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나란히 눕고 싶다면...'House in Balsthal'

건축 / 송은정 기자 / 2024-05-27 08:54:01
자연환경을 일상 가까이로 끌어들이는 방법
집의 기본을 잃지 않는 것

 

도시를 배경으로 삶을 꾸리는 대다수의 젊은 부부는 소망한다. 내 아이만큼은 어릴 때나마 흙을 밟으며 자랐으면 좋겠다고. 아쉬운 대로 얼마만큼의 시간과 돈을 지불한 뒤 자연을 ‘체험’해보기도 하지만 성에 차지 않을 따름이다. 여건이 된다면 도심에서 떨어진 외곽으로 이사해 조금 더 가까이, 숲과 나무 곁으로 다가가기를 선택한다. 모두들 그렇게 제 위치에서 자연과 공존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햇살을 즐기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


밀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대지 위에 지어진 이 목조주택은 땅의 품으로 몸을 파고들었다. 스위스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일상 가까이로 끌어들이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다. 지면보다 약 1.5m 정도 아래에 기초를 다진 뒤 구조를 세워 1층 전면을 감싸고 있는 유리창과 주변 지대의 높이를 맞췄다. 밖에서 보았을 때 마치 창이 집 전체를 아슬아슬하게 바치고 있는 듯하다. 검은색으로 칠을 한 전나무 패널로 건물 외부를 감싸 안은 덕에 불안함은 상쇄된다.

 

 


유리창이 벽을 대신한 1층 공간은 사방으로 가감 없이 뚫려 있어 밀밭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집안을 자유롭게 드나든다. 여기에 주방과 다이닝룸, 거실이 한 공간에 모여 있는 원룸 구조는 외부 환경의 영향을 아무런 방해 없이 고스란히 전해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덕분에 거주자는 집을 사이에 두고 자연의 힘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는 동시에, 반대로 자연과 정서적으로 더욱 긴밀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건물에 사용된 모든 창에는 3중 유리를 설치해 단열 문제에 대한 우려도 가라앉혔다.


1층 실내는 다른 것 없이 단정하고 차분하다. 천장과 바닥, 집의 가장자리를 따라 설치한 빌트인 수납장 모두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난 전나무로 마감되어 있는 것이 한몫했다. 그 흔한 커튼과 카펫, 유행하는 플로어 조명기구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필요한 몇 개의 의자와 식탁을 겸한 테이블 정도가 살림의 전부다. 자잘한 그릇이며 생활용품들은 빌트인 수납장에 보관해두어 번잡스러움을 피했다.

 

 

공간을 비우니 창 너머의 들판과 하늘,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떼들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 집안을 채운 불필요한 물건과 전자제품이 우리의 고요한 시간을 소리 없이 빼앗아 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한편, 빌트인 수납장은 수납용도 외에 다른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1층 유리창의 시작점과 같은 높이의 수납장은 책상과 진열장으로 사용하는데, 제법 큰 넓이 덕분에 눕고 앉을 수도 있다. 햇살이 좋거나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는 창에 기대어 앉아 주책없이 시간을 죽이는 것이야말로 이 공간의 주인으로서 제 의무를 다하는 것일 테다.

자연을 수용하는 여러 가지 방법

 

 

나선형 계단을 통해 이어지는 위층은 아래와는 사뭇 다르다. 1층이 낮은 천장을 따라 수평으로 자연과 눈높이를 맞췄다면, 6m의 높은 천장을 가진 2층은 수직의 공간감을 강조했다. 아래층이 원룸 구조인 반면, 3개의 침실과 1개의 화장실로 공간이 정확하게 4등분되어 있다는 점도 차이가 있다. 모든 방의 한 쪽 벽면에는 통유리창을 달아 시원한 전망은 그대로 유지했다.


반전은 마주한 두 개의 방 사이에 설치한 라운드형의 창이다. 직사각형 프레임으로 짜여 있는 건물 형태와 창 사이에서 동글동글한 모양새는 단연 눈에 띈다. 1층이 사방의 전면 창을 통해 자연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면, 개인 공간으로 구성된 2층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외부를 관찰하는 듯하다. 

 

자연을 향해 열려 있는 자세는 지향할 만하지만, 개인의 은밀한 공간이 보장되지 않는 집에서는 결코 오래 머물 수 없음을 떠올린다면 이는 적절한 균형이다. 외부의 환경을 겸허히 수용하되 집의 기본을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자연과 공간이 조화를 이루는 길일 테다.

 

 

사진 Ioana Marines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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