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귀천이 있을까마는 목재 시장에서 유창목은 고급 수종에서도 최고급에 속한다. 우아한 녹갈색 나뭇결과 향수의 원료로 쓰일 정도로 그윽한 향, 모든 나무를 능가하는 강고함까지 갖춘 나무의 귀족, 유창목을 만나보자.
생소한 그 이름, 유창목
유창목은 일반인들에게는 조금 생소한 나무다. 정식 학명은 Guaiacum officinale. 세계적으로는 미국에서 통용되는 이름인 리그넘 바이티(Lignum vitae)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 이름인 유창목(癒瘡木)은 ‘병을 낫게 하는 나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리그넘 바이티 역시 ‘생명의 나무’라는 뜻이다. 유창목에서 나오는 수지(나무즙)이 과거로부터 각종 질병을 다스리는 데 쓰였기 때문이다.
이름은 초등학교 동창생처럼 친근하지만, 고향은 뜻밖에도 한반도 반대편 중남미 지역이다. 미국 플로리다주 남부에서부터 베네수엘라에 이르기까지 중남미 부근에만 식생하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제재된 목재로만 만날 수 있다. 유창목은 높이 9m, 지름은 25cm 정도로 자라는데, 잘라보면 바깥 변재(바깥 부분)는 노란색을, 심재(중심 부분)는 녹색이 도는 갈색을 띤다.
유창목은 성장 속도가 매우 더딘 나무다. 하지만 느리게 자라는 동안 몸을 실하게 키워 단단하기로는 나무 중에 으뜸이다. 유창목은 나무 사전에 등재된 150여 개 상업용 목재 가운데 충격 저항, 강성, 밀도, 휨 강도, 압축 강도에서 모든 나무를 압도한다. 강도는 무려 4500lbf에 달하는데 그 단단하다는 아프리카흑단의 강도가 2940lbf이다. 실제로 유창목을 깎아본 사람들은 “흑단보다 훨씬 빡빡하다.”라며 혀를 내두른다. 끌질을 하다 끌이 깨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유창목은 예부터 배의 스크루 축이나 베어링, 볼링공 등 견고함이 필요한 물건에 단골 재료로 쓰였다.
유창(癒瘡): 상처를 치유하다
유창목이 ‘상처를 치유하는 나무(유창목)’, ‘생명의 나무(리그넘 바이티)’, ‘성스러운 나무(팔로산토)’라는 영예로운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까닭은 약용 효과를 가진 수지 때문이다. 유창목을 만져보면 약간 촉촉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수지가 배어 나오는데, 여기에는 인삼의 약용 성분으로 널리 알려진 사포닌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사포닌은 살균, 소독, 소염, 탈취, 해독, 항산화, 항바이러스 등 인체에 유익한 작용을 해서 과거에 유창목은 거의 만병통치약처럼 쓰이기도 했다. 화학요법제를 발견하기 전에는 매독의 치료제로 널리 이용됐다.
유창목의 수지는 약용 효과뿐 아니라 매력적인 향까지 갖고 있는데, 이 향에 매료된 많은 조향사들이 유창목을 베이스 노트로 향수를 만들기도 했다. 지금도 베르사체, 겐조, 아르마니 등 많은 명품 향수 브랜드들이 유창목을 향료로 즐겨 쓰고 있다.
유창목의 수지는 인간에게 많은 편의를 안겨다 줬지만 정작 유창목은 이 수지 때문에 위기에 처한다. 1960년대 미국에 유창목 에센스 오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많은 유창목이 남벌된 것이다. 현재 유창목은 CITES협약이 정한 국제적 멸종 위기종으로 등재돼 있다.
유창목, 어디에 쓸까?
유창목은 주로 어디에 쓰일까? 특수목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유림목재 조성민 부장은 “유창목은 아름다운 색상과 그윽한 향, 내구성을 갖추고 있어 직접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쓰고 싶어 하는 목재”라면서, 한남동 고급 주택 대문과 모 기업 총수 침실 아트월에 유창목이 쓰였다고 귀띔한다. 이렇듯 유창목은 인테리어는 물론 가구의 재료로도 손색없는 목재지만, 높은 가격과 충분하지 않은 수급 사정 때문에 국내에서는 주로 장신구, 머리빗, 펜, 도장, 망치, 장식품 등의 소품을 만드는 데 쓰이고 있다. 특히 반지, 목걸이, 시계, 펜처럼 몸에 지니는 물건들에 유창목이 자주 쓰이는데 유창목의 약용 효과를 보다 가까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에게도 유창목은 매력적인 나무다. 유창목으로 일련의 조각 연작을 한 조각가 정상기 씨는 “유창목을 처음 제재하면 녹색과 고동색을 적절히 갖고 있지만, 주변 환경이나 가공하기에 따라 진녹색, 푸른빛이 도는 녹색, 고동색 등으로 색이 변해 무척 매력적”이라면서 “끌질이 안 될 정도로 다루기 만만치 않지만 특유의 생명력과 신비로움이 느껴져 작품에 즐겨 쓰고 있다.”라고 말한다.
유창목을 둘러싼 두 가지 고민
취미 목공인 나규헌 씨는 유창목으로 테이블을 만들다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유창목의 그윽한 초록 빛깔에 반해 테이블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샌딩을 하고 나니 매력적인 녹색은 다 사라지고 평범한 나무색이 된 것이다. 그것은 유창목의 수지 때문이다. 유창목 수지는 산소와 만났을 때 그윽한 녹색을 띠게 되는데, 이 부분을 갈아내면 원래의 색인 초록빛이 도는 고동색으로 돌아오게 된다. 다시 그윽한 초록색을 감상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하루 이틀 두면 된다. 표면의 수지가 공기와 만나 자연스럽게 녹색이 올라오고 색은 점점 짙어진다.
마감도 고민되는 문제다. 도료로 마감하자니 나무에 기름이 많아 겉돌고, 아무 것도 안 하자니 영 찜찜한 것이다. 한국목공인협회 회장 박상률 씨는 “유창목은 자체에 기름기가 많기 때문에 별다른 도료 마감이 필요 없다.”라고 말한다. 유창목을 도료로 덮어 버리면 산소가 차단되어 특유의 그윽한 녹갈색은 물론 향까지 즐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가 추천하는 방법은 도료 없이 고운 융이나 양털로 문질러 광을 내는 것이다. 표면에 기름이 많아 그저 문지르기만 해도 유리알처럼 맑고 투명한 광택이 나온다.
백문이 불여일견. 유창목의 진가는 오감으로 즐겨야 알 수 있다. 이제 당신의 손끝이 즐길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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