고, 재료를 연결하는 결속에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균형, 비례에도 있지요. 좋은 기물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전 과정 속에 숨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조선의 가구를 예찬하면서, 두서없이 가구의 종류만을 나열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대영 대표가 제작기법으로 분류해 조선가구를 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 까닭은 바로 이 말 속에 고스란히 함의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대영 대표는 조선가구가 조형미, 비례감, 결속, 기술, 재료 기용 등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룬 것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성취가 조선가구에만 담긴 독창적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정대영 대표의 이런 균형 감각이야말로 새로운 시선으로 조선가구를 파악할 수 있었던 근본이었을 것이다. 사실 조선가구에 대한 연구는 쉽지 않은 영역이다. 우선 전하는 기록이 거의 전무한 실정이고, 실물로 전하는 고가구는 연대가 조선 후기의 것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전통의 단절이라는 뼈아픈 경험을 한 탓에 조선가구의 미학적 측면 외에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런 현실에서 조선가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연 이 책이 조선 목가구에 대한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연구 풍토가 확산되는 계기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 ▲ 모든 자료는 직접 손으로 그려 기록한다. |
동인방에서 펴낸 일곱 번째 책으로 정대영 대표가 연구자로서 접했던 조선가구 중에서 특히 연구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목기를 뽑아 체계적으로 분류한 조선 목가구 연구서다. 이 책이 남다른 점은 국내 최초로 조선가구를 제작기법으로 분류해서 연구했다는 것이다. 조선가구의 형태를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실물 스케치를 일일이 그려 책에 실었으며, 전체 사이즈 외에서 각 부분별 세부 실측 사이즈를 실물스케치에 곁들여 표기했다. 정대영 대표는 가구의 보존 작업을 위한 참고자료로서의 쓰임은 물론 현대의 전통 소목 목수들이 전통 방식을 재현하면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안이하게 처리하지 말고 이 책을 통해 전(前) 공정보다 후(後) 공정에 성실한 노력을 다한 조선 목수들의 정신을 이어받는데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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