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가구의 장인들... ‘일상을 더 아름답고 쓸모 있게’

디자인 / 유재형 기자 / 2022-01-27 21:05:47
부자이건 가난한 자이건 모두가 안락한 의자에 앉을 권리가 있다
북유럽가구의 시작과 흐름
자연에서 훈련된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라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그리고 덴마크. (춥다.) 부족한 것이 많아 서로 돕는 것이 필수인 만큼 그들에게서 평등주의가 싹튼 여지가 아름답다. 기능적이며, 유기적이나 계층과 신분의 격차가 엿보이지 않는 디자인 문화는 자연과의 공존에서 배운 지혜일 따름이다.

겨울이 길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북유럽은 가정의 만남의 장소로 활용했으며 개성을 살려 따뜻하고 분위기 있는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또한, 이들은 곳곳에 깔린 나무를 활용해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스스로 제작했다. 나무를 많이 다루고 사용하는 문화에서 자라난 이들은 플라스틱 장난감보다는 나무로 깎아 만든 공예품을 좋아한다.

어릴 때 아버지가 깎아 만든 나무 장난감들을 생각하며 아이는 성인으로 자라 또 하나의 나무 디자인을 새긴다. 이러한 생활양식은 섬세하고 손재주가 좋은 사람들을 창출해냈다. 북유럽의 수공예품이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선 실용성을 겸비한 것도 이러한 생활방식에서 기인한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이들을 묶은 교집합은 친숙한 자연자원인 ‘나무’였다.

가혹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친숙한 천연자원인 나무의 가공기술은 목조 건축과 가구, 바이킹 제작 등 선박건조에 활용되었다. 세계문화유산인 노르웨이 우르네스의 스타브 교회나 베스트폴 지방에서 발굴된 오세베르고(Oseberg) 호를 살피면 이들 민족이 지닌 우수한 목공 기술과 조형감각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북유럽 디자인의 정신인 ‘사용하기 쉽고 아름다운 조형미’로 발전했다.

<북유럽디자인>의 저자 안애경 씨는 북유럽 디자이너와의 교류를 토대로 그들의 정신적 토대가 자연과 맞다 있음을 밝혔다. “디자이너의 정밀하고 날카로운 일 속에는 자연과 가깝게 살아가고 그 자연에서 얻는 에너지를 일로 승화시키는 자연인의 본성이 숨어 있었다. 자연에서 본 무한한 공간을 마음속 공간으로 담아내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훈련된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본다. 야성적인 자연 세계와 극도로 발달한 인간 문명에 필요한 디자인이라는 양극단을 추구하며 그 접점을 찾는 일, 이 점이 바로 디자이너의 할 일이다.”  

 


북유럽은 지리적 여건상 공업화로 대변되는 산업혁명의 물결에서 소외되었다. 그러나 부정적인 영향보다는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왔다는 것은 지금의 북유럽 문화를 추앙하는 무리의 수를 살피면 알 수 있다. 천천히 돌아가고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이들은 문화의 변별력을 높이고자 노력했다. 이 때문에 북유럽은 근대화 과정 이후에도 독창적인 문화를 유지하며 스칸디나비아 부류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북유럽디자인이 시간을 두고 주목받는 이유는 대물림할 수 있도록 끝맺음이 완벽하고, 작품 속에 솔직한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다. 그 솔직한 감성이 통했으니 신뢰감은 변하지 않는 명성을 낳았다.

1900년대에 들어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목표로 세워진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가 유럽 전역을 강타했지만 역시 북유럽에서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 유럽 대다수가 바우하우스가 제안한 철제 프레임을 받아들였지만 곧 북유럽에서는 목재로 대체되었다. 나무만큼 디자이너의 생각을 실험해 보는 데 좋은 재료가 없다.

직접 자르고 다듬으면서 공예가의 정교한 작업은 발전한다. 이러한 생각은 1919년 스웨덴의 ‘일상용품을 더 아름답게’ 선언으로 이어진다. 일반 시민들이 평소에 사용하는 일상용품이야말로 아름답고 기능적이며 좋은 품질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여타 북유럽 국가에 전달돼 기능미를 갖춘 오늘날 북유럽디자인의 토대로 발전한다.

철학과 정신이 깃든 디자인 - 핀란드

핀란드 디자인 활동은 러시아의 통치하에 놓였던 1871년 핀란드공예학교, 1974년 핀란드공예.디자인협회가 설립되면서 본격화되었다. 핀란드인의 혼을 담은 디자인 활동은 독립운동에도 영향을 미쳐 국가 정체성 확립이라는 대의적 명분을 낳았다.


▲ Hugo Alvar Henrik Aalto / Vintage Alvar Aalto Stacking Stool Side Table

핀란드 민족을 대표하는 4인의 문화 예술가 - 핀란드 건국 서사시인 ‘칼레발리’를 그린 화가 악셀 갈렌-카레라, 러시아 통치하에 탄생한 명곡 ‘핀란디아’를 작곡한 장 시벨리우스, 헬싱키 중앙역을 설계한 미국 크랜브룩아카데미의 창시자 에리엘 사리넨, 교육자로서 공예와 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한 아르투 브뢰머는 핀란드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예술가이다.

핀란드 디자인의 경향은 인간과 자연을 고려한 환경디자인이 중심이다. 디자인 산업에서 상업적인 것보다 인간 중심과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는 것을 우선으로 디자인 개발에 나섰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단순하고 아름다우며 기능적인 핀란드 디자인은 주변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으며 디자인 속에 철학을 담고, 정신적 의지를 반영하는 일에 소홀함 없이 발전을 거듭해 왔다.

핀란드 디자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앞서 소개한 이들의 다음 세대인 위대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알바 알토이다. 그는 발터 그로피우스(독일), 르 코르뷔지에(스위스-프랑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미국)와 함께 세계 4대 건축가로 불린다.
▲ Hugo Alvar Henrik Aalto / Alvar Aalto 406 Lounge Armchairs


스칸다나비아 디자이너로서 알바 알토는 건축, 디자인 분야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다양한 가구와 조명기구 등을 제조했으며 판매에 이르기까지 상품성을 갖춘 디자인을 만들었다. 그는 성형 합판기술에 뛰어난 제조 담당 오토 코르호넨, 경리를 맡은 마이레 굴릭슨, 마이레를 알토에게 소개한 평론가 닐스 구스타프 할, 그리고 알토의 아내인 아이노 알토와 함께 알텍(ARTEK)사를 설립했다. 

 

이 조직은 알토의 디자인을 이해하고 강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신뢰를 쌓아 나갔다. 알토는 핀란드에 자생하는 자작나무 보급에 앞장섰으며, 스키의 굽힘 가공에서 영감을 얻는 '톱질 굽힘(Bend-ing sawing, 단단한 재료에 톱 눈을 새기고 그곳에 박판을 넣어 부분적으로 적층 합판 상태를 만들어 구부리는 방식)을 이용한 의자와 테이블을 개발했다. 이 제품들은 1931년 런던박람회에서 발표돼 주목을 받았다.


▲ 핀란드. ILMARI TAPIOVAARA

 

알토에 이어 핀란드에서는 스태킹(Stacking) 구조와 폴딩(Folding) 구조 등 합리적인 디자인을 창시한 알마리 타피오바라, 국제적 양식이라 할 수 있는 날카로운 디자인으로 주목받은 안티 누르메스니에메, 플라스틱과 같은 새로운 소재로 기능성을 추구한 유리오 쿠카포로, 이에로 아르니오 등이 활동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시모 해이킬리, 스테판 린드포스, 토마스 산델 등이 선배들의 과업을 이었으며 역사와 대중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노르웨이 - 실용예술, 인체 공학을 가구에 담다

노르웨이의 디자인 활동은 ‘피오르’라고 하는 거친 지리적 여건 때문에 북유럽 국가 중 가장 늦게 꽃을 피웠다. 이웃한 북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노르웨이에서도 1918년 응용 미술 혹은 실용 미술이라는 의미를 가진 ‘Brukskunst’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며 응용미술협회가 설립되었다. 이 말은 다른 북유럽 국가에 보급돼 디자인과 공예 분야에 쓰이게 되었다.

▲ Peter Opsviks / Stokke TRIPP TRAPP Highchair


노르웨이인들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제품에 목적에 맞는 기능성과 심미성을 요구했다. 그들은 일상용품을 통해 생활수준을 높이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디자인의 사회적 사명을 디자인의 목적으로 내걸었다.

1930년 이후 노르웨이에서도 다양한 디자인 전시회가 진행되면서 제조업체와 소비자에 대한 응용미술계의 활동은 눈에 띄게 증가했다. 그러나 앞에서도 디자인 후발 주자로서의 한계는 분명해 유리 공예의 하델란, 도자기의 포스크룬드 등의 일부 기업의 주도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 Peter Opsviks / VINTAGE MIDCENTURY BALANS ERGO DESK CHAIR


그러나 가구 분야에서는 1950년대 말부터 뛰어난 디자이너들이 배출되었다. 한스 브라트루드, 롤프 라스타드, 아돌프 렐링, 잉마르 렐링, 시거드 러셀 등이 차례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노르웨이 가구를 세계에 알리게 된 것은 피터 옵스비크(Peter Opsvik)이다. 그는 1970년에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의자인 ‘트립 트랩’을 스토케사에서 발표하며 단숨에 국제적인 디자이너로 발돋움했다.

또한, 그의 명성을 공고히 다진 ‘발란스 체어’를 발표했다. 제3의 자세라고 불리는 이 앉는 방법이 주목받았던 이유는 인체공학의 개념을 최초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옵스비크는 인간공학 프로젝트 한 일원으로 노르웨이 디자인의 높은 수준을 전 세계에 선보였다. 이를 계기로 노르웨이 디자인은 세계적인 경향으로 자리 잡게 된다.

덴마크 - “가구 미학은 황금비율에서 나온다”

덴마크 디자인은 세계적인 가구 디자이너를 탄생시킨 북유럽 가구의 본류로 통한다. 하지만, 1900년대 초 만해도 덴마크의 가구디자이너는 영국이나 프랑스로 떠나야 했다. 덴마크의 사회적 분위기는 본국의 오래된 가구 양식을 답습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그런 가구업계에 새로운 활력을 일으키며 덴마크 가구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공로자가 바로 덴마크 현대가구 디자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카레 클린트이다.


▲ kaare klint / Folding Chair


그는 1924년 왕립 예술아카데미 건축학과에 가구 코스가 신설하였고, 1944년에는 가구학과가 개설해 초대 교수에 올랐다. 그는 단지 가구디자이너의 길을 걷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스웨덴의 칼 말름스텐이 그랬던 것처럼 후학 양성에 힘써 수많은 인재를 양성했다.

클린트가 가구업계에 남긴 공로 중 하나가 인간공학 개념을 도입한 사례이다. 그는 가구와 제품 그리고 인간의 관계를 검토해 가구가 목적에 적합도록 가구를 만들었다. 이를 실행하고자 덴마크인의 평균 체형을 가진 인체의 다양한 자세를 치수로 측정하고 남겼다. 또한, 덴마크의 평균 가정의 인원수와 그 안에 사용되는 일상용품의 종류와 수, 그것들의 치수 등을 조사하는 열정을 보였다.


▲ kaare klint / table chairs design


여기에서 얻은 자료를 기반으로 설계된 수납가구는 매우 기능적이었다. 예를 들면 그전까지 같은 외형과 치수를 가진 수납가구에 비해 그의 가구는 매우 기능적이어서 두 배 이상의 양을 수납할 수 있었다. 선반은 트레이로 되어 있거나 홈의 피치가 잘게 나뉘어 있어 수납물의 높이 조정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또한, 서랍 속 공간을 세분화할 수도 있었다. 현대 가구에 쓰이는 수납 방식이 그의 손에 의해 다수 발명되었다 볼 수 있다. 

 

또 다른 연구는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전통적인 양식의 가구에 주목하여 그중에서 보편적인 비율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재평가한 것이다. 그는 '고대는 우리보다 더욱 현대적이다.'라고 말하며 고전적인 양식의 가구 중세서도 현대에 통하는 장점이 있음을 역설했다.

당시는 독일의 바우하우스가 디자인과 건축에 큰 영향을 미칠 무렵이었다. 바우아우스는 근대화 물결의 상징이었다. 옛 시대의 것을 부정하고 예술과 산업을 통합해 산업화의 기치를 내건 것이다. 과거의 방식을 낡고 합리적이지 못한 것으로 여기는 성향은 유럽의 많은 국가들에 영향을 미쳤으나 클린트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마음으로 개량, 개선해 가는 '재설계'의 개념을 확립해 나갔다. 이것은 '축척의 디자인'을 낳았다. 재설계의 개념은 아름다운 비율을 지닌 명작을 탄생시켰다. 클린트가 주도한 이 두 연구는 기능성과 심미성을 겸비한 덴마크 디자인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스웨덴- “제품의 선택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스웨덴의 디자인 활동은 1844년 스웨덴 미술공예학교, 1855년 스웨덴 공예.디자인협회, 1874년 스웨덴 텍스타일아트우호협회, 1894년 스웨덴 가정공예협회가 만들어지면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러한 단체들은 각지의 길드에서 종사하던 예술가와 장인들을 이끌어 산업화의 현장으로 끌어들이면서 조직을 강화해 나갔다. 이때 등장한 신조가 '산업에 예술가를, 일상생활을 아름답게'였다.


▲ Bruno Mathsson / chair

 

바우하우스의 창설과 더불어 스웨덴에서는 스웨덴 디자인을 선도했던 그래고르 파울슨에 의해 '일상용품을 더 아름답게'라는 표어가 만들어져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쳤다. 또한, 사회적 사명감이 강조되었던 시대상을 반영해 또 하나의 구호인 '제품의 선택이 삶의 양식을 결정한다'가 등장했다. 이러한 생각에서 등장한 스웨덴의 디자인들은 1925년 파리만국박람회, 1927년 뉴욕 박람회에 발표되면서 '스웨디쉬 그레이스(Swedish Grace)'라는 찬사를 얻게 된다.

 

이들 박람회를 통해 유명인사로 등극한 이들이 에릭 구나르 아스플룬드와 그레고르 파울슨이었다. 1930년 박람회는 북유럽 모더니즘의 태생과 함께 기능주의 디자인과 장인 정신을 융합해 새로운 디자인 경향을 선보였다. 이러한 현상은 철저하게 일반 서민의 삶에 초점이 맞추어졌기에 사회 교육적 측면이 강조된 시기다.
▲ Bruno Mathsson / Varnamo 1962

스웨덴에는 기능주의 건축으로 알려진 에릭 구나르 아스플룬드, 그리고 가구 디자인뿐만 아니라 예술, 공예, 농업 등의 교육을 시행하여 수많은 크리에이터를 키워낸 칼 말름스텐, 1930년대 빈에서 우아한 디자인을 도입하여 스웨덴 디자인에 큰 영향을 준 요셉 프랑크, 1930년대 대표작 '에바(Eva)'를 발표한 이후 평생 안락한 의자를 추구한 칼 브루노 매트슨을 비롯하여 카를 악셀 애킹, 윙그베 엑스트룀, 칼 에릭 엑셀리우스, 오케 악셀슨, 뵈르게 린다우, 보 린데크란츠, 요한 훌트, 얀 드랑게르 등 수많은 디자이너가 등장해 '스웨디쉬 그레이스‘를 반영했으며, 요나스 보흘린, 비요른 달스트롬, 토머스 에릭슨 등의 후예에게 그 영향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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