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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re of Cassina’s Historical Archive |
19세기 유럽에서는 무슨 일이?
이들 가구 양식은 실용성에 중점을 두면서도 조각이나 금속 장식, 상감 등의 가시적인 면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20세기에 일반화된 기능주의 개념을 한 세기나 앞선 가구들이 19세기에 유럽 곳곳에서 나타났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가구들이 아직까지도 꾸준히 생산되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가벼운 이탈리아식 의자인 키아바리(Chiavari) 의자를 비롯해 셰이커 교도들에 의해 생산되던 등받이가 사다리 모양으로 된 의자에서 그러한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가구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화려하게 드러내 보이지는 않았지만, 새롭게 탄생하는 가구들의 원형이 되었다.
가벼움의 대명사 키아바리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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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iavari Campanino chair |
키아바리 의자는 19세기 초반 이탈리아의 지중해 해안 지역 리구리아(Liguria)주의 키아바리와 인근 지역에서 장인들이 만들던 무명의 작품이었다. 이 의자의 역사는 1807년에 쥬세페 데스칼찌(Giuseppe Descalzi)라는 장인의 천재성과 집념 덕분에 시작되었다. 쥬세페는 프랑스 귀족이 파리에서 키아바리로 가져온 루이 16세 양식의 의자의 리프로덕션을 요청받았고, 이 의자의 버드나무 끈을 엮어서 만든 좌판에서 가벼운 의자를 창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무게가 2kg 이상 나가지 않을 정도로 가벼웠고 체리, 월넛, 비취, 메이플 등 모두 리구리아 아펜니노산맥에서 벌목해 잘 건조된 나무들만 사용하였다.
그가 끈질기게 매달린 것 중 하나는 등과 어깨에 적합한 뒷면의 곡선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창의력과 나무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작고 가벼운 의자에 강도, 정제미과 우아함 등의 모든 요소를 응축해내는 어려운 임무를 성공시켰다. 이렇게 탄생한 그의 첫 번째 의자는 작고 귀여운 것을 애칭으로 부르는 이탈리아어인 -ina가 붙여져서 '키아바리나(Chiavarina)'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캄파니나(Campanina)', '레제라(Leggera)'라는 다양한 명칭만큼이나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의자가 되었다. 쥬세페 역시도 의자의 명칭을 따라 캄파니노(Campanino)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탈리아 신고전주의 조각의 거장 안토니오 카노바(Antonio Canova)에게 최대의 가벼움과 최상의 견고함을 융합시켰다는 찬사를 받을 정도였다.
그는 가볍고 편안하고 우아한 테마의 의자를 다양한 컬렉션으로 발전시켰다. 키아바리나는 리구리아 키아바리의 공예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면서 나중에는 유럽 전체에서 가장 독보적이고 대표적인 가구가 되었다. 토넷의 의자가 지배하고 있는 오스트리아를 포함해서 전 세계적으로 수출된 키아바리 의자의 성공은 인근 지역에 연이은 제조업체의 탄생을 주도하게 되었다. 특히 알프스 근처 비엘라(Biella)시의 코실라(Cossila) 지역은 오리지널 키아바리 의자와 매우 유사한 품질로 생산되어 유럽 각지로 수출하는 기지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역시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생산되고 있으며 이탈리아에서는 특히 우아한 형태와 경량성 때문에 결혼식 피로연장의 필수품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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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오폰티가 키아바리 의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의자 수페를레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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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아바리 의자의 세부(버드나무 좌판) |
현대 디자인의 원형이 된 셰이커(Shaker)가구
아마도 필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유와 편안함, 그리고 평화로움의 상징인 자신만의 흔들의자 하나쯤은 갖고 싶은 꿈을 가져보았을 것이다. 이 흔들의자의 로망은 공동생활과 금욕주의라는 숭고한 목표에 전념했던 셰이커라는 종교커뮤니티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은 18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발생하였으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하여 19세기 초 다수의 커뮤니티를 설립했다. 기능주의의 이론을 대표하는 19세기 후반 루이스 설리반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공식이 나오기 이미 백 년 전에 아름다움이 실용성에서 발생한다는 신념에 따라 자신들이 사용할 가구를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했으며 이웃 지역에 판매했다. 그들은 가구에 장식, 패턴 등으로 감성을 표현하기보다는 재료 자체와 구조를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단순성, 견고성, 기능성을 구현했다.
셰이커의 전형적인 가구는 메이플 흔들의자와 발 받침대, 체리 촛대 테이블, 전나무와 월넛으로 만든 빌트인(Built-in) 서랍장 등이다. 이러한 가구들은 실내공간에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었다. 특히 등받이를 가로질러가는 여러 개의 막대로 인해 사다리 의자라는 이름이 붙은 의자는 가장 유명하다. 이 의자는 트레이드마크가 된 목선반으로 깎아낸 버섯형태의 손잡이가 달린 팔걸이의자로서, 다양한 모델로 변형되어 생산되었다. 공동 소유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이동이 간편하도록 가볍게 만들어져 기도나 청소를 할 때는 벽에 걸어놓기도 했다. 19세기 동안에 그들의 제품은 미국 전역에 영향을 미쳤고 1876년 필라델피아 센테니얼(Centennial) 박람회에서 마운트 레바논(Mount Lebanon) 셰이커의 가구전시회를 개최함으로써 이러한 독특한 가구 스타일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셰이커 가구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가 이용되었으며 각기 다른 목적에 적당한 나무를 선택하여 사용하였다. 메이플은 계속적으로 힘이 가해지지 않는 가냘픈 구조에, 애쉬와 히코리는 구부리는 부분에 사용되었다. 소나무는 작업하기에 용이했으므로 많은 품목에 이용되었다. 또한 부가적인 장식과 정형화된 스타일을 배제한, 오직 유용하고 기능적인 것을 위한 최선의 것을 만들었다. 더욱 단순하고 쉽게 만들기 위해 기계 사용을 추구하였다. 그들의 디자인은 현대 가구디자인, 특히 스칸디나비아 여러 나라에 영향을 주었다. 셰이커는 19세기 후반기에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셰이커 가구의 컬렉션은 많은 예술과 역사박물관, 미국과 영국에서뿐만 아니라 수많은 개인 컬렉터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 Chiavari Tigull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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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erry rocker / Elder’s chair |
일상에서 출발한 현대 가구의 원형
삶이 복잡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단순함과 보다 근원적인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따라서 셰이커 가구와 키아바리 의자에 나타난 간결함과 소재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라는 공통적인 특성은 현재에도 적용 가능하다. 이들 가구는 일상의 필요에 의한 현실적인 고민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근본적인 것에서 얻을 수 있는 순수한 가치들이 디자인의 배경이 되었다. 현대 가구와의 공통점은 바로 단순성과 기능주의 및 섬세한 선, 장식의 배제, 자연스러운 마감, 그리고 기계 제작과 조화된 형태 및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 가구들이 처음 생산된 이후 현재까지 끊임없이 생산되고 판매되어 세계 곳곳에서 일반인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곧 현대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해 준다. 셰이커 가구와 키아바리 의자의 진정한 의미는 산업화 가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였다는 점이며 솔직함과 단순함이 어떠한 방식으로 가구로 구체화되었는지 특별한 예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들 디자인의 기본 원칙은 현대적인 가구에 훌륭한 영감을 부여함으로써 수많은 이상적인 가구의 탄생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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