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우리 가족은 명절마다 전라도 김제를 향해 길고 먼 여행을 떠났다. 설날도 마찬가지였다. 해가 나기도 전에 출발한 탓에 고개를 앞뒤로 열심히 꺾어 가며 한참을 차에서 졸다가 부스스 눈을 뜨는 것이 일쑤였다. 그때마다 창밖을 내다보면 언제나 지리산휴게소의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안개가 자북하게 낀 산허리며 텁텁한 입을 개운하게 씻어주는 맑은 공기는 여전했다.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처럼 지리산휴게소의 우동 한 그릇을 먹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 가족의 명절은 시작됐다.
그렇게 여섯 시간 여를 달리고 나서야 도착한 외갓집은 논과 밭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시골 동네였다. 어둠이 내리면 덩치 큰 동네 개들만이 주인도 없이 거리를 어슬렁대는 한량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거기 어느 골목의 두 번째 양옥집에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살고 계셨다. 붉은 벽돌을 쌓아 올린 집이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곳의 원래 주인은 낡을 대로 낡은 개량 한옥의 것이었다. 아니, 실은 장담할 수 없다. 그것이 한옥인지 아닌지는. 다만 찢어진 종잇조각처럼 낱낱이 흩어져 있는 기억 속의 몇몇 이미지들만이 그것을 항변해줄 뿐이다.
맨들맨들 윤이 나는 툇마루(지금의 내 나이였던 엄마가 여기에 걸터앉아 나를 품에 안고서 찍은 사진이 증거로 남아 있다), 새카맣게 그을린 자국이 남아 있던 아랫목(그리고 누런 장판), 부엌의 음식을 안방으로 건네기 위해 나 있던 작은 창(마치 빌트인 옷장처럼 생겼다), 창호지 한가운데에 작은 구멍을 뚫어 판유리를 끼워 넣은 여닫이(유리 너머로 강아지에게 주사를 놔주시던 할아버지의 뒷모습). 몇 안 되지만 강렬하게 남아 있는 기억들로 추측하건대 나에게도 짧게나마 ‘한옥’을 경험한 시절이 있었다.
지난 주 북촌의 한 현대한옥을 취재하는 내내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허름한 외갓집이 떠올랐다. 건축가의 손길이 닿은 한옥과는 결코 비할 데가 못 되지만, 그럼에도 애틋했다. 한때는 엄마의 여섯 식구를 든든하게 지켜주었던 집이었을 테니까.
그곳에서 태어나 걸음마를 떼고, 또 학교로 향하는 엄마를 묵묵히 지켜보았을 한옥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하지만 김제로 달려간다 한들 기억 속의 집은 더 이상 그곳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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