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이버의 목공 카페 우드워커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닉네임 ‘도현아빠’는 익숙하면서도 정겨운 이름이다. “木神이 내려” 취목의 길에 들어선 2007년 카페에 가입해 그야말로 진심을 다해 카페 회원들과 교류를 해온 때문이다. 갈 길을 몰라 헤매는 초보 취목인들에게 도현아빠의 친절한 답변은 그야말로 한 줄기 빛이었으니, 누군가에게 도현아빠는 “우드워커에서 가장 고마운 분”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우드워커의 전설”이었다. 2010년 7월 문을 연 경기도 용인의 창조나무공방에서 도현아빠 이중기 작가를 만났다.
도현아빠의 목공 일대기
이중기 작가가 목공에 빠지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아들 도현이가 쓸 책상을 아빠가 직접 만들어주면 아이에게 좋은 추억거리가 되겠다는 소박한 생각이었다. 2007년이면 원목가구 DIY 동호인 수가 제법 되던 때였다. DIY는 대체로 199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로 개념이 들어와 2004년 7월부터 단계적 시행에 들어간 ‘주 5일 근무제’의 태동과 맞물리며 폭발적으로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사)한국DIY가구공방협회도 2007년 설립되었으니 당시 대중화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기초적인 공구 몇 가지로 집성목 재단업체에 주문한 부재를 조립하는 수준의 소위 ‘베란다공방’이 시초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무로 가구를 직접 만드는 재미는 커져만 갔다. 당연히 궁금한 것들이 쌓이고, 도전하고 싶은 과제들이 늘어갔고 사고 싶은 공구들도 많아졌으며, 집안에서 먼지를 날리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잔소리도 늘어갔다. 이중기 작가가 운영하던 음악 스튜디오에 목공작업실을 꾸미면서 그의 작업 목록도 벤치, 아일랜드식탁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목공을 향한 열정은 끝없이 불타올랐고, “산술급수적으로 느는 기술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는 눈높이”에 관심이 실용가구를 넘어 짜맞춤에 이르자 좀더 전문적인 실력을 쌓고 싶다는 도전의식이 배가됐다.
2009년에는 드디어 “장인정신이 담긴 제대로 된 가구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엘림직업전문학교(현 남부기술교육원) 가구디자인과에 입학하는 수준까지 이르렀으니 목공에 대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가히 짐작이 된다. 7개월 과정의 전문 목공 교육을 마치고 졸업전시회까지 끝나자 이번에는 번듯한 작업실을 열겠다는 도원결의가 이어졌다. 창조나무공방은 학이중기 작가와 학교를 같이 다닌 동기들이 공동으로 출자를 해서 시작한 공동작업실 형태의 공방이었다.
그로부터 햇수로 6년이 흘렀다. 그 사이 이중기 작가의 목공 작업은 그의 바람대로 깊어지고 전문화됐으며, 엘림직업전문학교 동문 합동전시회를 비롯해 수차례 전시회에 참여했다. 같이 공방을 시작한 나머지 6명의 목우들은 다 떠나고 그만 홀로 남아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도 그 사이의 변화다. 그가 공방장으로 운영하는 창조나무공방은 현재 7명의 취목인들이 열쇠회원으로 있으며, 이중기 작가는 얼마 전부터 수강생을 모집해 짜맞춤 가구 강의를 하고 있다.
장인정신이란 무엇인가
이중기 작가가 현재 주로 작업하고 있는 작품들은 리클레임드우드(reclaimed wood) 혹은 스크랩우드(scrap wood)로 불리는 것으로 나무 조각을 수십 개, 수백 개씩 세로로 이어 붙여 넓은 상판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버리기가 아까워 쌓아 둔 특수목 자투리를 어떻게 활용할까 하는 궁리에서 나온 업사이클링 디자인이다.

“사방으로 수축팽창을 하기 때문에 이런 방식은 닫힌 구조의 가구를 만들 때는 하자가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아요. 세로로 쪼개짐에 대한 취약성도 많아 나무의 순리를 거스르는 방식이죠. 시간도 오래 걸리고 번거롭고 실패 확률도 높지만 치밀한 집성으로 이으면 한 덩어리로 보일 정도로 안정성을 유지해요. 초기에는 실패도 많았지만 스툴 크기로 시작해서 이제는 꽤 큰 크기의 책상까지 안정적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이중기 작가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런 방식의 작업을 수년 째 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전통 조각보처럼 비정형적인 패턴의 분할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엘림직업전문학교 졸업작품의 모티프도 조각보와 몬드리안 패턴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장인정신에 대한 경외심이다. 이중기 작가는 장인정신이 녹아 있지 않은 디자인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중기 작가가 생각하는 장인정신은 미시적으로 파고들면서 완성도를 추구하는 것이다. 과정의 완결성을 무시하면 필연적으로 사상누각의 결과물이 나온다는 신념이 남들이 기피하고 심지어는 주변 사람들조차 말리는 힘든 방식에 도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가구 디자이너 혹은 가구 오브제를 만드는 작가로서의 디자인 감각은 이중기 작가가 대학시절부터 흠뻑 빠져들었던 음악에서 출발한다.
“음악 작곡과 가구를 만드는 일은 유사성이 많아요. 재료들을 어떤 식으로 배합하고 구성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가구 역시 형태든 재료든 조합하는 방식에 따라 느낌이 달라져요. 제가 집성을 통해 비정형적인 패턴을 구성하는 건 좀 확대해서 얘기하자면 나무에 리듬감을 주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색깔이나 면 분할의 버라이어티한 변화나 진행성이 일종의 리듬감이죠. 여러 방식으로 집성을 하면 시각적 리듬감이 활발해져요. 음악을 오래하면서 가구에서도 음악적인 리듬감을 표현하려는 경향이 생긴 것 같아요.”
이중기 작가는 나무를 집성 할 때 크기, 색깔을 모두 랜덤하게 배치한다. 일률적으로 하는 건 패턴이 금방 보여서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디자인을 할 때는 항상 의외성을 염두에 둔다. 우연성의 음악처럼 의도치 않은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그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나에게 남겨진 길을 찾다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이중기 작가는 열아홉 살이 돼서야 검정고시를 준비해 대학에 들어갔다. 어려운 청소년기를 보냈으니 대학에서 공부에 매달렸을 법도 한데 그가 정작 빠진 것은 클래식 기타였다. 독주회를 세 차례나 할 정도로 재능이 있었지만 경제형편은 이번에도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기타를 배우기 위해 스페인 유학을 꿈꾸던 그는 이벤트회사의 기획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어야 했다. 음악을 했던 경험 탓에 이벤트 음악을 도맡았던 그는 광고음악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음향전문가 김벌레 작가 밑에서 광고음악과 함께 우리나라에 막 도입되기 시작한 컴퓨터 음악을 독학으로 공부했다. 5년가량 있다가 독립을 해서 나오니 새로운 길이 보였다. 이중기 작가는 스튜디오를 열고 행사 성격에 맞춘 음악을 작곡해 행사에 오리지널리티를 부여하는 콘셉트로 점차 업계에서 입지를 넓혔다. 찾는 업체들이 많아지면서 제일기획 같은 메이저 광고대행사와 일을 했다. 커리어가 쌓이면서 유니버시아드대회, 전국체전, 월드컵 같은 큰 행사의 음악감독까지 맡을 정도로 업계에서 승승장구했다.
“저는 스스로 뭔가를 창조하는 DNA가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그걸 믿고 열심히만 하면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뒤따를 거라고 낙관하면서 살았죠. 음악에서도 제가 스스로 길을 개척해 큰 어려움 없이 스튜디오를 운영했어요. 성공도 뒤따랐죠. 그런데 돌아보니 아쉬움이 많은 삶이었어요. 음악은 했지만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은 하지 못하며 살아온 거예요. 가구를 디자인하고 만드는 데 있어서는 다른 선택을 하고 싶어요.”
무엇을 만들 건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야 만족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또 쉽고 빠른 방식으로 만드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가구를 접하면서 이중기 작가는 어려운 길을 가더라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정직한 노동이 담긴 짜맞춤 가구를 만드는 게 곧 장인정신이라는 신념을 세웠다. 수익을 내야하는 공방을 운영하면서 그런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가져가는 것은 쉽지 않지만 이중기 작가는 그 길이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 음악 스튜디오는 거의 손을 놓다시피 하고 공방에 주력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수익모델을 고민해 1인 가구를 겨냥한 실용가구 디자인도 구상해 만들고 있지만 혹시라도 자신이 디자인 한 실용가구가 대박이 나서 잘 팔린다고 해도 거기에 집중할 생각은 없다. 그가 가구에서 이루고자 하는 성취는 ‘잘 팔리는 가구’가 아니라 ‘의미가 있는 가구’이기 때문이다. 이중기 작가는 오브제로서의 가구를 만들고 싶다는 방향성이 뚜렷하다. 자기 방향성을 유지하면서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쉽지 않은 길이 그의 앞에 놓여져 있는 셈이다.

“본격적으로 가구를 만들고 디자인을 고민한 게 이제 고작 20년이에요. 아직은 아마추어라고 할 수 있죠. 한 분야에서 수십 년은 흘러야 전문가가 될 수 있어요. 전문가가 되기 위해 지금은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해보는 거죠. 관건은 시간이에요. 포기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시간투자에 인색하다는 거예요. 특히 목공 분야는 물리적인 시간이 다른 분야보다 많이 필요해요.”
자신을 믿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언젠가는 꿈이 이루어질 거라는 이중기 작가의 낙관은 실은 진리에 가깝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그 꿈을 막아서는 이유들 때문에 지레 포기를 할 뿐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려는 이중기 작가의 용기가 부디 꺾이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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