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두 개인전 《언더랜드: 황금망원경》...신기루를 좇는 현대인의 열망

아트 / 편집부 / 2025-08-15 16:11:14
‘신기루’, ‘반복’, ‘기억’, ‘인식’라는 작가의 언어
한국 사회의 정서적 지형도를 드러내 깊은 성찰의 시간을 제공
8월 22일까지 갤러리 스클로에서 전시
▲ 김남두개인전_황금망원경

 

김남두는 1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순응(conformity)’과 ‘획일성(uniformity)’이라는 주제를 집요하게 탐구해왔다. 그는 유리, 도자, 혼합 재료를 조형 언어로 삼아, 우리가 일상 속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가치 체계와 사회 규범, 권위 구조, 그리고 그것들이 개인에게 미치는 압력을 직시하며 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시도해왔다.

그의 작업은 사회와 국가, 가정, 그리고 기억과 의례의 층위 속에서 개인에게 끊임없이 부과되는 기대와 의무의 메커니즘을 조형화하는 동시에, 그 안에 숨겨진 권력과 제도의 얼굴을 드러낸다. 이번 개인전 《언더랜드: 황금망원경》은 바로 이러한 지속적인 질문과 관찰의 산물이다.

그는 개인의 선택과 자유, 주체성을 중시하는 현대적 가치관을 받아들인 세대의 일원으로서, 유교적 충성과 의무의 덕목을 근간으로 하는 전통적 질서와 그것이 빚어내는 사회적 충돌에 주목해 왔다. 유럽·미국 중심의 문화 코드와 그 영향을 강하게 받는 한국의 젊은 세대는, 지난 수십 년간 점차 약화되고 있는 전통적 가치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가지게 되었고, 특히 가부장적 가족 구조에 내재된 위계질서와 기대에 저항하는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 김남두개인전_황금망원경 시리즈, 갤러리스클로 제공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순응’이라는 원칙은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으며, 연장자에 대한 존중, 상명하복의 관계는 일상과 문화 곳곳에 스며있다. 그 속에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 역시 깊은 애정이라는 이름 아래 때로는 억압적이고 일방적인 요구로 변질되곤 한다.

작가는 교육, 직업, 사회적 지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어떻게 청년 세대에게 주입되고 강요되는지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그는 유년기의 순수함과 놀이를 통한 학습의 자유로움을 회복하고자 하며, “오늘날 한국의 아이들은 대량생산된 장난감 같다. 개성과 인격도 지닌 존재가 아니라, 언제든 대체 가능한 플라스틱 인형이나 종이인형처럼 취급된다.”고 말한다.

그의 조각은 팝 문화와 대중적 기호를 기묘하게 차용해 관람객에게 유쾌함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이러한 감정들이 부모 세대의 기대와 충돌할 때 생겨나는 아이러니를 자각하게 만든다. 그는 애니메이션, 설치, 조각을 결합한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이 작가가 상상한 ‘이면의 세계(Underland)’에 몰입하도록 유도한다. 김은 “소비사회에서 너무나 익숙해진 상징물들의 원래 의미와 기능을 재해석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사회적 메시지와 철학을 시각화하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 김남두개인전_전시전경, 갤러리스클로 제공

 

《언더랜드: 황금망원경》은 총 네 개의 구성 요소—애니메이션, <황금망원경(2세대)>, <유물: 가면>, <유물: 신기루>—로 이루어져 있다. 이 프로젝트의 서사는 2013년에 제작된 여섯 점의 조각(그림 2)<황금망원경> 시리즈에서 시작되며, 이들은 모두 실물 크기의 인형 형태로 표현된 아이들이다.

그는 이 조각들을 통해 부모의 과도하게 복잡한 애정과 왜곡된 기대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이 인물들은 인형과 어린아이의 특징이 혼합된 형상으로 묘사되며, 몸에 맞지 않는 양복과 드레스를 입고 있다. 이는 부모들이 자녀에게 너무 이른 성숙을 요구하고, 그들의 가치와 기대를 아이에게 강요한다는 현실을 은유한다. 백색 유약으로 마감된 이 비어 있는 도자 조각들은 영혼을 잃어버린 채 자라나는 세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이들 조각의 눈에는 커다란 황금색 망원경이 부착되어 있다. 유리로 주조된 이 망원경은 자녀가 원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부모의 기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자녀가 감당해야 할 무게로 기능한다. 내부가 반사되는 이 망원경의 렌즈는 관객이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며, 그 안에서 자신 역시 이 사회의 압박과 가치 체계에 얼마나 깊이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 김남두개인전_전시전경, 갤러리스클로 제공


황금으로 장식된 망원경은 귀중한 선물처럼 보이지만, 실은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상징적 부담이며, 자녀를 위한 부모의 희생—특히 교육이라는 수단에 집중된 희생—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 중심주의는 결과적으로 극도의 경쟁사회와 정서적 파열, 불안, 우울, 심지어 자살과 같은 사회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김은 이러한 현실을 비판하는 동시에, 한국 사회의 깊은 구조적 결함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려 한다.

김남두가 작업의 중심 매체로 삼는 점토와 유리는 모두 유연성과 투명성을 지닌 재료로, ‘신기루’, ‘반복’, ‘기억’, ‘인식’이라는 주제를 구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는 동시대 작가들 가운데서도 이 재료들이 지닌 본질적 성질을 가장 정교하게 활용하는 작가 중 하나로, 그 조형 언어는 개념적 깊이와 물질적 숙련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유리가 가진 반사, 왜곡, 투과, 확대, 그리고 깨지기 쉬운 속성은 그 자체로 현대 사회가 청년 세대에게 심어놓은 이상과 욕망, 그리고 그로 인한 좌절과 결핍을 은유하는 도구가 된다. 김은 이를 통해 ‘신기루(Fata Morgana)’—즉, 사회가 제시하는 성공의 환상—을 상징화하며, 물질적 조형을 통해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보다 선명하게 전달한다. 

 

▲ 작품의 주제를 애니메이션으로 영상화 했다, 갤러리스클로 제공 

 

이번 전시 《언더랜드: 황금망원경》은 현실과 환상, 존재와 부재, 기대와 좌절의 경계에서 작동하는 조형적 세계를 구현한다. 김남두는 이를 “현대 사회의 이면”이라 부르며, 조각이라는 언어를 통해 그 복합적 감정과 구조를 동시에 포착하고자 한다. 작품 속 세계는 자본주의와 유교적 유산, 가족과 교육, 사랑과 억압이 얽힌 한국 사회의 정서적 지형도를 드러내며, 관객에게 깊은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글 | 엘리자베스아그로 Elisabeth Agro (현 필라델피아미술관 현대공예 및 장식예술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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