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다다’는 ‘아무쪼록 힘 미치는 데까지’란 의미를 담고 있다. 다다라는 필명의 섬유미술가 김은정 씨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섬유미술가, 실용성을 얻다
요즘 은정 씨의 일상은 매일 비슷하다. 일반 주부들과 마찬가지로 밥을 짓고 설거지나 청소, 빨래를 하고, 화초를 돌보는 기본적인 살림을 한다. 특이할 점은 그녀가 스스로 인테리어를 도맡아 한다는 것이다. 은정 씨는 페인팅, 뜨개질, 바느질 등을 통해 가족이 사는 공간을 좀 더 살기 좋고, 아름답게 가꿔나간다.
“집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 편이에요. 아이를 돌보는 엄마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족과의 외출이 아니면 잘 나가지 않는 편이라서요. 덕분에 친구들이 절 만나려면 집 근처로 와주곤 해요.”
그래서 그녀의 작업들은 늘 생활을 기반으로 한다. 벽지나 싱크대가 바래거나 낡으면 직접 페인팅을 하고, 의자가 휑하면 직접 천에 수를 놓아 커버를 만들고, 전등의 갓을 만들어 달고, 아이가 어릴 적에 사용했던 기저귀 천에 수를 놓아 행주로 사용하는 식이다.
수공예는 주부가 되며 시작한 것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있으셨던 외할머니를 따라 바느질이며 뜨개질을 시작한 게 처음이었고, 공식적으로는 섬유미술을 전공한 것이 시작이었다. 대학에서는 태피스트리, 염색, 직조, 섬유조형 등에 대해 전문적 지식을 습득했다. 졸업 후엔 대학원에서 색채와 디자인을 가르쳤고, 퀼트 스튜디오를 운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유러피안 클래식 손뜨개를 테마로 한 단행본「슬로라이프 니트」를 감수했다.
“사실 전시를 위한 작업을 할 때에는 실용성이 없었어요. 공예란 것은 실생활에서 적절히 사용되며 비로소 그 가치가 발휘된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전공자들은 작품성에 집착하게 되니까요. 지금은 실용적인 공예를 하게 된 것 같아 뿌듯해요. 가끔 소소한 작품들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하면 아까워서 못 쓰겠다고 하시는데, 간직하거나 장식하기보다는 낡을 때까지 잘 사용해주는 것이 더 기쁘죠.”
생활 속 아이디어, 공들인 재료와 만나다
전시나 논문의 주제를 정하고, 그게 따른 아이디어들을 끄집어내는 방식의 작업을 했던 은정 씨는 지금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가지고 있는 재료로 아이디어를 낸다. 어린 아들의 생각이나 취향에도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재료를 구할 때는 보다 신중한 편이다. 아이를 키우는 주부의 마음이라 더 그런지도 모른다. 웬만한 건 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지만, 은정 씨는 여전히 발품을 팔아 재료들을 구한다.
특히 천이나 실과 같은 재료들은 직접 보고 만져보아야 좋은 것을 선별할 수 있다. 이따금 외출을 하거나 여행할 때 우연히 만나는 좋은 재료는 망설이지 않고 구입한다. 관심 있는 재료를 구하기 위해 여행의 행선지를 정하기도 할 정도로 그녀의 재료에 대한 철학은 확고했다.
“재료는 다양성보다는 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특색 있고 좋은 재료들을 모을 수 있게 될 거예요.”
느리게 또 느리게
때로는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좋은 재료를 더했음에도 사용하지 않게 되는 작품들이 생긴다. 그런 물건들은 따로 모아 지역 자선 바자회에 내어 놓거나, 필요하다고 하는 지인들에게 살짝 건네준다. 혹은 다시 한 번 손을 대어 또 다른 물건으로 바꾸기도 한다.
나무 작업은 늘 하고 싶은 것 중 하나다. 가끔 좋은 나무로 만든 결 고운 도마나 테이블을 발견하면 직접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불쑥 생긴다. 그러나 아파트에 사는 은정 씨에게 톱질과 사포질은 아직 무리인 것 같다. 지금도 나무로 작업하고 싶은 목록이 있는데, 혼자 도면을 그렸다 지웠다 하는 중이라고.
요즘 은정 씨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자녀 교육과 준비하고 있는 단행본이다. 힘 미치는 데까지 마음을 담고 싶어 했다. 단행본 출간 이후, 또 어떠한 목표가 생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도 가족에게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찾아 만들어내는 삶은 쭉 이어질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실용적인 공예가로서의 첫 번째 자격일 것이다. 물질이면 다 되는 세상에서 정성과 관심을 들여 일상을 아름답게 수놓는 그녀는, 진정한 슬로우 라이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준다.
사진제공 ‘느린 작업실’
[ⓒ 우드플래닛. 무단전재-재배포 금지]