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마음과 어른의 지혜

건축 / 송은정 기자 / 2024-06-14 13:35:59
8살 꼬마 적에 바라보았던 세상은 지금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었을 테다. 같은 세계와 공간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어린이학습센터 ‘스프링’은 아이의 천진난만함과 어른의 합리성이 고루 투영됐다.

 

미취학 아동을 위한 홍콩의 어린이학습센터 ‘스프링’은 그 이름처럼 밝고 통통 튀는 공간이다. 봄을 대표하는 연두빛 컬러를 중심으로 화사한 파스텔톤의 색이 아기자기하게 덧입혀져 포인트를 준다. 내부 마감재로 사용된 나무 합판은 당연하다는 듯 실내 환경과 어우러진다. 어린이를 위한 장소이니만큼 자연의 푸릇푸릇함을 느낄 수 있도록 컬러와 소재를 선택한 것은 긴 설명이 없어도 쉽게 수긍된다.


여기까지는 기존의 대다수 어린이 공간에서 선택하는 일반적인 디자인 전략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간들이 내세우는 콘셉트, 이른바 ‘아이의 눈’으로 꾸며졌음을 강조하는 공간은 종종 유치한 분위기만을 남긴 채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지루할 틈이 없는 공간 속의 공간


 

스프링을 인테리어한 디자이너 조이 호(Joey Ho)는 이러한 장소의 한계성을 극복하고자 했다. 센터 내부에 배치한 다양한 형태의 ‘공간 속 공간’을 통해 움직임의 동선을 확장시킨 것이 그 첫 번째 시도다. 덕분에 아이들은 실내에서도 야외에서처럼 보다 활동적으로 뛰어다닐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센터 중심의 놀이 공간에 세워진 커다란 트리하우스와 그네는 외부의 놀이터를 안으로 고스란히 옮겨둔 것이다. 굵은 나무기둥 위로 2개의 사각형 박스가 얹혀 있다. 뒷마당의 나무 위 오두막을 닮은 이 공간은 미끄럼틀과 나선형 계단을 이용해 오르내릴 수 있다. 여기에 트리하우스의 벽면 일부분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 아이들의 모험심을 더욱 자극하는 효과를 얻는다.

 


독서 공간을 이야기할 때 쉽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딱딱한 책상과 의자가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는 정숙한 교실이다. 장시간 책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어린이들에게는 고역인데 공간마저 이미 지루하다. 스프링은 아이들이 책을 읽고 공부하는 학습 공간의 일반적인 형식을 깨뜨린다. 숲속 동굴이나 누에고치를 떠올리게 하는 곡면체의 아담한 공간은 꼭 자신만의 아지트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어른에게는 다소 답답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덩치가 작은 아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장소다.



어른들은 모르는 세상


사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사고의 틀을 완전히 뒤바꾸지 않는 이상 눈 가리고 아웅 식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스프링은 아이의 천진난만한 정서를 감안하는 동시에 어른의 경험이 더해진 기능적인 공간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이것이 디자이너의 두 번째 시도다.

 


철저한 계산으로 디자인된 실내 인테리어는 아이들에게 즐거움과 교육적 효과까지 동시에 안겨준다. 대부분 건물의 리셉션이 그렇듯이 스프링의 이곳 역시 어른의 키에 알맞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때 아이들은 리셉션 카운터에 설치된 작은 계단을 올라 스텝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 계단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던 스텝의 얼굴을 계단 위에서 발견하게 되는 일련의 소소한 과정조차 아이들에게는 재밌는 놀이이자 소통을 배우는 기회가 된다.

 


이와 비슷한 예는 여럿 있다. 어른의 몸에 맞춘 규격화된 사이즈의 문 옆에는 미취학 아동의 평균 키가 적용된 미니 사이즈 문이 나란히 설치해 두었다. 커다란 문에 익숙했던 아이들에게도 작아진 문을 드나드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다. 2단 분수 형태로 제작된 화장실의 세면대 역시 이러한 맥락이다. 낮은 위치의 아랫단에서는 아이들이 손을 씻고 위쪽은 어른들이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하나둘씩 따지고 보면 볼수록 어른의 세계보다 낮고 작지만 끝없이 넓은 아이의 세계를 결코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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