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훈 개인전 ≪꿈꾸는 선(線)≫,,직선이 흠모하는 곡선의 별무리

칼럼 / 육상수 칼럼니스트 / 2025-11-21 11:32:52

 

하늘을 본다. 땅 위의 세상만사 제쳐두고 하늘을 본다. 하늘은 시선이 인지하는 비물질의 실체 없는 공간이다. 꿈과 이상의 안식처이자 동경과 회환을 위한 대안공간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보는 순간, 땅의 의식과 사물은 희미해지고 무한의 공허는 어떤 삶을 도려내 도피시킨다. 그곳에는 인위, 소요, 집착, 애욕, 허영의 그림자 언어는 없다. 그저 구름 몇 점과 헤아릴 수 없는 밤의 별과 별무리가 순례할 뿐이다. 신화와 죽음의 그림자, 사유와 집착의 부산물이 감지될 수 있으나, 보면 볼수록 밤하늘의 별은 점점 선명해지고 세속은 급속히 망각한다.

유리작가 이태훈이 별을 만나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우연과 필연의 공동전선일 수도 있다. 늦은 시간, 작업실을 나설 때 지친 몸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잡목 위로 스치는 별의 흔적이 작가의 시선과 마주쳤다. 밤의 별을 보는 일이 반복되는 시선만큼 마음의 고요가 다가왔다. 작가만의 잡념과 불안의 칼날은 무뎌갔고 감각은 평화로워졌다. 신이 인간을 두 발로 설 수 있게 한 것은 별을 볼 수 있게 함이었던가? 언제부터인가 작가에게 별과 별무리는 물리적 대상이 아닌 사유의 캔버스로 다가왔다. 그 캔버스 위에 선을 그어내려 갔다. 선은 평행하고 엇갈리고 엉키면서 무리를 이루었다. 다시 무리가 무리를 이루어 은하수를 그렸다. 마음의 캔버스에 별무리가 새겨졌는지, 별의 캔버스에 마음이 그려진 것인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아무튼, 그 자리에 작가의 비생산적, 비유용성의 좌절감을 안치했다. 땅과 하늘의 중간 지점에 자생하는 별무리 궤도를 선이 부유하면서 새로운 감각이 피어난 것이 분명하다.

 


작가는 2년 전, 민들레 홑씨의 가는 외선 무리를 소재로 첫 전시를 열었다. 단순한 선의 반복으로 단색화의 미덕에 다가가고자 했다. 유리 속을 파고드는 선은 우주의 질서처럼 질서정연했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엄격한 선의 그리드에 변화가 필요했다. 바람에 의지해 홀로 떠다니는 민들레의 여린 선은 대지의 표면 위에 하강해 생명을 틔웠다. 민들레 홑씨가 그리는 세계는 궁극적으로 하강 에너지다. 하지만 작가의 실존적 홀씨는 대지에 안착하기보다 상승 기류를 타고 우주 공간을 부유하면서 자유로운 선을 그리고 싶었다. 몸 따라 마음 가듯, 작가적 시선은 번번이 천상계 밤하늘을 향했고 영혼에 입맞춤하듯 별무리를 포용했다. 마침내 그의 가는 선은 지상을 떠나 공간으로 위치 값이 이동했다.

알베르 카뮈는 “창조는 한계와 무용성을 향해 저항하고 의식하는 것”이라고, 그리스 시인 핀다로스는 ‘불멸의 삶을 갈망하지 말고 가능의 영역을 살기 위해 노력하라’라고 말했다. 예술은 한 인간에게 주어진 상황의 한계를 인식하고 몸의 감각이 지시하는 행동과 언어에 충실할 때, 비로소 그 진정성이 피어난다. 작가 정신이란, 의미의 신경망에 부단한 자극을 주는 것이고 몸의 감각에 대응해 파동을 일으켜야 한다. 예술가는 정신과 몸의 감각이 부조리한 상태를 이룰 때, 분연히 일어서서 혁명가의 외투를 걸치고 투사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  

 


이태훈은 두 번째 개인전을 통해 기존 작품의 한계와 고립에서 벗어나 선이 그린 유리 작업의 시감각적 유용성을 재조명하고자 했다. 또한 작품의 유한성을 살피고 더듬어 ‘살아 있음’의 실존적 징후를 직관하고자 했다. 야만적 폭력성이 아닌 식물성 자유를 담고 싶었다. 민들레 홑씨가 거친 바람에 떠밀려 지상을 이동할 때 부르짓는 생명의 소리와 파동을 별에 전하고 싶었다.


‘꿈꾸는 선(線)’은 순간에서 순간으로 이동하는 우주 질서에 반응하는 한 예술가의 열정적 서사다. 그것은 세상 부조리의 증거일 수도, 예술가의 모진 삶의 투쟁기일 수도, 미지의 세상에 대한 동경일 수도 있다. 자신의 색을 칠하고 조각하는 것이 예술가의 초상이라면, 작가는 기꺼이 하늘에 선을 긋고 그것이 이루는 선의 무리를 유리에 녹이는 것으로 현실의 문제를 풀어가고자 했다.

우주는 직선운동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다. 별이 거처하는 우주는 물질 입자의 에너지 운동이 생멸하는 암흑의 공간이다. 미립자 파동이 자가 발전하는 가운데 물질은 직선 운동을 펼치면서 거대한 덩어리를 이룬다. 그것이 바로 별이다. 천억 개의 별이 모여 다시 천억 개의 무리를 이루는 상상 불가의 공간이다. 우주 공간의 한 점에도 이르지 못하는 행성에서 생명체로 존재하는 인간, 1그램도 채 미치지 못하는 민들레 홑씨는 대우주의 고유한 질서를 접하지 않고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말할 수 없다.

먼저 그는 수직으로 내려앉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동경하기로 했다. 정신착란의 고흐가 상상한 별은 우주 그 자체였다. 고흐의 별이 땅과 하늘의 수직 질서를 이룰 때, 이태훈은 중력에 기대어 별무리의 신비와 황홀을 선의 유동성을 차용해 유리에 조각했다. 비록 삶은 억압과 부당함의 연속이겠지만, 작품에서 조차 자기 해방을 이루지 못한다면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었으리라. 이성을 버리지는 않되 몸의 오감에 따르기 위해 부단히도 애썼다. 함의적 관념 같은 것들은 모조리 버렸다. 오로지 별무리의 자전과 공전에 매몰되어 우주 공간을 식물성 감각으로 물들게 하는 경이로운 작업이고자, 침묵하는 선의 이미지를 만나고 싶었다.

신작 ‘꿈꾸는 선(線)’은 이태훈의 은신처이자 내밀한 안식처이다. 그는 매일 유리 집에 숨어들어 불을 지르고 바람을 일으킨다. 유리의 상태는 형태가 되고, 형태는 상태에 거주한다. 유리 작업에서 블로잉 기법은 작가의 입술을 지나온 호흡의 밀도에 의해 부풀어진 액체 상태이겠지만, 그것은 무정형이 정형이 되고, 무감각에서 감각이 탄생하는 숭고함의 일면이기도 하다. 유리 점액에서 구(球)를 이룬 신작은 우주의 빅뱅과 견주어야 한다. 그것은 카오스를 지나 코스모스에 이르는 원시성 우주를 기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의 블로잉은 호흡을 넘어 생명의 질서를 가늠하는 것이고, 창작의 근원에 근접하고자 하는 에너지다.  

 


 

작가는 별 헤는 밤을 지나 점멸하는 유성을 채집해 자신의 유리 원형에 안착시켰다. 민들레 홑씨의 식물성 사유를 호흡에 유도했고, 고흐가 되어 수직의 별무리로 유리 집을 지었다. 그는 매일 밤 별무리와 숭고한 만남을 이루기 위해 고개를 더 높이 들어올렸다.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가 별 자체임을 알리고 싶었다.

그의 유리 작업은 삶의 이치를 자각하는 물질 운동이자 생의 조각이다. 물질을 통해 우주의 숨은 뜻을 살피고 진리와 아름다움을 체험하는 예술의 한 통로다. 유리 작업에 새긴 선의 율동과 별무리 행진은 시각을 벗어나 오감에 이르러야 한다. "생(生)은 선물이고 나는 컵의 빈 공간과 맞닿은 태초의 은하수로 돌아갑니다.”라고, 죽음을 앞둔 문학평론가 이어령의 고백이 새삼 각인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별의 질서가 불가사의하게 질서정연하듯, 이태훈의 선 작업 또한 지상에서 우주의 끝 지점까지 가지런히 이어지는 시작점에 다시 놓여 있다.

꿈은 꿈 자체일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했던가? 길 잃은 양떼를 찾아가는 목동이 초원에 누워 별을 바라보는 낭만이 삶의 실존에 부서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작가의 유리 표면에 조각된 선의 무리와 우주의 별무리가 이웃이 되고, 안과 밖이 하나가 되고, 속과 겉이 통섭이 되는 그런 시절에 잠시라도 머물고 싶다. 그의 작업은 땅을 딛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생의 홑씨가 되고 별의 이방인이 되어 삶의 곁에 머무는 낭만의 고향이 되어야 한다. 오늘 고개 들어 하늘을 보았는가, 선이 그리워한 밤하늘의 별무리가 꿈이 되고 현실을 위로했는가. 직선과 곡선이 율동하는 ‘꿈꾸는 선(線)’은 그것에 대한 해답을 전하기 위해 탄생한, 또 하나의 별이다.

・이태훈 개인전: 꿈꾸는 선(線)
・갤러리스클로 2025. 11. 21 – 12. 20
・OPENING: 11. 21 (금) pm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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