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아티스트 존 그레이는 대형 설치 미술 작업을 주로 한다. 자기소개를 부탁하자, 지난 십여 년 전부터 오랜 시간을 걸쳐 변화하는 자연경관 요소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무엇에 관심 있는지야말로 작가의 작품은 물론 그 아티스트를 동시에 보여주기 때문에 그의 대답은 우문현답처럼 느껴졌다. 이어 그는 그러한 사유가 점차적으로 무너지거나 다르게 변화하는 것에 대한 의문을 또 다시 불러일으킨다고 덧붙였다.

작가가 고민하는 것 중의 하나는 아마 자연에서 엿볼 수 있는 변화와 사라짐인 듯했다. 그리고 그 두 사이의 간극에 작가의 최근 작품인 ‘MIDDLE FORK'가 있었다.
이 작품의 모델은 노스벤드 숲속에 있는 수령 140년 된 20피트의 묵직한 고목이다. 작가는 두주동안 열 명의 사람을 동원해 나무의 본을 뜨는 작업을 세심하게 진행했다. 간단하게 디지털 작업을 하는 대신에 약 4.5t의 석고를 섬세하게 펴 발라 나무 그 자체의 느낌을 그대로 옮길 수 있도록 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여러 사람들이 신경을 써야하는 작업이었지만, 나무가 주는 그 형태의 기운을 세밀하게 느끼면서 작업 시에도 이해하기 위함이었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정교하게 본을 뜬 덕분에, 고목은 자신이 지탱하고 있던 제 몸보다 더 묵중한 생의 한 부분을 MIDDLE FORK에 영원히 안착시켰다. 형을 뜨는 작업을 마친 후 MIDDLE FORK의 민낯은 그저 하얗게 굳은 얇은 풀 껍데기였다. 마치 화장을 해놓은 듯 창백하고 얇은 면에 다시 생명을 입히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때도 수백 명의 도움이 필요했다. 가벼운 삼나무 조각을 이용해 일일이 본뜬 석고 위에 하나씩 붙였다. 많은 이들의 수작업 덕분에 정교하지만 균일한 다름의 조화가 석고 위에 둘러졌다. 전체가 아닌 나무를 여러 부분으로 나눠 작업했다.

일부분이 완성되면 형태를 굳히는 작업을 한 후, 시야높이에 맞게 수평으로 눕혀 공중에 걸었다. 공중에 떠있기에 이를 오브제 보다는 나무라는 하나의 생명과 이에 동반되는 물질성을 떠올게 된다. 또한 나무의 밑기둥을 측면에서 볼 때와 정면에서 볼 때는 아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나무 그 본연의 물질성을 통해 자연이 주는 공간성을 잠시 빌려왔다면, 텅 빈 나무의 속을 바라보는 것은 이와는 또 다르게, 자연이 지닌 긴 세월이라는 시간을 엿보는 착각을 일으킨다. 숲의 공간과 나무의 시간은 또 다시 숲의 시간과 나무의 공간으로도 치환된다. 이렇듯 MIDDLE FORK는 마치 자연의 공명을 시각화해놓은 것만 같다. 작은 삼나무 조각들로 숲 속의 하늘과 땅 그 모든 것을 흡수했을 고목을 실현시켰다. 이 작품은 현재 워싱턴 디씨에 있는 Smithsonian 박물관의 Renwick 갤러리에서 전시를 마쳤다.
이에 대해 작가는 “삼나무 조각을 재료로 선택했던 것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을 때 숲의 일부분이 되길 바라서였어요.”라고 말했다.

재료 특이함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고 얘기했던 그에게 이번 작품의 재료는 어쩌면 ‘자연으로의 회귀’를 실천하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끼가 끼고 점차 땅 속으로 흡수돼 다시 자연의 일부가 될 MIDDLE FORK에 대해 다르게 설명할 길이 없다. 전체의 숲을 옮기듯 나무의 시간을 조심스럽게 빌렸다. 작가는 재료라고 말했지만, 이는 결국 작품 전체의 뉘앙스와 성질을 결정했다. 그는 한결같은 화법으로 작품과 자신에 대해서 설명했다. 나무가 숲을 이루고 숲에 나무가 있는 듯, 결국 앞뒤의 순서가 무의미한 오로지 사유의 과정에서만 작가의 찰나의 의도를 캐치할 수 있었다.
MIDDLE FORK는 정교한 작업 방식 못지않게, 작업 해체 방식 또한 섬세하지 않은가. 고목의 또 다른 자아인 작품이 돌아갈 곳을 정해준 그의 방식은 또 다른 의미로 ‘예술적인 완성’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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