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신현중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조형언어로 표출한다. 때로는 신화가 그의 작품으로 뛰어들고, 때로는 과학적 객관성의 세계가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달려온다. 신현중은 우리 민족의 이동 루트를 빙하기부터 추적하는가 하면, 한반도 문화의 원형을 쫓으며 단군신화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때로는 환경의 파괴 위에서 이룩된 인류 문명의 이기심을 꾸짖기도 한다. 신현중의 예술세계는 형태의 구현에 그치지 않고 신화, 과학, 역사 같은 매우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며 본질적인 주제들을 조형언어로 표현한다. 그리고 이 조형언어의 중심에는 ‘생명에 대한 사랑’이라는 일관된 키워드가 흐르고 있다.
생명의 근원에 대한 물음

신현중은 젊은 시절부터 생명의 기원에 대해 천착했다. 그는 우리 삶의 시원(始原)을 그리기 위해 세계의 오지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원시문화를 연구하고 고시대의 유물을 수집했다. 남미 아마존의 원시문화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원시 밀림을 탐험하는 것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신현중은 이러한 고고학적 탐구를 통해 생명과 기원에 대한 사유의 지평을 확장했으며 예술가로서의 철학적인 기반을 정치하게 가다듬었다. 그의 고고학적 탐색의 시간들은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가다듬는 예술적 수련의 시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신현중은 70년대부터 우주의 생명체를 다양한 모습으로 작품에 녹여왔다. 70년대에 작업한 <생의 기(氣)> 시리즈는 철, 동, 돌을 재료로 불완전함, 불균형으로 표상되는 생명성의 불안을 녹였다. 80년대에 들어서도 <소멸> <서식처의 기억> <석기시대의 기억> 등 생명의 근원과 인류의 기원을 추적하는 작업을 이었다. 1985년 작업한 ‘서식처의 기억’ 연작은 우리 민족의 시원을 쫓는 여정이었다. 이후 신현중이 잇따라 선보인 ‘신시(神市)’ 연작은 단군신화와 관련된 한반도의 문화적 원류를 찾는 탐험이었으며, 1986년에는 <하늘이 열리는 날>을 통해서 고조선의 건국신화를 형상화했다. 이 시기 신현중이 몰두했던 것은 역사의 시원 혹은 민족의 뿌리에 대한 탐구였다. 재료 면에서도 화강암, 흙, 동, 나무 등을 넘나들었고, 조형적 표현방식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형태를 표출했다. 오브제 위에 덕지덕지 흙을 붙이는가 하면 거친 돌무더기나 합성수지로 흙더미의 질감을 표현하는 등 재료의 거친 질감을 그대로 드러내며 비구상적 조형언어를 구사했다. 거친 질감으로 표현되는 그의 비구상적 조형언어는 “고고학적 관심과 작품을 담고 있는 공간의 제의성과 숭고함을 크게 강화”시켰다는 평가를 얻었다.

1980년대에 1990년대까지 신현중 조형세계의 핵심은 고고학적 상상력으로 인류의 기원을 표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1990년대 이후부터 신현중의 작품세계는 보다 근원적인 영역으로 확장된다. 1992년 다섯 번째 개인전을 통해 신현중은 ‘생태학적 조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시적인 안목을 세상에 선보였다. 작은 단위의 합판을 구조적으로 접합하여 형상을 만든 ‘신빙하기’ 연작은 환경의 파괴로 인해 닥쳐올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표현한 작품으로 작품이 만들어내는 스펙터클한 공간감이 인상적인 전시였다. 신현중의 사고는 1992년에 이미 환경파괴의 경고를 던지며 생태학적 가치에 대한 준엄한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자연을 파괴하고 정복하며 축적된 인류의 문명에 대한 비판적이고 도덕적인 그의 자각은 강하고 굵은 선의 위용을 통해 증폭되며 깊은 울림을 전했다.
조형언어의 변주

신현중은 1994년에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생명에의 경외를 조형언어로 표출했다. “모든 생명은 존재할 가치를 지닌다”라는 신현중의 생명철학은 “생명에 의미 없는 반복이란 결코 없다”는 선언으로 이어지며 생물학을 조형의 탐구 대상으로 삼는 새로운 지향성을 보여줬다. 이전까지 드러난 다소 추상적인 설치작업과 결을 달리하며 신현중은 구상적 언어로 ‘종의 기원’이라는 거대한 생명의 시원을 탐구했다. 특히 문명의 태초부터 인간에게 희생된 우제류를 조형언어로 끌어 온 것은 모든 우제류에 대한 경의이자 반성이기도 했다.
생명의 시원에 대한 탐구는 신현중이 90년대 이전부터 보여주었던 추상적 설치작업과 1992년의 신빙하기 연작에서 동일하게 나타난 주제였다. 이러한 주제의식은 1994년에 들어서는 자연과학적 사고 안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신빙하기와 비교해 합판 접합의 기술적 완성도도 훨씬 견고해진 ‘종의 기원’ 연작은 “의욕적으로 한국적 조형의 지평에 팽팽한 생명을 가시화“시키려고 노력했던 신현중의 예술세계가 지향하는 바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1997년과 1998년 연이어 선보인 ‘식물기’ 연작은 신현중의 과학적 사고가 예술세계로 투영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일련의 작품들은 고고학적 탐구에서 출발한 신형중의 생명관이 동물과 식물의 기원과 탐구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현중은 식물기 연작이 모티프로 삼은 포포자식물과 관련된 다양한 상황을 연출하며 조형작품이 자연사 박물관의 표정으로 읽히는 독특한 경험을 관람객에게 제시했다. 박테리아를 탐구하는 방식은 아예 과학기술의 언어를 끌어들인다. 이 전시에서는 박테리아의 기생적 번식을 설명하기 위해 벽에 소형 현미경을 부착하고 현미경을 통해 얻은 박테리아 영상을 슬라이드 프로젝션으로 확대해 보여주는 도특힌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생태계의 순환 과정을 은유했던 식물기 연작은 신현중이 자연과 생명을 인식하는 방식이 외연을 확장하며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현중은 2000년대에 들어 <무궁화 동산 - 평화세탁> <바다 생명체와 도롱뇽> 등의 작품을 통해 생명의 신비를 기이한 동물체에 빗대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신현중은 여러 요소로 주제를 구성하는 이전의 방식과 달리 단일 조형물을 통해 대화를 시도했다. 신현중은 열대우림의 초록도마뱀으로 표상된 생명의 기원을 개방 공간에 설치하여 환경미술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새로운 조형을 향한 여정

신현중이 추구한 새로운 조형언어는 작품의 장소성과 공간의 배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추구로 연결된다. 신현중은 1980년대부터 새로운 조형과 개념으로서의 설치작업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런 관심은 생명이라는 철학적 기반과 만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고 실험되었다. 신현중의 예술세계에서 가장 유의미하게 볼 또 지점은 그가 개념에 천착하고 그 개념을 작품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해왔다는 점이다. 사유에 머물지 않고 실천과 도전을 통해 사유를 확장시키고 확장된 사유를 조형언어로 담아내는 과정에서 삶과, 사유, 그리고 예술이 혼연일치하는 신현중의 예술세계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신현중은 “조각을 하면서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 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나의 모든 관심은 이 세상의 전일성(全一性)에 대한 표현이다”라고 말한다. 생명이 곧 신현중이 말하는 전일성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은 생명이라는 거대한 띠로 엮이며 통일성을 획득한다.

신현중의 작품은 형태적 유사성과 차이를 동시에 갖는다. 작품에 담긴 사유의 지평 역시 맥락적 유사성과 개별성의 차이가 공존한다. 신현중은 개념에 머물지 않았고, 형태에 함몰되지도 않았으며, 작품과 세상을 분리하지도 않았다. 작품 속에 담긴 의미와 내용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표현되는 조형언어를 가다듬는 것에서도 그는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그는 전통공예의 칠과 자개를 접목하고 로봇, 사운드, 비디오 등 다양한 표현 요소들을 끌어들여 자신의 생각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신현중의 조형적 생명사상은 근원의 순수함에 대한 거대한 서사시로 읽힌다. 이 서사시는 언젠가 끝이 나겠지만 신현중이 추구했던 서사적 예술세계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주1 이 글은 2012년 발간된 신현중 도록에 실린 ‘신현중의 이상(理想)’ ‘생명의 구체적 보편성을 향하여’ ‘과학적 상상력의 소유자 신현중’ ‘시원에로의 회귀와 희망의 메시시’를 토대로 작성되었다.
*주2 신현중의 작품세계는 10월호에 이어 11월호에서도 다룰 예정이다.
[ⓒ 우드플래닛.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